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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도 이제 단 하루만을 남겨두었습니다. 사람들은 지나간 한 해를 결산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에 분주합니다. 대부분 올 한해 아쉬움들을 뒤로하고 아쉬움 없는 새로은 한해를 기약합니다. 그리고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면서 한 해 동안 있었던 여러 사건들을 기억속에 담아두곤 합니다. 

2011년 프로야구 역시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는 프로야구 팬들의 마음을 울린 사건부터 대반전의 사건까지 다양한 일들이 가득했습니다. 2011년의 기록들이 과거의 기억속으로 남게됩니다. 각 구단과 팀들은 내년 시즌 더 좋은 성적을 위한 준비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아직 시즌을 시작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2012년 시즌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2011년 시즌의 여러 사건들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이 사건들로 프로야구의 역사는 또 다른 페이지를 채우겠지요.

1. 레전드들과의 이별

프로야구 초창기 팬들과 호홉했던 두 레전드가 올 시즌 우리곁을 떠나갔습니다. 영원한 3할타자 안타제조기라는 별명으로 불리었던 타격의 달인 장효조 삼성 2군 감독이 별세한 이후 곧바로 한국시리즈 나 홀로 4승에 빛나는 무쇠팔 최동원 전 2군 감독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고인들은 모두 선수시절에 비해 은퇴 이후의 삶이 그렇게 순탄치 못했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누구보다고 야구를 사랑했고 최고의 기량을 뽐냈던 두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삼성과 롯데를 대표하는 선수들이었음에도 그들의 의지와 달리 팀을 맞바꿔 옮겨야 했고 자신의 고향팀에서 은퇴를 할 수 없었습니다. 구단들의 일방적 팀 운영에 야구계의 전설들도 어쩔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마나 장효조 감독은 선수생활 말년에 롯데에서 우승을 기쁨을 누리기도 했고 은퇴식까지 치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동원은 삼성 이적이후 그동안의 혹사와 마음 고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최동원은 쓸쓸히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이후 최동원은 롯데에서 지도자생활을 이어가고자 했지만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그 뜻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후 롯데는 고인의 등번호를 영구결번하고 추도식까지 했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2. 김성근 감독이 전격 경질

시즌이 한창 진행되고 순위싸움이 절정에 다다른 시기, SK는 김성근 감독을 전격 경질하고 이만수 대행체제를 선택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2000년대 후반 최강 SK를 만든 감독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지금의 SK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징과도 같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재 계약 문제를 둘러싼 구단과 김성근 감독의 갈등은 둘 사이의 인연을 한 순간 끊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갑작스런 감독교체와 SK 구단의 다소 상식밖의 일 처리에 SK 팬들의 반발은 극에 달했습니다. 이만수 대행체제 역시 크게 흔들렸습니다. 서수들의 동요도 상당했습니다. SK는 이후 크게 흔들였고 우승경쟁에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무엇보다 SK 팬들의 계속된 비판여론은 구단에 큰 부담이었고 아직도 그 앙금이 남아있습니다.

SK는 후반기 저력을 발휘했고 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누르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랐습니다. 비록 삼성에 밀려 연속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이만수 감독체제가 공고해 지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선수들 역시 충격을 추스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SK팬들의 상당수는 김성근 감독을 잊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내년 시즌 SK구단은 팬심을 다독일 조치와 더불어 김성근 없는 SK도 강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3. 삼성의 압도록 우승

삼성은 시즌 중반이후 사실상 1위를 굳혔습니다. 오승환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불펜진은 타 팀을 압도했고 새롭게 영입된 외국인 투수들이 선발진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면서 강력한 투수진을 더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었습니다. 삼성은 강력한 투수력을 바탕으로 한 짠물 야구와 더불어 MVP급 활약을 해준 최형우를 중심으로 한 젊은 타선이 힘을 내면서 정규리그를 여유있는 1위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시리즈에서도 삼성은 KIA, 롯데와의 접전으로 지칠대로 지친 SK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였고 근 전년도 한국시리를 완패를 깨뜻하게 설욕했습니다. 삼성의 강력한 힘을 SK는 당할 수 없었습니다. 이후 삼성은 각 나라의 우승팀들이 대결하는 아시아 시리즈마저 우승하면서 우승의 기쁨을 더 크게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올 시즌 이후 전력누수가 없고 이승엽이 일본에서 복귀하면서 더 강력한 전력 구축이 가능해졌습니다. 올 시즌 우승이 새로은 삼성시대의 서막을 연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생길정도입니다. 시즌 시작전 오랜 기간 팀을 이끌던 선동열 감독의 전격 경질로 흔들렸던 삼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된 류중일 체제가 우승을 통해 더 단단해지면서 챔피언 롱런의 가능성마저 연 올 시즌이었습니다.

4. 스토브리그 폭풍

시즌 종료이후이에도 프로야구는 다양한 뉴스를 쏟아냈습니다. FA 시장이 열리면서 시작된 스토브리그는 예상을 뛰어넘은 반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대호는 롯데의 파격 조건을 뒤로하고 일본 오릭스와 계약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습니다. 이대호의 일본 진출은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큰 폭의 선수이동은 아무도 생각치 못했습니다.

SK 불펜의 핵심 선수인 작은 이승호와 최강 잠수함 정대현이 롯데로 팀을 옮긴 것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메이저리그 진출을 거의 확정지은 정대현의 롯데 이적은 스토브리그 최고의 대반전 드라마였습니다. 이 외에도 이택은 4년간 최고 50억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친정팀 넥센으로 복귀했습니다. 넥센은 이택근 영입으로 선수를 팔아 연명하는 가난한 구다이라는 이미지를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이택근 외에 LG의 주전포수였던 조인성은 정들었던 팀을 떠나 SK행을 선택했습니다. LG는 프랜차이즈 스타를 떠나보낸 것은 물론이고 앞서 언급한 이택근 외에 송신영 마저 한화에 내주면서 FA 시장의 패배자로 남게 되었습니다. 해마다 FA 시장의 큰 손이었던 LG는 주전 선수들의 이적을 그저 지켜보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김기태 감독 선임으로 분위기 반전을 노렸던 LG는 전력의 누수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이 외에도 롯데불펜을 든든하게 지키던 임경완의 SK 이적, SK와 롯데를 서류상으로 오간 임훈의 FA 보상선수 논란 등 올 해 스토브리그는 그 어느때 보다 많은 화제를 남겼습니다. 낮아진 보상기준과 대어급 선수가 많았던 시장의 사정, 이대호를 놓친 롯데와 그룹 오너의 강력한 지원의지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 한화의 영입이지가 시장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반면 SK, LG는 전력 약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5. 해외파의 국내 복귀

스토브리그의 끝은 해외파의 국내 복귀가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일본 최고 명문 요미우리의 4번타자로 활약했던 국민타자 이승엽은 일본생활을 정리하고 삼성에 다시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의 연봉은 최대 10억을 넘겼습니다. 우리 프로야구에서도 연봉 10억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에 질세라 한화 역시 돌아온 4번타자 김태균에서 15억의 연봉 대박을 안겨주었습니다.

일본에서의 2년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김태균의 15억 계약은 많은 논란 거리를 만들었습니다. 국내 복귀 과정에서 보여준 김태균의 아쉬운 마무리와 더불어 연봉의 적정성 여부 등으로 갑론일박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김태균으로서는 15억 이라는 연봉에 걸맞는 특급 활약을 해야하는 부담감을 더 가질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한화는 김태균과 더불러 메이저 특급 박찬호까지 품에 안았습니다. 당초 규정상 국내리그 복귀가 어려웠던 박찬화는 KBO의 결정으로 선수생활의 마무리를 우리 프로야구 무대에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관심을 모았던 연봉에 있어 박찬호는 2,400만원 최저 연봉을 계약하는 통큰 결정을 했고 한화는 박찬호에 보장했던 고액 연봉을 야구발전 기금으로 활용한다는 결정으로 화답했습니다.

특혜 시비가 있었던 박찬호의 복귀였지만 박찬호는 메이저리거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정으로 비판 여론을 잠재웠습니다. 김태균, 박찬호의 영입으로 한화는 팀 이미지 제고와 더불로 내년 시즌 더 강한 전력구축에 성공했습니다. 해외타 선수들의 잇단 국내 복귀는 내년 시즌 프로야구를 보는 재미를 더 높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사건들 외에도 프로야구는 아직도 풀이지 않고 있는 선수협의 내부 갈등, 야구 전문 아나운서로 큰 인기를 모았던 송지선 아나운서의 안타까운 죽음과 이에 연관된 뉴스들이 한 동안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수 많은 사건들로 가득했던 한 해였지만  600만 관중을 돌파할 정도로 프로야구는 올 해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이제 명실상부한 최고 인기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한 해였습니다.

이렇게 프로야구는 많은 사건과 뉴슬들로 한 해를 채웠습니다. 모든 것을 다 언급하지는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프로야구는 내년에도 또 다른 사건들과 뉴스들로 팬들과 만남을 가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사다난했던 2011년 프로야구 였습니다. 내년에는 어떤 모습으로 팬들과 만남을 가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Gimpoman/심종열 (http://gimpoman.tistory.com/, @youlsim)
사진 : 롯데자이언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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