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역사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은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니다. 그동안 배웠던 역사는 시대를 대표하는 소수의 인물들이 대부분입니다. 역사 사료에 근거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게 하는 중요한 원동력은 이름 없는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시대의 영웅도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 보통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생활사는 그래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최근 생활사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박물관이 곳곳에 생겨나는 건 반가운 일입니다. 특히, 국립 민속박물관은 한 곳에서 다양한 생활사를 살필 수 있습니다. 경복궁에 가면 만날 수 있었던 국립 민속박물관이 파주에서 생겼습니다. 이곳은 보관 유물의 수장고를 관람객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시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난번..
늦가을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이상기후가 이제는 이상하지 않은 요즘이지만,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그 배턴을 넘겨주고 있습니다. 도시의 풍경도 겨울의 빛과 색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연말연시의 느낌을 곳곳에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빛은 그 끝을 향해 가는 2021년이 보다 편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하려는지 더 빛나고 있습니다. 그런 도시의 빛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그 모습을 담았습니다. 서울 스카이 전망대에 갈 일이 있어 장면을 사진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어두운 환경에 만족할만한 퀄리티를 얻지는 못했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풍경을 사진의 목록에 채울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한강을 바라보며 올림픽 대교 반포대교 그리고 놀이공원 퇴근길 타워, 연말연시 ..
도시에서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 요즘입니다. 과거에는 동네 곳곳이 어린이들이 놀이터였지만,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덮인 골목과 건물들은 그 공간을 사라지게 했습니다. 물론, 곳곳에 공원이 있고 놀이터가 있지만, 오롯이 어린이들만의 공간은 아닙니다. 시끄러운 놀이터는 민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흙이나 모래가 아닌 바닥은 항상 하고 위험이 있습니다. 어린이들도 각종 학원 등 방과 후 학습을 위해 시간이 없습니다. 최근 코로나 사태는 아이들이 모여 놀기 더 어렵게 하는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놀이방이나 키즈 카페 등 실내 놀이 공간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 규모도 점점 커지고 구성도 다양해졌습니다. 이에 어린이 놀이공간은 중요한 수익사업이 됐습니다. 그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비용을..
수원을 대표하는 명소인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은 그 자체로도 역사적 가치가 크지만, 도심의 풍경과 어울리며 도시의 미관을 다채롭게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가치가 있습니다. 시민들과 삶고 동떨어지지 않고 함께 하는 유적지라는 점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언제든 수원화성을 찾아 산책을 즐기고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역사의 흐름과 함께 하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런 수원화성은 낮에도 좋지만, 밤에도 색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풍스러운 모습은 야간의 조명과 함께 하며 신비로운 자태를 보여줍니다. 그 야경이 멋지다는 말을 들었지만, 가지 못했던 차에 기회가 생겨 밤 풍경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진들은 10월에 담은 장면들입니다. 지금보다 밤 기온의 차가움이 덜하고 보다 편하게 밤거리를 걸..
과거 식물원을 연상하면 유리온실에 다양한 식물들이 가득한 공간을 연상하게 됩니다. 일반 온실보다 더 크고 더 다양한 식물들을 사시사철 만날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지어지는 식물원은 여러 식물을 보여주는 것에서 벗어나 특색 있는 문화공간으로 공원으로서의 기능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도시에서의 식물원은 도시의 허파와 같은 역할을 하고 방문자들이 마음껏 좋은 공기를 마시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자리한 서울식물원 역시 큰 규모와 함께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특색있는 명소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을이 깊어지는 어느 날 서울식물원을 찾았습니다. 원래는 서울 식물원의 시민기자로서 이곳에서 다양한 행사나 전시 등을 함께 하고 그와 관련한 기사들을 작성해야 했지만..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임금 중 정조가 있습니다.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와 각종 과학 발명품 등 나라의 문화, 예술을 부흥하고 전성기를 이끈 성군이었다면 정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기울어져가는 조선의 부흥을 도모하고 변화를 꽤 한 개혁군주였습니다. 그는 유년기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정치싸움에 휘말려 아버지 영조에 의해 사사되는 비극을 겪었고 그로 인해 세손으로 있으면서도 할아버지 영조의 끊임없는 시험과 견제,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몬 반대파들에 의해 신변을 위협을 받으며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정조는 힘든 시간을 견디고 견뎌 영조에 이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그의 정통성에 대한 비판의 중요한 소재인 죄인의 자식이라는 멍에를 뛰어난 정치 감각과 학문과 예술, 무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