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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27번째 여정은 서울의 북쪽 성북구 성북동에서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조선시대 도성의 북쪽에 자리하고 있어 그 이름이 유래된 성북동은 도성을 둘러싼 성곽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였다. 그 안에서 과거의 전통을 지켜나가는 이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동네 한 바퀴의 시작은 거의 200년 만에 일반 시민들에 개방된 조선시대 정원인 성락원이었다. 그 기원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성락원은 자연과 함께 하는 조선시대 정원의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과거에는 철저히 숨겨진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그 모습을 제한적이지만, 시민들이 볼 수 있게 됐다. 

성북동은 성락원과 함께 조선 시대 수도 한양을 방비했던 성곽들이 동네를 둘러싸고 있다. 한양도성 순성길이라 이름 붙여진 성곽길은 그 길이가 18km가 넘고 종로구와 성북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멋진 경관과 야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서울의 또 다른 명소가 됐다. 

이 성곽길과 동네를 연결하는 작은 암문을 통해 성북동에 발을 내디딘 여정은 그 성북동을 지키는 사람들과 만남으로 이야기가 채워졌다. 그 암문을 지나 동네로 향하는 길에 오래된 우물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북정우물이라 불리는 이 우물은 한때 사용을 할 수 없었지만,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정화되고 지금은 맑은 물이 샘솟고 있었다. 그 우물 옆에는 마을 사람들은 쉼터가 마련되어 마을 사람들의 마음속 갈증을 씻어주고 있었다. 그 우물물은 쉼터 옆 작은 수족관을 만들고 유지하는  원천이 되고 있었다. 






수족관에 자리한 거북이의 배웅을 받으며 산길을 걸었다. 오래되어 낡고 낮은 담장이 정겨웠고 곳곳에 자리한 작은 텃밭은 도심의 삭막함과 다른 장면이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낮은 담장 너머로 서로에게 정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북정마을 한 편에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맷돌을 돌려 두부를 만들고 그 두부를 나누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에서 따스함이 느껴졌다. 

성북동에서는 과거의 전통을 지키는 이들도 만날 수 있었는데 마을 한 편에서 전통염색 천연 염색 공방이 있었고 그곳에서는 추억 가득한 작품과 소품들이 가득했다. 특히, 이제는 낡고 고장 나 버려질 뻔했던 생활가구들이나 물건들은 예술의 영감을 주는 소재로 활용되고 있었다.

과거의 전통을 지키는 예술가뿐만 아니라 성북동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운영되는 공방들이 모여있는 마을도 있었다. 이곳에서 젊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었다. 일부는 그들의 작품들이 수익원이 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렇게 성북동은 예술가들의 감성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곳이었다.

성북동에는 우리 근대사의 흔적도 남아 있었는데 일제시대 항일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의 거처였던 심우장과 만날 수 있었다. 심우장은 한용운이 직접 건축한 건물도 그의 말년을 보낸 곳이었다. 한용운은 심우장을 만들면서 총독부 건물을 볼 수 없다 하여 북향으로 건물을 건축할 정도로 항일 의식이 투철했다. 그는 항일 운동을 하면서 고초를 수차례 겪었지만, 그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심우장은 그런 한용운이 정신이 깃든 장소였다. 

역사의 현장을 지나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을 만났다. 참나무 장작구이 통닭구이 가게에서는 자신만의 특재 육수와 찹쌀을 넣어 많든 건강 장작구이 통닭으로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장님의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뽕잎으로 반죽한 반죽에 오디 생크림을 넣어 만든 선잠빵을 만드는 빵집에서는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었다. 

이 빵집에서는 이곳에서 만든 빵을 생활이 어려운 동내 어르신들과 나누는 봉사활동을 함께 하고 있었다. 진행자가 그 빵을 전달하기 위해 찾은 성북동 산기슭의 집은 가파든 골목길을 한참 올라가야 했고 아직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힘든 삶 속에서 이 빵집의 빵은 외로움까지 더할 수 있는 이 집 어르신에게 큰 힘이 될 것 같았다. 떠나는 진행자를 붙잡아 이 집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달걀과 음료수를 전해주는 어르신의 모습은 마음 한편을 뭉클하게 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성북동에서 만남은 다시 이어졌다. 과거  우리나라 대형 행사의 꽃 장식을 전담하며 플로리스트라는 새로운 직업을 개척했던 이는 성북동의 마을 주민이 되어 마을의 화단을 가꾸며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있었다. 담쟁이넝쿨이 감싸고 있는 그의 집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정원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예술 활동을 지속하면서 자신의 정원을 누구든 찾을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또 다른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런 따스한 마음은 북정마을에서 30년 넘게 한 집을 지키는 노부부에게서 느낄 수 있었는데, 이 노부부의 집 한편을 차지한 된장독에는 할머니의 손맛이 더해진 전통 방식의 된장들이 이 집의 역사를 간직한 채 숨 쉬고 있었고 팔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뒷산의 약초를 관리하고 마을 사람들과 나누는 할아버지의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의 말미, 마을 쉼터의 공중전화박스에 마련된 작은 도서관에서 발견한 시집 성북동 비둘기는 개발이 밀려 그 원형이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현대적이고 편리한 것이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들이 사라져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개발에 밀려 터전을 잃고 사라진 성북동 비둘기는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성북동은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이, 새로운 것보다는 과거의 것이 더 많이 남아있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의 모습은 결코 어둡거나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사람 사는 정이 삶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성북동도 언젠가는 변하겠지만, 사람 사는 정은 사라지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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