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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야기 거리를 남긴 2012년 프로야구 FA 시장은 끝은 홍성흔의 친정팀 두산 복귀로 마무리되었다. 홍성흔은 롯데에서 성공적인 4년을 보낸 FA 모범생이었고 철저한 자기 관리와 리더십으로 롯데의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랜차이즈 스타 못지 않은 사랑을 받았던 홍성흔이었지만, 친정팀의 강력한 영입의지를 외면할 순 없었다.

 

홍성흔은 롯데에서의 화려했던 4년을 뒤로하고 또 다른 4년을 친정 팀 두산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의 성실함과 꾸준한 성적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수요자 증가로 뜨거워진 FA 시장의 분위기도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30대 후반의 노장에서 4년에 31억 원은 예전 같으면 쉽지 않은 계약이었다.

 

두산은 그만큼 홍성흔의 가치를 인정했고 홍성흔은 은퇴시기까지 안정적으로 뛸 수 있는 두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롯데와의 협상과정에서 자신이 제시한 조건을 낮추면서까지 홍성흔은 계약 기간에 주목했다. 두산은 팀에 부족한 베테랑의 리더십과 덕아웃 분위기를 살려줄 선수가 필요했고 양측의 이견은 쉽게 해소되었다.

 

사실 홍성흔은 프로 입단 이후 10년간 두산에서 활약했던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공수를 겸비한 포수로서 두산은 입단 이후 줄 곳 주전 포수로 자리했다. 홍성흔에 밀려 당대 최고 포수였던 진갑용이 후보로 밀릴 정도였다. 결국, 진갑용은 두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삼성으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지금은 리그를 대표하는 또 한 명의 포수지만 당시 진갑용은 경쟁에 진 아픔을 간직한 채 팀을 옮겨야 했다.

 

 

 

 

 

 

홍성흔은 신인 시절부터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와 쾌활한 성격으로 팀 분위기를 주도했다. 두산을 대표하는 단어인 근성와 허슬플레이를 대표하는 선수였다. 홍성흔은 이내 팀의 중심 선수가 되었고 두산을 이끌어가는 선수였다. 안정된 포수 리드는 물론이고 중심타선에 있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타격 능력도 우수했다. 홍성흔의 꾸준한 활약과 보이지 않는 리더십은 그가 없는 두산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홍성흔은 포수 포지션 문제로 구단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30살을 넘기면서 포수의 숙명과도 같은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2루 송구 등 수비능력 저하를 피할 수 없었다. 포수 자원이 풍부했던 두산으로서는 홍성흔의 타격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두산은 홍성흔에게 지명타자로서 새 출발을 제안했다.

 

구단의 방침에 홍성흔은 반발했다. 포수 포지션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홍성흔으로서는 포수로서 계속 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화이팅 넘치는 그에게 타격만 하는 지명타자 자리는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 구단과의 갈등이 커지고 부상까지 겹치면서 홍성흔과 두산과의 마음의 틈새도 멀어졌다. 2008년 시즌 지명타자로서 타율 2위, 최다 안타 4위 오르면서 성공적인 변신에 성공했지만, 갈등의 골은 메워지지 않았다.

 

이러한 팀을 롯데가 파고 들었다. 그해 FA 시장에서 롯데는 홍성흔의 마음을 잡는 데 성공했다. 홍성흔은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롯데의 구애를 받아들였다. 이는 두산 프랜차이즈 스타가 팀을 떠나는 것을 의미했다. 홍성흔은 미련없이 부산행을 선택했다. 그에게는 야구 인생을 건 도박과도 같았다.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환경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홍성흔은 롯데에서 지명타자 홍성흔으로 완전히 거듭났다. 홍성흔 오랜 침체기를 지난 가을 야구의 숙원은 푼 롯데를 강팀으로 이끈 핵심선수로 자리했다. 홍성흔은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으로 팀의 중심선수가 되었다. 롯데의 영원한 캡틴 조성환과 더불어 팀을 보이지 않게 이끄는 선수 중 하나였다.

 

홍성흔 효과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홍성흔은 제 2의 전성기를 방불케 하는 성적으로 롯데의 중심 타선을 더욱 더 강화시켰다. 홍성흔은 2009년 타율을 0.371로 여전한 정교함을 과시했다. 새로운 팀에 대한 적응기가 있었음에도 중심 타자로 손색이 없는 성적이었다. 2010년 홍성흔은 부족하다고 지적되던 장타력과 타점 생산력을 끌어올리면서 정교함을 갖춘 거포로 자신을 업그레이드시켰다. 2009년 시즌은 더 큰 발전을 위한 위밍업에 불과했다.

 

2010년 시즌 홍성흔은 홈런과 타점에서 선두권을 유지하며 이대호와 더불어 리그 최강의 중심 타선을 구축했다. 이런 홍성흔이 있어 이대호의 타격 7관왕도 가능했다 할 정도로 홍성흔의 2010년 활약은 눈부셨다. 만약 리그 후반기 몸 맞는 공에 의한 불의의 부상만 아니었다면 이대호의 7관왕을 저지할 수 있는 가능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을 정도의 페이스였다.

 

타격에 완전히 눈을 뜬 홍성흔은 2011년 또 다른 변신에 도전했다. 팀 공격력 극대화를 위해 롯데는 지명타자 자리를 유연하게 운영하고자 했고 홍성흔의 외야수 변신을 시도했다. 홍성흔에 부담스러울 수 있었지만, 새로운 도전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는 좋았던 타격감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수비 부담을 이겨내지 못한 홍성흔의 공격지표는 크게 하락했다.

 

 

 

 

 

 

그전 해 26개를 기록했던 홈런 개수는 한 자리 수로 줄었고 100타점 이상을 기록하던 타점 생산능력도 현저히 감소했다. 뒤늦게 시행착오를 바로잡고 타격 페이스를 끌어올렸지만, 초반 부진을 만회하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홍성흔은 3할 타율을 이뤄내면서 여전한 타격능력을 과시했다.  롯데에서 보낸 3시즌 연속 3할 타율은 분명 의미있는 기록이었다.

 

그리고 2012년 시즌 홍성흔은 또 한번의 예비 FA 선수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 했고 그가 롯데에 와서 이루지 못한 팀 우승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강한 의욕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이대호가 일본으로 떠난 상황에서 팀의 4번 타자로서 그 책임감은 더 막중했다. 문제는 이대호 효과가 사라진 타선의 집단 부진 분위기를 홍성흔도 피해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타 팀의 견제가 심해지면서 홍성흔의 타격은 시즌 초반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장타에 대한 부담은 타격 밸런스를 더 흐트러뜨렸다. 급기야 시즌 중반, 부상으로 상당 기간 결장하면서 팀의 어려움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후반이 타격감을 되살리며 15개의 홈런과 74타점의 만만치 않은 성적을 남겼지만, 4번 타자로서 부족함이 있었다. 4년 연속 이어온 3할 타율도 무너졌다. 나이에 따른 노쇠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는 FA 시장에서 그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성적의 하락세에도 홍성흔의 팀에 대한 헌신과 선수들의 하나로 묶는 능력에 주목하는 구단들이 많았다. 일약 홍성흔은 FA 시장의 불루칩으로 떠올랐다. 특히 하위권 팀에서 홍성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 홍성흔의 잔류를 확신하던 롯데가 초조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롯데는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협상안을 내놓았지만, 이미 친정팀 두산으로 기운 그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홍성흔은 친정팀의 복귀 요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 FA 협상 전 사전 접촉이 규정상 금지되어 있지만, 두산과의 사전 교감설이 이미 퍼져있었다. 선수로서의 야구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 홍성흔은 자신의 연고지에 그것을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은퇴 후 삶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을 것이다. 끝까지 열렬한 성원을 보낸 롯데 팬들이 그의 결정을 어렵게 했지만, 홍성흔은 또 다른 4년을 선택했다. 

 

 

 

 

 

 

롯데로서는 아쉬운 이별이다. 김주찬의 이탈과 함께 롯데는 전력 누수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장 1번과 4번 타순에 대안을 찾아야 한다. 홍성흔의 이탈이 더 큰 타격이 되는 것은 그가 팀의 구심점으로 팀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두산이 4년 계약을 보장하며 그를 영입한 것도 성적을 초월한 홍성흔의 능력을 원해서였다. 두목 곰 김동주가 있음에도 홍성흔을 다시 복귀시킨 것은 두산이 얼마나 홍성흔에 대한 기대가 큰지를 방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롯데는 FA 시장에서 핵심 전력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 지주까지 잃은 느낌이다. 노쇠화를 걱정하긴 했지만, 홍성흔이 없는 롯데 타선은 허전함 그 자체다. 홍성흔을 적으로 만나 상대하는 것도 여건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홍성흔의 난자리가 더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롯데 팬들 역시 열렬한 성원을 보내준 팬들을 뒤로하고 두산행을 선택한 홍성흔에 원망스러움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가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홍성흔의 롯데에서의 4년은 강렬했다.

 

하지만 홍성흔의 롯데에서 4년간 보여준 모습은 박수를 보내기에 충분했다. 마치 팀과 오랜 기간 함께 한 프랜차이즈 스타 이상으로 홍성흔은 헌신적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그의 허슬플레이와 더그아웃에서의 화이팅은 롯데 선수단에 큰 힘이었고 팀을 움직이는 또 다른 에너지와 같았다. 홍성흔이 보여준 롯데에서의 4년이 빛날 수밖에 없는 건 성적 이상의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홍성흔은 섭섭함을 안고 떠났던 두산에 화려하게 복귀하게 됐다. 롯데에서 4년간 좋은 모습을 보여 가능한 일이었다. 홍성흔은 떠나지만, 그에 상응하는 금전 보상과 보상 선수라는 선물을 롯데에 남겨주었다. 롯데와 홍성흔의 인연이 다시 이어지긴 어렵지만, 홍성흔이 남긴 유산은 상당 기간 롯데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FA 모범생 중 하나인 홍성흔은 FA로 떠났던 친정팀을 FA로 다시 복귀하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하며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롯데의 홍성흔에서 다시 두산의 홍성흔으로 자리잡는 것에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금까지 홍성흔이 보여준 능력이라면 두산의 기대를 충족시킬 가능성이 높다. 과연 홍성흔이 FA 모범생으로 이 또 한 번의 FA 역시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내년 시즌 프로야구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임이 틀림없다.

 

Gimpoman/심종열 (http://gimpoman.tistory.com/, http://www.facebook.com/gimpoman)

사진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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