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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커다란 안경을 쓴 호리호리한 체격의 젊은 투수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무대에 뛰어든 젊은 신인, 염종석 선수가 바로 그 투수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투수에게 팬들의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범경기때 부터 조금씩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염종석 선수는 시즌 중반부터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이 되더니 에이스로서 팀을 이끄는 투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롯데 한국 시리즈 우승의 주역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당시 염종석 선수의 투구는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140km 중반을 넘는 묵직한 직구와 함께 140km에 육박하는 초고속 슬라이더는 타자들을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활처럼 휘는 슬라이더는 명품 그 자체였습니다. 타자들은 연신 헛 스윙을 남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데뷔 첫해 염종석 선수의 성적은 17승 9패, 6세이브, 방어율 2.33, 완투경기 13번에 완봉도 2번이 있었고 탈삼진은 127개 였습니다. 선발과 구원을 가릴 것 없는 그의 활약은 최고 투수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고 팀을 리그 3위로 이끌었습니다.



그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넘기 힘든 벽처럼 보였던 삼성, 해태, 빙그레 3팀을 연파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롯데의 중심에 그가 있었습니다. 새롭게 익힌 포크볼은 슬라이더와 함께 타자들을 더욱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슬라이더에 대비한 상대팀들은 또 다른 변화구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삼성과의 준 플레이오프 부터 팀의 에이스로 활약한 염종석 선수는 해태와의 플레이오프에서는 4차전 선발투구와 5차전 구원을 모두 해내면서 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습니다. 5차전이 끝나고 팀의 고참투수 윤학길의 선수의 포옹 장면은 지금도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습니다. 고독한 황태자로 불리웠던 윤학길 선수에게 염종석 선수는 너무나 든든한 지원군이었을 것입니다.

 

 

 


거듭된 투구로 지친 염종석 선수에게 한국 시리즈는 힘겨운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활약이 다른 선수들의 잠을 깨웠습니다. 부진하던 받동희 선수가 투수들의 구심점이 되었고 윤형배라는 깜짝 선발도 나타났습니다. 팀 전체가 하나가 되는 팀 웍이 만들어졌습니다. 젊은 신인투수가 팀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의 역할은 대단했습니다. 당시 최강의 전력이라던 빙그레는 롯데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힘없이 우승컵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화려하게 리그에 등장한 염종석 선수의 장래는 탄탄대로를 달릴 듯 했습니다. 이전과 달리 메스컴과 팬들의 관심은 커져만 갔습니다. 하지만 염종석 선수의 전성기는 거기까지 였습니다, 그 다음 시즌 10승으로 추춤했던 염종석 선수는 이후 성적으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부상과의 길고긴 싸움이 시작된 것입니다. 신인 때 부터 그의 팔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부상을 안고 투혼을 발휘한 것이었습니다. 초인적인 힘으로 1년의 화려함을 만들었지만 이후 그 화려함을 볼 수 없었습니다.


 
길고긴 재활과 거듭된 수술, 그는 재활이 끝나면 어김없이 마운드에 오르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언젠가 수술 자국이 가득한 그의 어때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남들은 한번도 어렵다는 재활과정을 수 없이 반복한 그는 롯데의 암흑기에도 끝임없이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다시 부상으로 인한 재활이 이어집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의 구위는 점점 떨어졌고 예전의 강속구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힘으로 윽박스르던 염종석은 사라지고 변화구에 의존하는 기교파 염종석 선수가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단 1년, 짧은 기간 이룬 성과가 너무나 화려함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일까요? 팬들은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기 보다는 이전 보다 더 큰 성원을 보냈습니다. 부실한 타선과 구원진의 그의 승리를 날려버릴 때 염종석 선수보다 더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화려함이라는 수식어는 사라졌지만 꾸준함이 그를 대표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2008년 시즌까지 그는 롯데 선발의 한 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이루고싶어했던 100승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선수생활을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진 투수들의 성장과 함께 그의 선발 자리는 위태로워졌고 조기 강판 당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새롭게 불펜진에 합류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습니다.

 
결국 2009년 시즌을 앞두고 염종석 선수는 선수생활 은퇴를 선언합니다. 다른 팀의 러브콜이 있었지만 개인적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도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영원 롯데 자이언츠 선수가 된 것이지요. 올 시즌 코치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부상재활의 고통을 잘 알고 있는 그이기에 비슷한 상황의 선수들에게 그만의 노하우를 전수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랜 선수생활 경험이 있는 염종석 코치의 합류는 팀에 여러모로 도움이 될 듯 합니다.



그도 잠시동안 아주 밝게 빛나다 사라지는 스타보다는 오랜 기간 빛을 발할 수 있는 선수들을 키우고 싶지 않을까요? 롯데 자이언츠의 레전드가 유능한 코치로 또 한번 성공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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