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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은 설움 속에 유년기를 보냈던 장영실은 청년이 되어서도 노비라는 신분의 굴레 속에 고통받고 있었다. 그는 타고난 손재주와 천문을 읽어내는 남다른 능력이 있었지만, 어디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었다. 


장영실은 노비로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서 자신만의 천문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장영실은 그의 절친과 함께 숲속에 비밀 움막을 짓고 연구 성과물들을 기록했다. 이는 그의 부친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나름 큰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장영실은 자신의 모친이 억울하게 군관에게 죽임을 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아들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며 그를 애써 외면하는 부친과 부자의 정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다. 


장영실은 그럴수록 비밀 연구에 매진했다. 연구의 성과물인 혼상을 명나라와 일본을 오가는 상인에 팔아 그 대가로 명나라로 밀항할 계획을 세웠다. 마침 그를 다시 찾은 부친 역시 아들의 계획을 적극 도왔다. 장영실의 부친은 아들이 더는 노비로서 조선에서 억압받으며 사는 것을 원치 않았다. 장영실의 부친은 지병으로 자신의 삶이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 아들이 하루라도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했다. 







부친의 지원에 힘을 얻은 장영실은 그의 수상한 행동에 감시의 눈길을 보내고 있던 군관들의 방해와 박해에도 그들의 눈을 피해 천체와 시간의 흐름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천문장치인 혼상개발에 성공했다. 이는 그의 명나라 행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것을 의미했다. 장영실은 그동안 모친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자신을 쉼 없이 괴롭히던 군관에 통쾌한 복수를 하며 명나라로 가는 상선에 오를 수 있었다. 


그의 지긋지긋한 노비생활의 끝이 보였다. 하지만 조선의 정치 상황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마침 천문연구에 관심이 많은 세자 충녕대군의 측근인 이천이 장영실의 부친 장성휘를 찾았다. 충녕 대군은 천문연구에 있어 최고 과학자인 장성휘가 필요했다. 이천은 충녕대군의 명을 받아 장성휘를 도성으로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장성휘는 충녕대군과 이천의 바람과 달리 그의 생을 마감했다. 장성휘는 임종 직전 그의 아들 장영실의 비범한 재주와 혼상 제작 사실을 그의 절친이기도 한 이천에 털어놓았다. 이천은 즉시 명나라로 떠나가는 장영실을 붙잡았고 그는 동래현의 관노가 아닌 도성의 관노가 되는 처지에 놓였다. 그의 능력을 알아보려는 이천의 의도에 따른 일이었다. 장영실은 명나라행의 좌절과 더불어 부친의 사망을 함께 확인하며 깊은 슬픔에 빠졌다. 


이렇게 장영실이 좌절에 빠져있을 때 조선 조정은 민심 이반에 고심하고 있었다. 수 년간 계속되는 가뭄과 이로 인한 흉년이 불러온 기근은 백성들의 삶을 나날이 비참하게 했다. 힘든 삶을 견디지 못한 백성들 중에는 도적이 되거나 약탈을 일삼는 이들이 늘어갔다. 이는 조정 내외에서 자리하고 있는 고려왕조 추종 세력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천문과 기상 등을 관장하는 서운관의 관리들까지 이 세력에 연루되면서 그들에 의해 가뭄과 기근이 고려왕실의 왕위를 찬탈한 조선에 대한 하늘의 징벌이고 고려 왕조의 부활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는 유언비어가 급속히 유포되기 시작했다. 서운관의 관리들은 가뭄 등 기상 이변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명나라 서적과 주역 등에 의존하며 본질을 흐리고 있었다. 


이런 서운관에 세자 충녕은 의문을 제기하며 과학적인 천문 연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는 고려왕실 부활을 꿈꾸는 세력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유학적 사고를 강조하는 대신들에게는 왕권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충녕으로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막아내기 위해서도 천문에 능한 인물이 절실했다. 한양으로 향하는 장영실은 충녕대군에게 부합하는 인물이었다. 


결국, 장영실은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왕조 교체기 혼란과 변화의 시기에 그 중심에 서게됐다. 장영실로서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맞서 싸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는 상황이 됐지만, 자신의 능력을 떨칠 기회도 함께 찾아온 셈이 됐다. 하지만 아직 노비 신분이 그에게는 앞으로 일들도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움의 연속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글 : 심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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