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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서 야구종목이 제외 된 이후 전 세계 국가대표팀들이 대결할 수 있는 대회는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만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륙간컵(2010년 이후 폐지)이나 야구 월드컵대회가 있지만 프로선수들이 모두 출전하는 대회는 아닙니다. 침체기에 있었던 우리 프로야구가 다시 인기를 회복한데에는 우리 국가대표팀의 WBC에서 보여준 호 성적이 큰 역할을 한것도 사실입니다.

WBC 대회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야구의 수준이 세계수준에 근접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2006년 일본과 치열한 명승부를 주고 받은 끝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4강 진출에 성공했던 대표팀은 2009년 결승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비록 일본에 패하면서 우승을 놓치긴 했지만 우승 이상의 값진 준우승이었습니다.

당시 국가대표팀은 구성 과정에서 많은 잡음이 있었고 주력 선수들의 부진과 컨디션 난조로 고전이 예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하나로 뭉쳤고 이전 대회보다 떨어지는 전력이라는 평가속에도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준우승에 있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름이 있습니다. LG의 에이스 봉중근이 그렇습니다.

봉중근은 일본전에 대부분 선발로 등판하면서 일본 킬러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이름 중근에 빗대어 팬들은 봉의사라는 별칭까지 지어주었습니다. 실제 봉중근은 최강 전력을 자랑하던 일본과의 경기에서 매 경기 혼신의 힘을 다했고 선발투수의 역할을 100% 이상 해주었습니다. 김광현, 류현진이 컨디션 난조로 전력에 보탬이 되지 못하던 상황에서 봉중근의 고군분투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렇게 대표팀에 영광을 안겨준 봉중근이었지만 국내 리그에서는 불운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대 일본전 호투로 봉의사의 타이틀을 얻은 그였지만 국내리그에서는 봉크라이라 불릴 만큼 지독히도 승운이 없는 투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봉중근은 허약한 LG 투수진에서 군계일학의 활약을 했지만 개인 성적은 좋은 투구 내용이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2008년 11승 8패, 방어율 2.66, 탈삼진 140개를 기록하면서 봉중근은 리그 정상급 투수로 발동움했습니다. 메이저리거의 꿈을 포기하고 수 년간 인고의 시간을 견뎠던 그에게 탄탄대로 열릴 것 같았습니다. 제구가 잡히면서 봉중근은 힘에만 의존하던 투구에서 강약을 조절하는 투수로 거듭났습니다. 명실상부한 LG의 에이스가 된 것입니다. 이후 봉중근은 대표팀에서도 꼭 필요한 투수로 자리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 WBC에서의 투혼은 그에게 나쁜쪽으로 작용했습니다. 리그를 시작하기 전에 하는 대회인 만큼 WBC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컨디션을 전년도 보다 일찍 끌어올려야 합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없습니다. 투수의 경우 대회참가의 후유증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2009년 WBC에서 전력투구를 한 봉중근은 성적의 하락세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누적된 피로를 극복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봉중근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매년 하위권에 위치한 팀 사정은 그에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선발카드인 봉중근을 가장 많이 활용해야 하는 LG의 사정은 봉중근의 피로를 계속 누적시켰습니다. 더 큰 문제는 봉중의 역투가 팀 동료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호투한 경기에서 타선의 지원부족과 불펜의 난조로 승리를 날린 경기가 계속 되었습니다.

피로 누적으로 인한 구위저하, 팀 전력의 약화, 불펜진과 타선과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봉중근의 방어율은 해마다 올라갔고 성적 역시 승과 패를 동시에 쌓아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009년 11승 12패, 2011년 10승 9패의 성적은 그에게 불만족스러운 결과였습니다. 호투하도 불펜의 난조 등으로 승리를 놓칠때 마다 회한섞인 표정으로 경기장을 응시하던 그의 모습은 그의 불운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LG의 계속된 암울함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불운을 떨치기 위해 다시 의욕적으로 임한 2011년 시즌, 봉중근은 불의의 부상으로 더 이상 그 투혼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누적된 피로가 그의 몸을 고장낸 것입니다. 계속된 불운으로 마음속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을 봉중근으로서는 더 이상 흘릴 눈물마저 마르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이후 봉중근은 팔꿈치 수술와 재활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가 없는 사이 LG의 부진도 계속되었습니다.

지난 시즌 경기장 밖에서 팀의 추락을 지켜봐야 했던 봉중근이었습니다. 올 시즌 봉중근은 복귀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30을 넘긴 나이에 받은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은 선수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돌아온다 해도 예전의 구위를 회복한다는 보장이 없는 수술이었습니다. 그 사이 연봉의 대폭 삭감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봉중근은 묵묵히 몸을 만들었고 시즌 중반 복귀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LG로서는 봉중근의 복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선발진과 불펜 모두에 약점이 있는 상황에서 봉중근이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구위가 떨어지더라도 그가 가지고 있는 경험은 팀에 큰 보탬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키치, 리즈, 박현준이 주축을 이루는 선발진은 강해보이지만 두 외국인 투수가 2년차 징크스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또, 새로운 에이스 박현준은 부상 후유증과 경기 외적인 문제로 훈련에 집중하기 못하고 있습니다. 시즌 초반이 힘들 수 있습니다. 불펜 역시 송신영의 이적으로 헐거워진 느낌입니다. 신예 투수들의 활약에 기대를 걸어야 하지만 그 힘은 타 팀에 비해 크게 떨어집니다. 봉중근이 가세한다면 선발진과 불펜진 모두에 안정감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투수진의 리더로 봉중근의 존재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봉중근 개인으로도 기나긴 불운의 터널을 빠져나와 에이스로의 자존심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의 실패와 좌절, 국내복귀 후 리그 적응 실패로 인한 부진과 좌절, 제 2의 전성기에서 맞이한 부상과 좌절, 봉중근의 선수생활은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이런 시련들은 지나 30대 초반이 된 봉중근은 투수로서 가장 완숙한 기량을 보여줄 시기가 되었습니다.

큰 부상과 재활이라는 또 다른 시련을 지나고 있지만 2009년 WBC 때 보여준 그의 의지라면 그에게 닥친 계속된 불행도 그를 막지 못할것입니다. 야구 팬들 역시 응원하는 팀을 떠나 봉중근이 멋지게 재기해서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길 바랄 것입니다. 2009년 WBC의 투혼이 남겨준 여운이 너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봉중근이 거듭된 불운을 이겨내고 LG의 수호신이 될 수 있을까요? 올 시즌 전력 약화로 고심하고 있는 LG에게 봉중근의 부활은 꼭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봉중근이 자신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다면 LG도 만만치 않은 전력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시너지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봉중근의 부활과 그 활약 여부는 LG의 2012년 운명을 좌우할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 



Gimpoman/심종열 (http://gimpoman.tistory.com/, @youlsim)
사진 : LG트윈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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