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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80회에서 다룬 이야기는 머나먼 유라시아 초원, 그곳에서 자리했던 고대 문명과 우리 역사에서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었다. 동양사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로 유명한 강인욱 교수는 강의를 통해 초원 유목민족들의 문화가 우리와 전혀 동떨어진 남 이야기가 아님을 설명해주었다. 

유라시아라는 개념은 유럽과 아시아를 통칭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자세히 들어가면 중국과 중동, 유럽을 연결하는 길을 따라 형성된 초원이라 할 수도 있다. 이 초원에서는 고대로부터 유목을 주업으로 하는 민족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고 한때는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여 중국과 맞서기도 했다. 

이들이 지배하는 초원에서는 동. 서양을 연결하는 초원 길이 일찍부터 형성되고 교역의 중요한 통로로 사용되었다. 초원의 유목민족들의 문화의 상호 전달자로서 큰 역할을 했다. 그들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문화를 발전시키고 세력을 키워나가기도 했다. 그들의 문명은 인류 문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또한, 초원의 유목민족들은 초원을 벗어나 중국 본토에도 진출해 나라를 만들도 중국 대륙의 지배자로 중국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중국 역사의 상당수는 한족이 아닌 북방 유목민족들의 역사이기도 했다. 칭기즈칸의 몽골은 지금까지 역사에 가장 큰 제국을 만들었고 가깝게 현재 중국이 생겨나기 이전 마지막 왕조는 중국 북방에 자리했던 여진족들이 그 중심이었다. 





이렇게 중국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초원의 유목민족들이지만, 그들의 역사와 문화의 기록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유목민족들의 그들의 역사와 문화의 기록을 잘 남기지 않았다. 독자적이 문자가 없었던 탓도 있고 척박한 환경에서 이동이 잦은 그들의 생활은 생존이라는 하루하루의 생존이 중요해다. 그들이 나라를 이룬 이후에도 과거의 삶의 방식이 쉽게 바뀌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는 대신 중국 한족들의 역사사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 기록은 편향되고 왜곡된 부분이 많았다. 자신들과 늘 대립관계에 있었던 초원 유목민족들이 한족들에게는 좋에 보였을 리가 없다. 실제 중국의 역사에서의 초원 유목민족들은 오랑캐, 이민족으로 격하되어 있고 그들의 성향은 약탈을 일삼는 호전성이 크게 강조되어 있다. 당연히 그들이 이뤄놓은 역사, 문화적 성과가 제대로 기록될 수 없었다. 여기에 그들의 유물과 유적 상당수는 약탈의 수단이 되면서 그 모습이 사라지고 변형되면서 찬란했던 문화적 전통이 상당부분 사라지는 비운도 겪어야 했다. 

유목민족에 대한 인식은 중국 유교 문화에 큰 영향을 받은 우리의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우리들에게도 유목민족들은 오랑캐, 후진적인 문화를 가진 지배를 하거나 물리쳐야 할 대상이었다. 조선시대 그러한 경향을 더 두드러졌다. 이에 바탕한 중국에 대한 사대 정책은 결국, 병자호란이라는 큰 불행을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차이 나는 클라스 제80회에서는 초원 유목민족들의 문화적 전통이 우리가 결코 동떨어져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립하던 삼국시대부터 아니면 그 이전부터 우리 민족은 초원 유목민족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고구려는 유목민족의 전통을 가진 부여족을 그 뿌리로 하고 있고 백제 역시 고구려에서 그 뿌리가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에 포함된 부여, 고구려, 백제는 모두 그 근원이 유목민족과 관계가 있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는 유목민족과의 활발한 교류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많다. 특히, 군사적인 부분에서 유목민족들의 마장마술 기술이 고구려 벽화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과거 기마부대 활용이 많았던 고구려는 초원 유목민족들의 나라에 경쟁을 하거나 교류하면서 그들의 마장마술 기술을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고구려와 유목민족들의 교류는 지리적인 영향으로 충분히 개연성이 있지만, 유목민족들 문화는 신라에도 영향을 주었다. 언뜻 삼국시대 동남쪽에 치우친 위치 탓에 북쪽과의 고류가 쉽지 않았던 신라가 유목민족과 교류했다는 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금관 등 각종 유물 속에서는 중앙아시아 유목민족들의 유물과 일치되는 부분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를 두고 신라의 기원도 북방 유목민족에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강의자인 강인국 교수는 그보다는 신라 역시 북쪽의 유목민족들과 오래전부터 교류했다는 증거로 풀이했다. 즉, 우리 민족은 초원을 지배했던 유목민족들과 오래전부터 교류하거나 경쟁하면서 우리 문화를 발전시키는 또 다는 자양분으로 삼았다. 

유목민족들의 역사와 문화는 오랑캐들의 문화가 아니라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유라시아의 초원은 우리 민족과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다. 이는 우리 고대사의 영역이 그만큼 더 넓어짐을 의미한다. 어쩌면 남북 관계가 개선되고 교류가 확대된다면 유라시아의 초원은 다시 한 번 우리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하면서 고대사 이야기 속에서 또 다른 미래를 그려본다. 


사진 : jtbc 홈페이지, 글 : 지후니 74 (youlsim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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