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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에서 잊혀져가는 것들을 찾아가는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8번째 장소는 서울의 도심에 자리한 동네 연남동, 연희동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복잡한 지하철역 중 한 곳인 홍대 입구역에서 시작된 여정은 젊은이들의 즐겨 찾는 명소가 된 연남동 경의선 숲길 공원에서 시작됐다. 

과거 일제시대 서울에서 신의주, 만주로 이어지는 경의선 철도가 새롭게 조성되면서 수명을 다한 과거 철길을 따라 조성된 경의선 숲길은 가로수를 따라 다양한 카페와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색다름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을 끌고 있다. 

특히, SNS를 통해 특색 있는 카페들과 거리가 알려지면서 빠르게 인지도가 높아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됐다. 그 덕분에 과거 일반 주택들도 카페로 바뀌는 등 이곳의 모습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로 인해 과거부터 이곳을 지키며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한층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게 삶의 터전을 떠나거나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대형 음식점 등이 들어서면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부작용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연남동 거리에는 작지만 예쁜 카페들과 가게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 중에서 단독 주택을 개조해 만든 카페 형식의 방앗간이 눈길을 끌었다. 이 카페는 과거 누군가가 사용하던 고풍스러운 생활용품들을 소품으로 사용하고 인테리어를 과거 건물을 최대한 활용해 특색 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룬 이 방앗간 카페는 역시 과거와 현재를 모두 담은 고소한 참께라떼가 최고 인기 메뉴로 자리하고 있었다. 

추억과 멋, 예쁜 인테리어를 모두 느낄 수 있는 방앗간 카페를 떠나 이어진 여정은 연남동과 연희동이 만나는 곳 한 편을 차지한 차이나타운 그 중심을 이루는 화교학교로 이어졌다. 약 500명의 중. 고교생이 재학 중인 화교학교는 모든 수업을 중국어도 진행하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가리키며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가고 있었다. 과거 학생 수가 2,000명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기도 했지만, 시대의 흐름 속에 그 규모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리를 잡은 화교들에게 이 화교학교는 그들의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문화 다양성을 더해주는 소중한 장소였다. 화교학교에서 학생들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발걸음은 2대째 운영 중인 중화음식점으로 향했다. 

화교로 부모님에 이어 중화음식점을 운영하는 부부는 직접 손으로 군만두를 빚어 만들어낸 등 전통 방식으로 만든 중화요리로 오랜 시간 동네를 지키고 있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주인 부부의 정성 탓인지 동네에서는 단골들이 자주 찾는 또 다른 명소 중 하나였다. 진심이 통한다는 말이 딱 맞는 그런 곳이었다. 

중화음식점에서 허기를 채운 여정은 연희동 한 편에 자리한 연희문화창작촌의 풍경을 살폈고 유망 작가들의 핸드프린팅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이곳은 과거 일반인들이 다가설 수 없는 곳이었지만, 2009년부터 누구가 찾을 수 있는 곳이 됐다. 물론, 이곳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문인들이 있는 건물 내부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창작의 공간이 폐쇄적인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듯 보였다. 

연희문화창작촌의 예술의 향기는 단독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선 연희동 골목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주택가에서 오래된 LP 판으로 문을 장식한 단독주택에서는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공유하는 작은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집 주인은 SNS를 통해 행사를 공지하고 사람들이 그 공지를 따라 이곳을 찾으면 음악이나 책 감상회 등을 통해 느낌이나 감상을 공유하고 토의하는 장이 마련된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옆집 일에 무관하기만 한 현실에서는 낯설어 보이기까지 한 풍경이었지만, 마음 한 편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연희동에는 주택가 한 편에 자리한 오래된 떡집이 또 다른 명소였다. 3대째 이어지고 있는 이 떡집은 쉽게 맛볼 수 없는 콩고물 떡이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 떡은 콩으로 카스텔라 가루 같은 콩고물을 수작업을 만드는 전통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고 정성 가득한 떡은 만들면 금방 동이 날 정도로 인기 메뉴가 됐다. 떡집의 1대 할머니부터 시작된 방식을 지키려는 노력과 좋은 맛을 위한 마음이 손님들과 통한 결과로 보였다. 

떡집을 나와 이어진 여정은 마지막으로 40년간 연희동을 지키고 있는 미용실로 이어졌다. 이 미용실은 기계적으로 머리를 해주는 곳이 아니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수시로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식사도 하는 일종의 노인정과 같았다. 이 미용실의 원장은 이곳을 찾는 어르신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등 편안하게 이곳에서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이곳의 원장과 손님들의 관계는 단순한 손님과 주인의 관계 그 이상이었다.

이곳에서 어르신들과 원장은 정을 나누고 필요할 때는 미용실의 일도 도와주면서 마치 가족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삭막하기만 한 도시 한 편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훈훈한 장면이었다. 40년 미용실의 온기를 느끼며 여정은 마지막으로 다시 젊은이들도 가득한 연남동 경의선 숲길의 밤거리 풍경으로 이어졌다. 

연남동, 연희동은 서울의 번화가와 연결된 곳이었지만, 그 속에서도 모든 것이 새롭게 변화기만 한 건 아니었다.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구전되어 전해지는 이야기에 바탕한 장희빈 우물과 같이 과거의 것을 지키고 경의선 숲길과 같이 과거의 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다양함이 함께하고 있었다. 또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 역시 있었다. 삭막한 도시지만, 그곳에서도 마음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오아시스는 있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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