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노무현 서거 10주기] 10년의 세월,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노무현

발길 닿는대로/여러가지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19. 5. 23. 14:13

본문

728x90
반응형

한 정치인이 세상과 작별한지 10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우리 정치권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의 공과를 떠나 여전히 그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현재 진행형의 인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정치인이다. 2009년 5월 23일 오전, 각 언론사는 속보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 그리고 그가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버렸다는 사실은 온 나라를 충격속에 빠뜨렸다. 

당시 검찰의 비리 수사와 정권의 전방위적 압박에 몰려있는 노무현은 고립무원의 상황이었다.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정치 세력뿐만 아니라 그가 속해있었던 정치세력도 그와 등을 돌렸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던 지지자들도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대통령 퇴임후 여생을 조용히 고향에서 보내려던 그의 소망도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대중과의 만남도 끊고 칩거했다. 하지만, 그의 사저를 둘러싼 언론에 포위된 칩거생활도 편안하지 않았다. 정치인 노무현은 어떤 누구와도의 대결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권력에서 물러난 그는 힘없는 소시민에 불과했다.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중압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는 맞서 싸우기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렇게 그는 세상과 작별했다. 






그의 서거는 온 나라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추모 열기가 나라를 뒤덮었다. 그 속에는 인간 노무현에 대한 연민도 있었고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재평가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의 대통령 당선을 소망하고 그를 위해 스스로 온 힘을 다했지만, 그의 재임시절 그와 멀어졌던 지지자들도 뒤늦은 후회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를 애도하는 것 외에 달리 할일이 없었다. 수 많은 인파가 그를 애도했지만, 그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 이후였다.

그렇게 노무현은 10년 전 오늘 우리와 작별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잊혀지지 않았다. 정치권의 정쟁과정에서 그의 이름은 계속 언급됐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정치인 노무현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의 대통령은 그의 비서실장이었고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은 정치의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와 반대편에 있었던 이들은 지금 정권을 공격하는데 있어 노무현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의 공.과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정치인 노무현은 철저히 비주류에 속해있었다. 고졸 출신으로 정치인에게 필수적인 학연의 지원이 없었다. 부산 경남 태생이지만,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에 속해있는 않았던 탓에 지역전 기반도 미미했다. 정치적으로도 국회의원, 장관을 역임하긴했지만, 수 차례 선거에서 패하면서 다선 국회의원이 되지 못했다. 그 탓에 당내에서 세력을 넓힐수도 없었다. 그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을때만 해도 그것이 현실이 될거라 믿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는 정치 초년생부터 지역주의 타파, 특권없는 세상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그의 삶이 투영된 정치 신념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편안한 정치인의 길을 걸을 수 없었다. 그의 메아리 없었던 외침은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대중적으로 활용되면서 주목받지 못했던 정치인 노무현은 점점 그 입지를 넓혀나갔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마침 인터넷과 SNS가 보편화되면서 그것을 통한 여론형성이 보편화되는 시기였다. 주류 언론에서 외면받았던 노무현에게는 큰 기회였다. 노무현은 그 새로운 여론 플랫폼을 통해 전국구 정치인으로 자리했고 대통령 후보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후 노무현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수차례 어려움이 있었지만, 자발적인 지지층의 열성적 응원이 기반이 되면서 마침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지역기반도 없고 거대 정치세력의 후원도 없는 말 그대로 큰 배경이 없는 대통령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대통령 노무현의 길은 험난했다. 주류 언론들은 그에 대한 악의적 기사를 쏟아냈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에서도 노무현은 확실한 우군을 얻지 못했다. 그의 개혁 시도는 번번히 저항을 받았고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임기 초반 탄핵의 위기에 몰리기도 해다. 총선 승리와 국민적 지지로 대통령의 자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FTA와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 다국적군 파병, 대북송금 특검 등의 일은 그의 지지층마저 그와 멀어지게 했다. 그 사이 모든 잘못된 것은 노무현탓이고 경제실패의 프레임이 덧씌워지면서 그의 지지율은 급락해다. 노무현은 대연정을 통해 지역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선거제 개편을 골자로한 개헌시도를 했지만, 그 승부수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의 멍에를 써야했다. 이후 들어선 정권에 의해 그가 했던 일은 부정되고 폄하됐다. 

하지만 그 정권의 실정은 야인이 된 노무현의 대한 긍정 여론을 불러왔다. 실패한 대통령의 낙인이 찍혔지만, 퇴임 이후 노무현은 더 큰 성원을 받고 주목을 받았다. 이는 정권에는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다. 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그를 정쟁의 일선으로 끌어올리고 말았다. 노무현은 스스로 그 싸움을 포기했다. 그는 싸움을 포기했지만, 이는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싸여 힘을 잃었던 진보진영이 다시 뭉치고 일어서는 계기가 됐다. 

노무현의 유산은 지금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더불어 그가 했던 일들이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그에대한 무조건적 찬양만 있는 건 아니다. 대통령 재임기간 잘못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지나치게 왜곡되고 폄하된 대통령이었다. 

지금도 보수 언론에서 노무현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평가가 다양한 건 당연하지만, 그의 지역주의 타파, 특권 철폐, 참여정치의 구현 등 그의 정신은 진영 논리속에 가둬서 평가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또한 이 과제은 여전히 우리 정치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노무현과의 완전한 작별은 이런 과제들의 해결이 되야 가능할지도 모른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지금 기준으로 10년이면 그 변화의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이 변화와 무관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보다 더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퇴보했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다. 노무현의 신념과 정치 철학은 당시에는 파격적이었지만, 지금도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 정치가 후진성이 여전하다면 노무현을 떠나보내는건 더 늦어질지도 모른다. 


사진, 글 : jihuni74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