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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은 전후기 리그가 존재하던 시절, 전기리그 우승팀 삼성과 후기리그 우승팀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났습니다. 당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성의 우승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그 이상의 전력차가 존재했습니다. 삼성은 타팀을 크게 압도하는 최강 전력이었고 롯데는 후반기 힘겹게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삼성은 충분히 비축하면서 한국시리지를 대비했습니다. 후반기 전력을 아끼는 여유를 보였습니다. 타격 3관왕에 빛나는 이만수와 이미 고인이 된 안타제조기 장효가 이끄는 타선은 상대팀들에겐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던 좌완 김일융이 가세한 투수진 또한 리그 최강이었습니다. 롯데가 삼성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극히 낮았습니다.

후기리그 막판 삼성은 손쉬운 상대인 롯데에게 져주기 게임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노골적으로 롯데를 파트너로 선택했습니다. 여기에 이만수의 타격 3관왕 등극을 위해 경쟁자인 롯데 홍문종에게 고의 볼넷을 연거푸 내보내는 추태까지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래저래 많은 이야기거리를 가진 한국시리즈 대진이었습니다.




롯데가 믿을 수 있는 카드는 최동원이었습니다. 그 해 시즌 27승을 거두면서 롯데의 한국 시리즈 진출을 견인했던 에이스에게 모든 걸 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최동원은 이미 시즌중에 그 힘을 소진한 상태였습니다. 아마시절 팀과 국가대표를 오가면 혹사당한 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1984년의 엄청난 기록은 정말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이미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상황, 롯데로서는 최동원의 초인적인 투구에 운명을 걸러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롯데의 전략은 1, 3 ,5, 7차전에 최동원을 내세워 이 경기를 모두 잡아 시리즈를 잡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리수였습니다. 그만큼 롯데는 삼성의 강타선을 막아낼 마땅한 카드가 없었습니다.

팀의 기대대로 최동원은 1차전과 3차전을 완투하며 팀의 2승을 책임졌습니다. 삼성의 일방적 우세가 예상되던 시리즈는 팽팽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삼성은 김일융이 매 경기 승리를 가져가면서 최동원과 맞섰습니다. 삼성은 에이스 김일융과 최동원과의 맞대결을 피했습니다. 최동원이 힘이 떨어지면 한 경기 정도는 잡아낼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5차전에서 삼성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1,3차전에 힘을 크게 소진한 최동원은 5차전에서 그 위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투혼의 피칭으로 완투했지만 결과는 패전이었습니다. 롯데의 시리즈 전략이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최동원이 나온 경기를 패하면서 롯데의 우승 꿈도 멀어지는것 처럼 보였습니다. 혹시나 롯데의 이변을 기대했던 팬들은 그 기대를 접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6차전에서 롯데 타선은 삼성의 투수진을 초반부터 공략하면서 리드를 잡았습니다. 경기 초반 리드를 잡은 롯데는 전날 완투한 최동원을 다시 구원등판 시키는 강수를 던졌습니다. 아마야구에서도 나올 수 없는 혹사였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시리즈를 최종전으로 끌고가야 했습니다. 최동원은 전날의 패전을 설욕하면서 구원등을 따냈습니다.

시리즈 3승 3패, 이제 마지막 최종전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습니다. 롯데는 최동원의 어깨에 또 한번 팀의 운명을 맡겨야했습니다. 이미 지칠대로 지친 최동원의 등판은 무리수였습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습니다. 삼성의 선발 김일융 역시 무리를 하고 있었지만 최동원보다는 힘을 비축한 상황이었습니다. 양팀 선발의 힘에서 삼성은 롯데는 앞섰습니다.

최동원의 구위는 삼성 타선을 막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투혼을 발휘했지만 초반 실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팀은 그를 대신할 투수를 내세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엄청난 중압감을 견뎌야 하는 시리즈 최종전에서 최동원과 같이 담대하게 공을 던질 투수는 없었습니다. 모두 그의 투구를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중반 이후 최동원의 구위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승리에 대한 그의 의지와 열망은 그를 기적적으로 부활시켰습니다. 최동원이 마운드의 안정을 가져다 주면서 롯데타선은 시리즈 내내 당하기만 했던 김일융의 공을 공략하는데 성공했고 경기는 팽팽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경기 후반 나온 유두열의 3점 홈런은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는 한 방이었습니다.

결국 최동원은 7차전 마저 완투승으로 장식하면서 홀로 팀의 4승을 책임졌습니다. 결정적인 3점 홈런을 기록한 유두열이 시리즈 MVP를 차지하기 했지만 최동원이 없었다면 롯데의 1984년 기적은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최동원의 혼신의 역투는 그를 롯데의 레전드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롯데는 최강팀 삼성을 누르고 우승팀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롯데의 영광은 최동원의 선수생명을 담보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아미시절 혹사로 그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시리즈 투혼은 그의 전성기를 더 단축시켰습니다. 다음해 20승을 올리면서 건재를 과시했지만 그의 그 다음해부터 그의 기록은 점점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리그 정상권의 기량은 여전했지만 최고 투수의 자리는 선동열이라는 또 다른 태양이 자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해마다 구단과 연봉협상 과정에서 마찰을 빚던 그는 롯데구단에 미운털이 박혀있었습니다. 급기야 선수협 창설 당시 주축 멤버였던 최동원은 삼성으로 보복성 트레이드를 당했습니다. 당시 양팀 에이스 최동원, 김시진의 맞트레이드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롯데의 우승을 이끌었던 에이스는 팀과 원치않은 이별을 해야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롯데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이미 야구에 마음이 떠난 최동원은 그 하향세가 더 두드러졌습니다. 그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성적에 최동원은 미련없이 유니폼을 벗었고 은퇴식조차 치르지 못하고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습니다. 롯데의 레전드였지만 최동원은 선수생활의 마무리를 고향팀에서 하지 못했습니다. 은퇴후 지도자로서 또 다른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마지막 소망으로 고향팀에서의 지도자 생활을 원했습니다.

그의 희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는 긴 병마와의 싸움 끝에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당시 지금과 같이 선발과 불펜이 구분이 없던 시절, 최동원은 팀이 원하면 어느 순간에라도 등판했습니다. 그 결과는 선수수명의 단축과 구단으로부터의 배신이었습니다.

하지만 팬들은 그의 열정과 승리에 대한 의지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1984년 가을 보여준 그의 초인적인 투구는 영원히 그를 전설로 남기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그의 전성기가 길진 않았지만 그는 너무나 강렬한 기억을 팬들에게 남겼습니다. 비록 그의 모습을 다신 볼 수 없지만 그가 남긴 투혼과 열정의 투구는 영원히 팬들의 마음을 울릴 것입니다.

최동원, 그의 불꽃 투혼을 기억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빕니다.


김포총각/심종열 (http://gimpoman.tistory.com, @youlsim)
사진 : 롯데자이언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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