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20, 21회] 활짝 열린 격물 연구의 문, 계속되는 기득권의 저항

격물 진흥 정책을 위해 던진 세종의 승부수가 적중했다. 세종이 공언한 대로 장영실과 서운관 관리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일식의 일지와 일시는 정확히 예보했다. 세종은 역대 가장 정확한 시간에 구식례를 거행할 수 있었다. 이로써 격물진흥 정책에 대한 조정의 반대 여론은 호의적으로 바뀌었고 추가적인 격물 진흥 정책도 탄력을 받게 됐다. 

이 과정에 큰 위기가 있었다. 누적된 기록 부족으로 고심하던 장영실과 학자들은 일식 일자는 예보할 수 있었지만, 정확한 일시는 쉽게 예측할 수 없었다. 이들은 과거 조선 비밀 천문연구과정에서 작성된 기록을 떠올렸다. 그 기록은 당시 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여겨졌지만, 장희제에 의해 보관되어 있었다. 장희제는 학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릴 수 없어 그 기록을 가지고 은거생활을 하고 있었다. 

장영실은 장희제를 급히 찾았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격물 연구에 반대하는 사대부 세력이 그를 찾았다. 그들은 장희제를 회유 협박했고 장희제는 기록을 위조해 장영실에 전달했다. 그 기록을 토대로 한 일식 예보는 당연히 틀릴 수밖에 없었다. 이를 안 대신들은 구식례를 준비하는 세종에 이를 알렸지만, 세종은 그대로 구식례를 강행했다. 그는 중국 책력에 의지하지 않은 일식 예보 자체를 소중히 여겼다. 세종은 정치적 패배를 감수하고자 했다. 

이때 반전이 있었다. 장희제는 정확한 기록을 계산할 수 있는 그만의 암호를 만들어두었다. 그는 그를 위협하는 세력들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척했지만, 실은 그들의 눈을 속이고 정확한 기록을 장영실에 넘겼다. 장영실과 서운관 대신들은 일식 일어나기 직전 정확한 예보를 할 수 있었고 성공적인 구식례가 가능했다. 장희제의 되살아난 격물연구에 대한 의지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세종과 그를 따르는 대신들은 환호했지만, 그들을 도운 살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장희제는 그의 삶이 얼마 안 남았음을 직감했다. 그는 진심으로 장영실에 사죄했고 살아있는 동안 격물 연구에 온 힘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의 삶의 불꽃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그에게 반감을 가진 사대부들에게 살해당하며 삶은 마감해야 했다. 

그의 허무한 죽음에 그와 진심으로 화해했던 장영실은 망연자실했다. 격물 연구 의지마저 꺽일 정도로 충격이 컸다. 하지만 장희제의 격물연구에 대한 진심을 알게 된 장영실은 다시금 의지를 다졌다. 장영실은 격물 연구에 반대하는 사대부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격물연구 성과를 만들어야 함을 인지했다. 그는 조선 표준시간을 알려주는 자격루를 시작으로 다방면에 걸쳐 다양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를 중심으로 조선의 격물은 큰 발전을 이루어냈다. 그 성과들은 백성들에까지 공유되면서 나라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계기가 됐다. 

그 사이 장영실은 그간의 공을 인정받아 조정에서 고위직으로 올라서며 개인적으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세종의 적극적인 도움 속에 장영실은 그만의 격물 연구를 더욱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고 그가 소망했던 천상시계 제작에 몰두했다. 세종은 장영실의 든든한 후원자로 그를 돕는 것과 동시에 우리 문자인 한글 창제에 박차를 가했다. 세종과 장영실이 소망했던 조선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사대부 세력 상당수는 격물 연구가 성리학의 기본 원칙에 위배되는 위험한 일임을 주장했고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을 버리지 않았다. 세종은 이들을 포용하며 설득하려 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명나라에 이 사실을 알리는 한편 격물연구를 주도하는 장영실을 탄핵하려 했다. 보수 사대부들에게 격물 연구는 사대부들이 가지고 있는 지배계급으로서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일로 여겨졌다. 

그들은 격물 진흥을 통해 세상이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어떻게 해서든 이를 막아야 했다. 결국, 격물 진흥의 물줄기는 강렬해졌지만, 그 물줄기를 막아서는 거대한 장벽이 존재하면서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이다. 여러 사람의 희생과 헌신으로 지속되고 있는 조선의 격물 진흥정책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 변화를 원치 않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여전히 부정적인 변수가 되고 있다. 

사진, 글 : 심종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