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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의 마지막 도루왕 전준호를 추억하며

스포츠/야구 그리고 추억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13. 2. 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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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선수에 있어 오랜 기간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은퇴 후에도 팬들에게 기억되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도 없다. 프로선수가 되면 누구가 그런 소망을 가지곤 하지만,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프로의 세계는 그만큼 냉혹하고 치열한 경쟁이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베테랑 선수들에 대한 구단의 잘못된 인식도 크게 작용했다. 


구단들은 효율성의 논리로 베테랑들을 홀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긴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유니폼을 벗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정한 경쟁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세대교체의 물결 속에 한 시대를 풍미하는 선수가 휩쓸리는 것은 팬들에게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로야구 롯데는 타 팀보다 유독 팀의 레전드가 될 수 있는 선수들을 아쉽게 떠나보낸 경우가 많았다. 과거 한국 시리즈 4승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최동원이 그랬고 원년 롯데의 강타자 김용철도 롯데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하지 못했다. 수퍼베이비라 불리며 한 시대를 이끌어갈 투수로 평가받던 박동희도 타 팀에서 쓸쓸히 선수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이 외에도 롯데는 매 시즌 팀의 주축 선수들과 연봉협상 과정에서 크고 작은 마찰을 일으켰다. 이는 FA 시장에서 상당수 선수들을 잃는 결과로 이어졌다. 선수들의 마음을 잡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 올 시즌을 앞둔 FA 시장에서도 롯데는 홍성흔, 김주찬 두 주축 선수를 잃었다. 이들의 이적은 금액이나 조건의 차이보다는 보이지 않는 이유가 더 크게 작용했다. 

 

 

 

 

 


이렇게 롯데를 떠난 베테랑들 중에서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롯데의 마지막 도루왕 전준호가 그렇다. 전준호는 신인때부터 롯데 외야진의 주축이었고 팀의 테이블세터로 활약했다. 다부진 체구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타격과 현란한 주루 플레이는 롯데 공격의 중요한 무기 중 하나였다. 전준호는 빼어난 기량으로 롯데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전준호는 1992년 롯데의 기적 같은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었다. 개인적으로 두 차례 도루왕에 오르며 대도의 계보를 잇는 선수가 되기도 했다. 특히 1993시즌 야구천재 이종범과 벌인 도루왕 경쟁은 당시 큰 화제였다. 두 선수는 시즌 막판까지 1~2개 차이로 도루왕 경쟁을 벌였고 전준호는 간발의 차이로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이후 전준호는 1995년 69개의 도루로 또 다시 도루왕에 오르면 리그를 대표하는 정상급 1번 타자로 자리매김했다. 전준호는 롯데를 대표하는 선수였다. 하지만 1995년 전준호의 도루왕 타이틀은 롯데의 마지막 도루왕 타이틀이기도 했다. 1997시즌 전준호가 갑작스럽게 트레이된 이후 롯데는 더는 도루왕 타이틀 홀더를 배출하지 못했다. 


당시 롯데는 아마야구 최고 투수였던 문동환을 영입하기 위한 카드로 전준호를 현대에 제시했다. 문동환은 롯데 지명선수였지만, 아마 현대 피닉스 선수 소속으로 뛰었던 탓에 그 보유권을 롯데가 가질 수 없었다. 현대가 프로야구팀을 창단하면서 문동환 영입은 더 꼬일 수밖에 없었다. 롯데는 아마추어 현대에 지급해야 할 막대한 보상금을 전준호로 대신했다.

 

결과적으로 롯데의 전준호 트레이드는 패착이었다. 이후 전준호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현대와 히어로즈로 팀이 바뀌는 과정에도 정상급 1번 타자로 활약했지만, 문동환은 기대와 달리 1998시즌 12승, 1999시즌 16승 이후 부상이 겹치면서 급격히 내리막을 걸었고 이후 2004시즌 FA 보상선수로 팀을 떠나야 했다. 이후 문동환은 한화에서 2006시즌 16승을 올리며 재기에 성공했지만, 그의 부활은 롯데의 것이 아니었다.

 

롯데는 팀의 레전드가 될 수 있는 부동의 1번 타자를 너무 쉽게 떠나보냈고 팀의 10년 에이스로 여겨졌던 투수를 얼마 활용하지 못하고 타 팀으로 내주고 말았다. 두 선수 모두 롯데의 주축 선수가 될 수 있었지만, 당시 롯데 구단의 판단 실수가 더해지면서 타 팀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해야 했다. 전준호, 문동환이 얽힌 이 트레이드는 두고두고 롯데 팬들에게 아쉬움이 남는 사건이었다.

 

롯데는 전준호를 떠나보낸 이후 상당기간 1번 타자 부재에 시달렸다. 정수근이라는 당대 최고 1번 타자를 FA 영입하기도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김주찬이 자리하기까지 롯데의 1번타순은 타순의 큰 고민이었다. 떠난 전준호가 오랜 기간 기억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전준호 트레이드는 두고두고 롯데 구단이 팬들의 비난을 받는 소재였다.

 

현대로 팀을 옮긴 전준호는 이후 현대가 최강 팀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전준호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성실함으로 30살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 기량을 유지했다. 해마다 전준호는 매 시즌 3할대 언저리의 타율을 유지했고 꾸준히 안타와 도루를 만들어냈다. 도루 부분에서는 항상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다. 2004시즌에는 1995시즌 이후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도루왕 타이틀 홀더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전준호는 롯데 선수라는 그림자를 지워내고 당대 최강 팀 현대의 1번 타자로 정상급 기량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나이를 잊는 그의 꾸준함은 베테랑 선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현대에서 히어로즈로 팀이 바뀌면서 전준호는 선수생활 후반기에 큰 시련을 겪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히어로즈 구단은 고액 연봉을 받는 베테랑 선수들의 연봉을 대폭 삭감했다. 현대가 어려운 시절 후배들을 다독이며 팀을 이끌었던 히어로즈의 베테랑들은 반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팀을 떠날 수 없었던 이들은 구단의 처사에 따라야 했다. 전준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전준호는 거의 70%에 가까운 연봉삭감을 받아들였다. 2008시즌 전준호는 2억 5천만에서 7천만으로 연봉이 삭감됐다.

 

의욕이 떨어질 수 있었지만 전준호는 성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2008시즌 전준호는 114경기에 나서며 타율 0.310, 109안타, 16개의 도루로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40을 바라보는 나이의 선수라 믿기지 않는 성적이었다. 선수난에 시달리던 히어로즈의 주축 선수로 팀을 잘 이끌어주었다.

 

장수하는 선수로 40살을 넘어서까지 활약이 기대되던 전준호였지만, 2009시즌 입은 큰 부상은 그의 선수생활 연장 의지를 꺾이게 하고 말았다. 2009시즌 21경기 출전에 그친 전준호는 재기를 꿈꿨지만, 구단의 반응은 냉담했다. 전준호는 선수생활 연장의 의지를 더는 이어갈 수 없었다.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은퇴를 선택해야 했다. 또 한 명의 레전드가 쓸쓸히 선수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구단과의 마찰로 화려한 은퇴식도 열 수 없었다.

 

 

 

 

 

 

이런 전준호를 팬들은 잊지 않았다. 팬들을 중심으로 그의 은퇴식 논의가 있었고 전준호는 팬들이 만들어준 은퇴식을 치를 수 있었다. 성대한 은퇴식은 아니었지만, 1991년 프로입단 이후 2009시즌까지 18년을 이어온 선수생활을 의미있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야구를 아는 팬들은 베테랑의 가치를 알고 있었고 팬들이 마련한 감동의 은퇴식으로 이어졌다.

 

전준호는 롯데, 현대, 히어로즈로 이어지는 선수생활 통산 0.291, 2018안타, 550개의 도루라는 대기록을 남겼고 프로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현역에서 물러났다. 전준호는 이후 지도자 수업을 받고 지금은 신생팀 NC의 코치로 자리 잡았다. 그가 선수생활 동안 보여준 성실함과 오랜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는 특히 주루 부분에서 NC 선수들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도루왕 전준호는 추억 속의 이름이 되었다. 롯데와 전준호의 인연도 먼 기억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비록 전준호가 롯데에서 선수생할을 마감하지 못했지만, 롯데 팬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도루왕으로 남아있다. 롯데에서 보낸 6년은 그만큼 강렬했다. 그 당시 롯데는 똑딱이 타선과 기동력을 앞세워 지금과 다른 공격 야구를 펼치는 팀이었다. 전준호는 당시 롯데 공격의 중심에 있었고 강하게 롯데팬들에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올 시즌 전준호는 롯데와 지역 라이벌 구도를 형성할 신생팀 NC의 1군 코치로 롯데팬들과 만날 것으로 보인다. 지도자로서 그의 선수생활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직야구장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전준호는 아직 롯데의 마지막 도루왕이라는 점과 롯데 마지막 우승의 주역이었다는 점이다. 롯데의 과거를 기억하는 팬들은 전준호가 코치로 롯데와 인연을 이어가길 바랄지도 모른다. 앞으로 전준호가 지도자로도 어떤 모습을 보일지 그가 만들어갈 야구인생 제2막이 기대된다.

 


Gimpoman/심종열 (http://gimpoman.tistory.com/, http://www.facebook.com/gimpoman)

사진 : 넥센 히어로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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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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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09 08:50
    제가 92년부터 야구를 보기시작할때 전준호는 항상 1번타자였지요.. 정말 대단한 1번타자였는데.. 전준호 트레이드는 모기업 롯데의 짠돌이근성이 팀을 망친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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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09 10:09 신고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명절 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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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09 23:25
    FA이적 중 김주찬은 몰라도 홍성흔은 롯데측과 섭섭해서 떠난게 아닙니다. 롯데가 36살의 그에게 3년 24억을 제시한건 상당히 후한 조건이라고 보여집니다. 다만 두산의 수요와 자녀 교육때무에 서울로 가기를 원하는 아내등의 이유가 그가 롯데를 떠난 이유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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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09 23:27
    전준호의 트레이드는 롯데 역사상 최악의 트레이드였죠. 구단프런트,감독도 모르는 그룹고위층간의 쇼부(?)로 이루어진 말도 안되는 트레이드였습니다. 아마 그 그룹고위층이 누군지 몰라도 두고두고 말로가 좋지 않았을겁니다. 10승투수 2명이상의 몫을 하는 리그최고의 1번타자를 내보냈으니..차라리 몇억주고 문동환을 데려오는게 나았을겁니다. 되려 현대프런트의 탁월한 능력만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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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10 08:55 신고
    저도 전준호 선수 좋아했습니다...
    현대와 히어로즈에서 선수생활을 이어 갔다지만 ..
    롯데의 전준호가 제일 잘 어울리는 듯 합니다..
    코치로서도 .. 멋진 활약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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