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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프로야구 정규리그가 종착점을 향하고 있다. 순위 경쟁은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시즌 종료와 함께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레전드의 현역 은퇴는 확실하다. 이미 올 시즌 시작부터 자신의 마지막 시즌임을 공표한 삼성 이승엽의 존재 때문이다 이승엽은 40대의 나이에도 여전한 기량을 과시하고 있지만, 미련 없이 좋은 모습을 보일 때 유니폼을 벗기로 했다. 

실제 이승엽은 올 시즌에도 현재까지 22홈런 84타점을 기록할 정도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소속팀 삼성 내에서도 이승엽의 기록은 중심 타자로서 손색이 없다. 리그 전체를 비교해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분명 팬들로서는 아쉬움이 느껴지는 이승엽의 은퇴다. 40대 선수로서 더 많은 통산 기록을 쌓고 젊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승엽의 의지는 확고했다. KBO 리그는 은퇴 투어 이벤트를 마련했고  각 구단은 이런 이승엽을 위해 그의 현역 선수로서 해당 경기장 마지막 경기를 치를 때 의미 있는 선물과 행사로 떠나는 그를 배웅했다. KBO리그에서 처음 시도되는 은퇴 투어는 10월 3일 이승엽의 소속팀 삼성의 홈경기를 끝으로 마무리 된다. 

그만큼 이승엽의 존재감과 그가 이력은 단순히 삼성의 중심 타자를 넘어 우리 야구사에 남을 만큼 큰 의미가 있었다. 1995년 프로에 데뷔한 이승엽은 입단 직후부터 삼성의 중심 타자로 기량과 스타성을 인정받았다. 이승엽은 중거리 타자에서 장거리 타자로 차근차근 변신하면서 리그를 대표하는 장타자로 자리를 잡았다. 외국인 선수들이 본격 가세한 KBO 리그에서도 이승엽은 외국인 타자와 힘 대결에서 밀리지 않았다. 2003시즌에서 한 시즌 56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리그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 리그의 타격 영웅 왕정치의 한 시즌 홈런 기록을 넘어서는 홈런 기록이었다. 




이승엽의 가치가 더 높아진 건 국제경기에서의 활약이었다. 이승엽은 국가대표팀에서도 중심 타자로서 해결사의 면모를 보였다. 특히, 결정적인 순간 터진 그의 장타는 대표팀의 국제경기 호성적을 이끌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과의 4강전에서 터진 역전 홈런포는 우리 스포츠사에 남을 명장면이었다. 이승엽은 결승에서도 홈런포를 때려내며 야구 금메달을 이끌었다. 이후에도 이승엽은 국제 경기에서 대표팀의 중심이었다. 그 사이 그에게는 국민타자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승엽은 국. 내외 경기 활약을 바탕으로 해외리그에서 활약했다. 이승엽은 2003시즌을 끝으로 일본 리그로 향했다. 국민타자의 일본 리그 진출에 대한 아쉬움도 우려도 있었지만, 이승엽은 훌륭히 리그에 적응했다. 일본 롯데에서 2년을 보낸 이승엽은 이후 일본 리그 최고 인기구단 요미우리의 4번 타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의 일본 리그에서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야구팬들은 국가대표로서 그를 응원했다. 실제 일본 리그에서 이승엽은 홈런 타자로서 비중 있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의 일본 리그에서 활약은 그 기간이 너무 짧았다. 부상이 겹치면서 이승엽은 일본 리그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요미우리에서 팀을 옮기기도 했다. 이승엽은 명예 회복을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전성기의 기량을 되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이승엽은 아쉬움을 안고 국내 복귀를 선택했다. 이를 두고 이승엽은 좋지 않은 세간의 평도 들어야 했다. 국내 리그 복귀에도 전성기를 지난 그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 의구심이 상당했다. 

이승엽은 국내 복귀 후 여전히 기량을 과시했다. 2012시즌 원 소속 팀 삼성으로 돌아온 이승엽은 거의 매 시즌 3할 이상의 타율과 20홈런 이상을 때려냈다. 30대 후반으로 향하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였다. 이승엽은 끊임없이 연구하면서 자신의 상황에 맞는 타격 자세와 스윙 메커니즘을 만들었고 이를 발전시켰다. 철저한 자기 관리를 병행했다. 이승엽은 단순히 이름값이 아닌 실력과 노력으로 중심 타자의 자리를 지켰다. 여기에 늘 성실하고 타 선수를 배려하는 자세는 모범적인 선수 생활의 전형이었다. 당연히 팬들은 응원하는 팀과 상관없이 그에 대해서는 각별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승엽은 국내 복귀 이후 KBO 리그의 각종 통상 기록을 하나하나 경신하며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커리어를 쌓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소속 팀 삼성 우승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승엽을 영입을 통해 삼성은 전력 강화와 함께 긍정의 에너지를 하나 더 확보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승엽의 소속 팀 삼성은 최근 수년간 급격한 전략 약화를 경험했다. 

구단 관리 주체의 변동과 함께 구단 예산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과감한 투자로 전력을 강화했던 모습이 사라졌다. 그 결과 머니게임 양상으로 변한 FA 시장에서 삼성은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팀 주력 선수들이 하나둘 타 팀으로 이적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좋은 않은 사건에 주력 선수들이 연루되면서 전력 누수를 더했다. 삼성은 2015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도 원정도박 파문에 휩쓸리며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준데 이어 2016 시즌에는 시즌 내내 부진을 보이며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그동안 5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의 중심이었던 주력 선수들이 FA 계약 등 이유로 팀을 떠난 공백을 메우지 못한 결과였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삼성은 중심 타자 최형우와 선발 투수 차우찬을 FA 시장에서 잡지 못했다.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는 선수들의 잡을 여력이 없었다. 대신 삼성은 이원석, 우규민을 FA 시장에서 영입하고 심사숙고를 통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등 전력 누수를 막으려는 노력을 병행했다. 코치진 역시 젊은 김한수 감독을 중심으로 재편했다. 삼성은 무너진 왕조의 복원을 기대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시즌 초반부터 삼성은 하위권을 맴돌았다. 삼성은 전력 약세를 절감하며 좀처럼 터닝 포인트를 만들지 못했다. 떠난 선수들의 빈자리를 여전히 채워지지 않았고 외국인 선수들의 활약도 미미했다. 그나마 외국인 타자 러프가 MVP 급 활약을 하며 수년간 이어진 외국인 선수 잔혹사를 끝냈다는 점이 위안이었다. 그럼에도 외국인 투수들의 부진은 팀 하위권 성적에 중요한 원인이 됐다. 삼성은 교체 시기마저 놓치면서 외국인 선수 영입 실패 사례를 추가하고 말았다. 부족한 선수층,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이 겹친 삼성이 하위권을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리그가 종료되는 시점에 삼성은 사실상 정규리그 9위를 확정했다. 삼성으로서는 지난 시즌에 이어 2년 연속 하위권 추락이다. 이런 삼성의 몰락을 지켜봐야 하는 이승엽의 마음은 착잡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선수 생활을 종료하는 시점에 자신의 KBO 리그 이력과 함께했던 팀의 추락이 함께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승엽이다.

이승엽으로서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그의 현역 생활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가 은퇴 경기를 하는 홈경기 티켓이 매진되고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자신의 이름값으로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는 점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이승엽으로서는 화려한 은퇴식보다는 그의 현역 마지막 경기를 포스트시즌 뜨거운 열기 속에서 치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팀의 달라진 사정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한때 삼성 왕조라 불리던 팀의 급격한 쇠락과 국민타자로 불리던 이승엽의 은퇴, 이 연관된 두 장면은 응원하는 팀을 떠나서 야구 팬들에게 왠지 모를 씁쓸함으로 다가온다.

사진 : 삼성라이온즈 홈페이지, 글 : 지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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