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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5주기] 깊은 바닷속, 아직 건져올리지 못한 진실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19. 4. 16.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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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4월 16일, 이날은 오전부터 온 국민의 시선이 진도 앞바다로 향해있었다. 수백 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타고 있었던 대형 여객선 사고 소식이 실시간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탑승자들의 규모 등을 고려하면 최악의 해상 사고가 명확했다. 더군다나 그 배에는 안산에서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난 수백 명의 고교생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안타까운 마음으로 뉴스 속보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 

한 언론에서 학생들을 전원 구조했다는 뉴스를 타진하면서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회사 업무로 외근 중이었던 나 역시 학생들이 평생 잊지 못할 수학여행을 하게 되었다는 농담을 사람들에 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회사로 돌아와 인터넷 뉴스를 다시 본 순간, 그 뉴스가 오보였음을 알았다. 구조작업을 진행 중에 있지만, 배 안에는 수많은 승객들이 여전히 구조되지 못했다. 그 사이 배는 앞 부분만을 남기고 바다로 가라앉아버렸다. 여전히 수백 명의 고교생들과 또 다른 승객들의 그 배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호 사고는 엄청난 충격을 온 국민에 안겨주었다.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깊은 바닷속으로 배와 함께 빨려 들어가는 장면을 지켜본 국민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에어포켓 등을 통해 일말의 생존 가능성을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구조작업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희생자만 늘어날 뿐이었다. 그나마도 상당수 사람들은 차디찬 바닷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구조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깊은 절망감과 함께 큰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 나라인지 대형 재난에 무기력하기만 정부의 대처에 대한 비난 여론이 크게 일어났다. 또한, 사고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은 국민들의 분노를 더 크게 만들었다. 

세월호가 제주 항로에 대한 운영권을 가지게 된 배경과 세월호 자체의 문제부터, 사고 당시 선장과 선원들의 이해할 수 없는 대처, 또한 그들이 승객들에 대한 구조 의무를 저버리고 먼저 탈출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세월호 사고가 과연 단순 사고인지에 대한 의문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에 정부는 세월호 선주의 책임을 강조했다. 언론들은 그와 그의 가족들의 파행적 회사 운영과 그들이 사이비 종교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소식을 연이어 보도했다. 심지어 그들의 사생활까지 더해 선정적인 뉴스를 쏟아냈다. 

하지만 세월호 선주가 백골의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사건은 더 미궁 속에 빠져들었다. 사고의 가장 큰 책임자이고 그 원인을 잘 알고 있을 거라 여겨졌던 이가 사라지면서 세월호 사건의 책임자도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누군가는 이렇게 사건이 희지 부지 끝나기를 기대했겠지만,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은 끝나지 않았다. 

사고 유가족을 중심으로 진상 규명과 책임자의 처벌 등이 강하게 요구됐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도 긍정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의 대처에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났고 사고 발생이 한참 지나서야 상황실에 등장한 대통령이 사고 상황을 모르는 듯한 발언까지 정부의 불신을 키웠다. 이는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더 크게 했다. 과연 세월호 사고가 피해자들의 불행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커져갔다. 

이후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났다. 언론의 보도 태도가 변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유가족의 요구에 대해 정치적 이해관계가 더해진 것이라는 식의 보도가 하나 둘 등장했다. 유가족을 향해 어떤 목적을 위해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식의 반론이 하나 둘 인터넷에 등장했고 이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정부의 태도 역시 유가족을 위하는 듯했지만, 점점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에 미온적으로 변했다. 

그 사이 책임자들의 법적 처벌이 알 수 없는 벽에 막히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상 규명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죄악시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국가적 재난에 대해 정치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이념적 잣대까지 적용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다는 것조차 큰 용기가 필요하게 됐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계속되는 구조작업과 세월호 인양, 조사 특별위원회 활동 등에 있어 적극 지원해야 할 정부가 이를 방해하고 심지어 진실을 숨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이러한 정부에 대형 언론들 여론을 형성했다는 점이다. 그 사이 시간을 흘러갔고 세월호는 깊은 바닷속에서 점점 잊히는 존재가 됐다. 유가족들의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목소리는 점점 그들만의 외침이 되어갔다. 이들에 대한 여론도 점점 사그라 들었다. 그들의 노력은 어느 순간 반정부 투쟁이라는 정치적 색깔이 칠해졌다. 그렇게 세월호 사건은 우리가 경험하는 대형 사건들 중 하나로 변해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국정 난맥상이 드러나고 대통령 탄핵 정국이 조성되면서 세월호 사건은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억눌렸던 진실들이 하나 둘 조명을 받았고 유가족 주장이 지지를 얻었다.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려 했던 정권이 탄핵되면서 진실규명에 대한 움직임은 더 활발해졌다. 과거 정부의 세월호 사건에 대한 조직적 은폐 시도와 권력기관을 동원한 여론 조작의 진실까지 드러나면서 세월호 사고는 단순한 사고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그 사이 정권이 교체되었다. 정체되었던 세월호 인양과 추가 구조작업, 진상 규명이 활발히 진행됐다. 사고 현장의 바닷속에서 녹슬어 가던 세월호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고 찾지 못했던 희생자들의 유해도 수습됐다. 진상 규명을 위한 과학적 조사도 이루어졌다. 그렇게 사고 후 5년이 시간이 흘러갔다. 

이런 변화에도 세월호 사고에 대한 원인과 대처 과정의 문제,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은 확실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고 원인이 애초 알려졌던 무리한 선체 증축과 과적의 요인만이 아님은 밝혀졌지만, 왜 거대한 여객선이 잔잔했던 바다에서 침몰해야 했는지에 다한 속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여전히 이에 대한 논란이 진행 중이다. 사고에 대한 책임자 처벌 역시 새월호가 단순한 여객선 이상의 존재임을 밝혀졌지만, 선주 일가에 대한 처벌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었고 정부 관계자들의 책임과 처벌도 여전히 답보상태다. 

물론, 긍정적 변화는 있었다. 세월호 사고에 책임이 있는 정권이 탄핵당했고, 희생자 유가족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졌다. 이제는 유가족들이 이루고자 한 것이 대부분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여론도 상당하다. 희생자 추모를 위한 시설들도 하나 둘 사라져갔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고등학교에서도 그날의 흔적들이 사라져가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세월호 사고가 있었던 4월 16일은 점점 사람들의 망각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심지어 정치적 이용을 할 만큼 했다는 식의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은 힘들고 고통스럽다.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잊고 싶은 이들도 많다. 하지만 세월호를 잊기 위해 필요한 그날의 진실이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단순한 사고로 기억하기에는 지워야 할 의문부호가 너무 많다. 세월호는 바다에서 건져올려졌지만, 그날의 바닷속에 잠긴 진실은 바다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5년 전 4월 16일,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배와 운명을 함께해야 했었는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련들이 폄하되고 이념의 잣대로 재단되었어야 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 진실이 밝혀진다면 우리 세월호를 덜 무거운 마음으로 기억 저편으로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월호 5주기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어서는 안된다. 


사진, 글  : jin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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