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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타자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우리 프로야구에서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건 특수한 사항이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경기 후반 야수 엔트리를 모두 소진하면서 지명타자가 수비에 들어가야 하는 경우, 투수들이 지명타자 타석에 서는 일이 가끔 있었다. 투수들이 타석에서 멋진 안타를 때려내는 일도 우리 프로야구 역사에 몇 차례 기록되고 있지만, 타격 연습을 거의 하지 않는 투수들이 좋은 타격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롯데와 넥센의 6월 16일 주말 3연전 첫 경기에서 이런 불가피한 사항이 경기 초반 그것도 4회 초에 발생했다. 4회 초 롯데 공격에서 선두 타자 최준석이 볼넷으로 출루한 이후 4번 타자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설 준비를 할 즈음, 넥센 벤치에서 심판진에 문제를 제기했다. 심판진은 상의 끝에 이대호가 경기에 나설 수 없음을 롯데측에 설명했다. 이대호의 타석에서 투수 노경은이 급히 헬멧을 쓰고 나섰다. 

팽팽한 투수전의 경기에서 야수 엔트리가 충분한 상황,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은 이랬다. 롯데는 경기 전 선수 엔트리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1루수 최준석, 지명타자 이대호로 선발 출전 하기로 했다. 롯데는 최근 담 증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대호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고 체력 안배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경기에 들어가자 이전처럼 1루수로 이대호가 나섰고 최주석은 지명타자로 경기에 출전했다. 벤치의 포지션 변경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선수들은 평소 그랬던 것 처럼 경기에 나서면서 발생할 일이었다. 뒤늦게 이를 알게된 넥센 벤치로서는 당연히 규정 위반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지명타자 최준석이 1루수 수비에 들어가면서 이대호는 교체돼야 했다. 규정상 지명타자가 수비에 들어가면 그 자리를 다른 야수가 대신할 수 없다. 롯데는 부득이하게 선발 투수 노경은을 타석에 내세워야 했다. 노경은은 경기 초반 호투하고 있었고 롯데는 그를 쉽게 교체할수 없었다. 

마치 미국 프로야구 내셔널 리그와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 리그처럼 지명타자가 없고 투수가 타석에 서는 경기를 롯데는 해야했다. 롯데 벤치의 실수가 초래한 핸디캡 매치였다. 최근 장타 부재와 함께 타격에서 주춤하고 있는 이대호라 하지만, 4번 타자의 빈자리는 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격력 저하는 불가피했다. 더군다나 노경은은 모두 주자가 출루해있는 상황에서 두 차례 타석에 섰다. 

이대호가 타석에 있었다면 상대 투수에게 주는 압박감은 상당했겠지만, 넥센 선발 투수 브리검은 손쉽게 삼진을 잡아내며 상황을 벗어났다. 그럴 때마다 롯데의 아쉬움은 컸다. 벤치에서 강제 휴식을 하게 된 이대호는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노경은으로서도 투구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부담이었다. 

하지만 노경은은 올 시즌 최고의 투구로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다. 지난 시즌 롯데에 트레이드로 영입된 이후 수년간의 부진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보였던 노경은은 올 시즌 선발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였지만, 부진한 투구로 주로 2군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부진한 사이 김원중, 박진형 등 영건들이 선발 로테이션에 자리잡았고 노경은의 2군 생활은 길어졌다. 

노경은 묵묵히 2군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소화하며 준비했다. 마침 롯데 외국인 투수들을 비롯한 선발진의 동반 부진과 부상이 이어지면서 대체 선발 투수가 필요했고 롯데는 노경은을 콜업했다. 노경은으로서는 다시 선발 투수로 복귀할 기회였지만, 불펜투수로 나선 경기에서 난타 당하면서 믿음을 주지 못했다. 그의 선발 등판 시기가 계속 미뤄졌다. 더는 대체 선발 투수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 롯데는 그에게 선발 등판 기회를 줬다. 일종의 궁여지책이었다. 

노경은이 올 시즌 첫 등판하는 상대는 강타선의 넥센이었다. 넥센의 선발 투수는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합류해 좋은 투구 내용을 보이고 있는 브리검이었다. 노경은이 올 시즌 보여준 투구 내용을 고려하면 그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경기였다. 

노경은은 이런 우려를 떨쳐내는 호투로 무실점 이닝을 이어갔다. 넥센 선발 브리검과 비교해 전혀 밀리지 않는 투구였다. 직구는 위력적이었고 컷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의 다양한 구질은 이전에 알련 노경은이 아니었다. 넥센 타자들의 노경은이 투구에 다소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4회 말 김민성, 고종욱, 윤석민으로 이어지는 넥센 중심 타자들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장면은 노경은의 호투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이렇게 노경은이 최고의 투구를 하고 있었지만, 롯데 타선은 1회 초 전준우의 솔로 홈런 이후 넥센 선발 브리검에 철저하게 막혔다. 브리검은 낮게 제구되는 묵직한 직구를 바탕으로 롯데 타선을 무력화했다. 롯데는 공격에서 3차례 병살타로 공격 흐름이 번번이 끊겼다. 

롯데가 추가 득점을 하지 못하는 사이 넥센은 7회 말 득점 기회에서 2득점 하며 경기를 뒤집었다. 7회 말에도 마운드에 오른 노경은은 투구 수 100개에 근접하면서 다소 힘을 떨어진 모습이었다. 노경은은 안타와 볼넷을 내주며 위기를 몰렸고 롯데는 장시환으로 마운드를 대신했다. 하지만 장시환은 폭투와 2사 적시 안타 허용으로 노경은이 내보낸 주자 모두가 홈을 밟도록 했다. 노경은은 승리 투수 기회를 날림과 동시에 패전 투수가 될 위기에 몰렸다. 

결국, 경기는 롯데가 더는 반격하지 못하면서 넥센의 2 : 1 승리로 마무리됐다. 넥센 선발 브리검은 8이닝 5피안타 2사사구 5탈삼진 1실점 호투로 승리투수가 됐다. 넥센은 올 시즌 제3의 마무리 투수 김상수는 9회 초 무실점 투구로 시즌 7세이브를 기록했다. 

이제 맞선 노경은은 6이닝 4피안타 3사사구 6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으로 남았다. 노경은은 예기치 않게 타석에 서는 헤프닝의 주인공에 됐지만 집중력을 잃지 않았고 시즌 첫 선발 등판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투구를 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건 시즌 첫 패전이었다. 

롯데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벤치의 실수로 4번 타자가 경기 초반부터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속에 4연패에 몰렸다. 노경은은 4번 타자의 호투라는 프로야구 역사에 남을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팬들에게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볼거리였지만, 롯데에씁쓸한 일이었다. 

노경은은 자칫 집중력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해냈다. 이 호투로 노경은은 선발 투수로서 계속 등판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경은의 호투를 빛바래게 한 사태를 불러온 롯데 벤치의 실수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비판 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글 : 지후니(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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