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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우리나라 신작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 <집행자>는, 사형제를 전면으로 다룬 작품이었습니다.

평소와 다를 것이 없는 교도소에서 영화가 시작됩니다.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상영내내 그 분위기는 무거웠습니다. 중간중간 밝은 분위기의 장명이 있었지만 사형 집행일을 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이기에 웃음이 나오지 않더군요. 그만큼 사형이라는 사람의 죽음을 전제로 한 법 집행이 제 마음을 무겁게 한 탓이겠지요?

일에 냉철하고 철저한 선임 교도관과 개념없는 신참 교도관 그리고 교도관 전체를 아버지같이 아우르는 교참 교도관, 이 세명이 이야기가 영화의 주요 스토리를 이어갑니다. 연기파 배우인 조재현, 박인환, 그리고 경력은 짧지만 그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윤계상, 이 세명의 배우는 인물의 특성에 맞게 무리없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어린 교도관이 성장기를 예상했던 저에게 영화는 사형제도라는 하나의 주제만을 생각토록 했습니다. 10년 이상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대한민국에서 연말 사형집행이 결정되고 3명의 주인공은 집행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영화는 사형을 당하는 제소자와 그 주변 인물 보다 이를 집행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직업의 특성한 냉혹하게 제소자들을 다루어야 하지만 사형의 집행자가 되면서 이 교도관들은 인간적인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형을 당하는 이들이 극악무도한 죄를 저지른,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들이지만 살아있는 목숨을 끊어야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그것이 국가 권력과 법에 의해 공인된 일임에도 말이죠. 

선임 교도관(조재현 역)은 40이 넘었지만 노총각입니다. 열심히 일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그의 일을 기계적으로 수행 할 뿐입니다. 제소자들을 대할 때 그는 아무 감정이 없는 로봇과 같습니다. 때로는 무자비한 폭력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제소자는 교화의 대상이 아닙니다. 나쁜 놈들일 뿐입니다. 신참 교도관(윤계상 역)은 아직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난하지만 예쁜 애인과 행복한 미래도 꿈꾸는 젊은이입니다. 그는 단지 먹고 살기위해 공무원 시험을 보고 교도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도소의 현실은 너무나 냉혹합니다. 그가 빈틈을 보이면 제소자들은 하이에나 처럼 그에게 달려듭니다. 그 안에서 그의 순수성은 점점 사라져갑니다. 생존을 위해 그는 맹수로 바뀌어 갑니다. 고참 교도관(박인환 역)은 수십년을 교도소에서 일했습니다. 오랜 기간 복역한 사형수와는 장기 내기를 할 정도로 제소자들과 그는 너무나 친근한 사이입니다. 그에게서 냉혹함은 찾을 수 없습니다. 교도관으로서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형 집행일이 잡히면서 지난 날의 기억이 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3명의 교도관들은 개인적인 고민과 어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받는 월급으로 생활도 해야하고 돈도 모아야 합니다. 더 낳은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교도소 밖에서 이들은 그저그런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국가 권력은 사형의 집행자가 되라고 합니다. 정의를 실현하는 집행자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행 집행은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또 하나의 살인을 의미합니다. 

최근 살인제도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고대에 법이 생겨나면서 부터 있었던 사형제도, 그 옛날 고조선때도 사람을 죽인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법이 있을 정도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단죄의 수단입니다. 하지만 그 제도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만약에 있을 수 있는 억울한 죽음을 막아야 하고, 교도행정의 기본 목표인 수감자들에 대한 교화에도 어긋나고 인간의 존엄성을 헤칠수도 있고 등등의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반면 이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흉악한 범죄자에 대한 교화의 가능성이 없고, 그 숫자가 증가하기만 하는 흉악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도 그들을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킬 방법이 사형제도 밖에 없음을 주장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국제 사회에서 실질적인 사형제 폐지 국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10년 이상 그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집권자의 부담감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자신의 임기내에 그 일을 하고 싶은 지도자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사형제도에 대한 아픈 기억들이 있습니다. 절대 권력에 의해 정적들과 반 체제 인사들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이용된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나중에 그 억울한 죽음들의 진실이 밝혀졌지만 그 사람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영화속에서 사형 집행일은 점점 다가옵니다. 교도소 내의 교도관들은 사형집행에 대해 회피로 일관합니다. 주인공 3명은 등 떠밀리 듯 집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집행 메뉴얼에 따라 사형을 준비합니다. 이 일도 업무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이 과정은 담담하게 그려집니다. 이에 대한 주인공들의 감정을 강조하거나 나타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관객들은 교도소 내의 일을 담담히 지켜보게 됩니다.

드디어 사형 집행일, 사형수들은 마지막까지 삶을 구걸하기도 하고 조용히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세상에 저항하기도 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교도관들은 이 일을 순서에 따라 진행합니다. 예전에 유명한 드라마인 모래시계에서 주인공의 사형장면이 크게 회자된적이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기도 했는데요. 영화에서는 그 속에서 감동을 주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 주력했습니다. 몇몇 에피소드가 있었고 충격적인 장면도 있지만 최대한 사실적으로 그리려 했습니다. 관객들에게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를 지켜보게 하려는 것이었을까요?

하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들의 일탈 장면들을 이어붙인건 아쉬웠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인 이들이 지닐 수 있는 죄의식과 감정을 표현하려 했을지도 모르지만 관객들이 마음속에서 사형집행 장면을 보면서 남았을 여운을 간직하기도 전에 다소 자극적인 장면으로 감독의 의도를 보여주려 한 듯 했습니다. 그저 잔잔한 일상의 모습들을 이어가면서 관객들이 좀 더 생각할 수 있는 열린 결말이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영화 <집행자>는 쉽게 다루기 어려운 소재를 과감히, 최대한 사실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교도소를 배경으로 하는 여타 영화들과 다른 시각으로 그 안을 비추었습니다. 다소 과장된 장면들도 있었지만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물론, 사형제도에 대해 사실적으로 다루고 그것을 진행하는 주인공의 갈등을 보여주었다는 것에서 사형제도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감독은 사형제도가 죄인에 대한 단죄 이전에 또 하나의 살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살인을 하게되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소시민들이었습니다. 집행자들도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죽을 짓을 했으니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을 집행하는 입장이라면 어떨까요?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고 우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입니다. 사형제도는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할 일이기에 집행자들은 그것을 감수해야 할까요? 그들에게 지워질 마음이 짐을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콜로세움에서 처절하게 싸우다 죽어가는 검투사들을 지켜보는 관객의 입장으로만 사형제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사형제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기에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사향제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생명에 대한 가치는 누구에게나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죽을 짓을 한 범죄자의 그것도 역시 소중하겠지요? 누군가의 생명을 빼았는 것에 조금 더 신중함을 가지면 어떨까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 <집행자> 였습니다.




                                                               (슬픈 역사를 간직한 옛 서대문 형무소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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