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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은 고려 말과 조선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정도전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건국되는 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조선의 건국과 함께 조선의 통치 시스템을 만들고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있어 중요한 설계자였다. 


하지만, 조선 3대 왕이 된 이방원과의 권력 다툼에 밀려난 이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이후 조선의 역사에서 역적이었고 철저히 배척됐다. 조선은 정도전이 세운 토대 위에 건국되고 수백 년의 역사를 유지했지만, 정도전은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정치적으로 복권된 된 조선 후기 대원군이 집권한 이후 이루어졌다. 정도전은 살아서도 그리고 죽고 나서도 순탄한 삶을 살지 못한 풍운아였다. 8월 7일 방영된  JTBC  시사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에서는 이 정도전의 삶을 주제로 하여 방송을 했다.  

정도전이 역사에서 그 이름을 알린 건 고려 후기 공민왕 때였다. 공민왕은 몽고와의 수십 년에 걸친 전쟁과 이어진 몽고가 세운 대 제국 원나라와의 지배속에서 피폐해진 고려에서 마지막 희망과 같은 인물이었다. 공민왕은 이전의 왕처럼 원나라의 지원 속에 왕위에 올랐지만, 이후 원나라의 속박을 벗어나는 대외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고 친원 세력인 권문세가들이 장악한 국정을 일신하는 내부 개혁에도 박차를 가했다. 




공민왕은 이러한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게 위한 우호세력이 절실했고 그 과정에서 중국에서 들어온 신흥 학문인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신흥 사대부들을 국정에 다수 기용했다. 그 과정에서 정도전은 등용됐고 권문세가들에 맞서는 신진 사대부의 한 축으로 공민왕의 개혁을 뒷받침했다. 신흥 사대부들과 공민왕의 개혁은 일정 부분 성공적인 모습도 보였지만, 권문세가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을 반발에 어려움을 맞이했고 개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공민왕의 피살되면서 큰 좌절을 맞보게 된다. 

공민왕 사후 고려는 나이 어린 우왕이 왕위에 오르고 친원 정책을 기반으로 하는 권문세가 세력들이 국정을 장악했다. 당연히 그들은 공민왕의 신흥 사대부의 개혁 정책을 후퇴 시켰다. 권문세가와 대립했던 신흥 사대부 세력은 정치적 탄압을 받으면서 권력에서 배제됐다. 정도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정도전은 중국의 신흥 강국 명나라의 친교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원나라의 관계 회복을 원하는 권문세가들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정도전은 원나라 사진을 맞이하는 임무를 명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원나라의 국교 수립을 반대하는 일종의 항명을 했다. 이는 그의 정치적 고난을 불러왔다. 이를 빌미로 정도전을 비롯한 신흥 사대부 세력 상당수는 숙청을 피할 수 없었다 정도전 역시 전남 나주의 시골로 긴 유배길을 올라야 했다. 

정도전으로서는 시련의 시기였지만, 이 시기가 그의 정치사상을 재 정립하는 계기가 됐다. 방송에서는 그의 유배생활을 정도전의 중요한 3번의 만남 중 하나로 보았다. 정도전의 첫 번째 만남은 고려 말 성리학자들의 양성하던 성균관에서 이루어졌다. 성균관은 학문의 전당이기도 했지만, 신흥 사대부들의 정치적 세를 규합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 속에서 정도전은 오랜 벗인 정몽주와 함께 대학자 이색과 만났다 정몽주는 훗날 정치적으로 대립하긴 했지만,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개혁을 함께 주장했고 이색은 당시로는 유일하게 중국에서 정통 성리학을 배운 학자로 신흥 사대부들의 스승이었다. 정도전을 이들과의 만남은 통해 신흥 사대부 세력 안에서 정치적 기반을 만들 수 있었다. 

이후 정치 상황의 변동과 함께 시작된 유배 생활은 그가 그동안 몰랐던 일반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수년간의 유배생활을 통해 정도전은 고려 말 이중 삼중의 수탈 구조를 몸소 체험하였고 그동안의 관념론에 갇혀있던 정치사상을 새롭게 정립했다. 정도전은 백성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치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이는 그의 백성을 위하는 위민사상이 그의 정치 철학 속에 스며들게 했다. 정도전의 개혁 정책은 이후 단순히 정치세력의 교체를 넘어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다. 

정도전은 이를 위한 사상적 기반으로 맹자의 사상을 적극 수용하였다. 맹자는 군주 답지 못하고 백성들의 민심을 잃은 군주는 당연히 물어나야 한다고 했다. 이는 부패한 고려왕조 멸망이라는 혁명을 꿈꾸는 정도전에게는 중요한 사상적 기반이 됐다. 

이런 정도전에게 당시 고려의 신흥 무장세력의 중심인 이성계와의 만남은 왕조 교체라는 그의 혁명 계획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했다. 정도전은 민심을 얻고 있는 이성계를 통해 그가 새로운 왕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됐다. 그의 막강한 군사력은 혁명의 중요한 바탕이 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정도전은 성리학, 백성, 이성계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정치적, 사상적 기초를 만들 수 있었다. 이후 정치 일선에 복귀한 정도전은 개혁적 신흥 사대부들과 이성계와 함께 나라의 개혁을 강력히 추진했다. 정도전은 고려 왕조의 존속을 바라는 온건 신흥 사대부들과의 대립은 불가피했다. 그 과정에서 그의 스승인 이색을 숙청했고 마지막까지 고려의 충신으로 남았던 절친 정몽주와도 등을 돌렸다. 

정도전이 정치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그를 도왔고 개혁을 함께 이끌었던 정몽주였다. 그는 고려 멸망의 결정적 원인이 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도 동의했지만, 새로운 나라의 건국은 끝내 동의하지 않았다. 정몽주는 정도전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면서 정도전 세력을 숙청을 주도하기까지 했다. 정몽주에게 고려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나라였다. 하지만 정도전은 고려의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불교 배척을 통한 종교개혁에까지 나섰고 과전법을 통해 고려 기득권 세력의 경제적 기반까지 뒤집었다. 정몽주는 정도전 개혁의 목표를 인식하고 끝가지 저항했다. 이는 정몽주의 죽음을 재촉하는 일이 됐다. 정몽주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 피살되면서 고려의 멸망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됐다. 

결국, 정도전의 중심이 된 개혁 사대부 세력은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하며 조선을 건국했다. 정도전은 조선을 이전과 다른 정치체제가 작동하는 나라로 만들려 했다. 그는 왕은 존재하지만, 권력 행사는 극히 제한하고 재상이 중심이 된 정치 시스템을 실현하려 했다. 

지금의 입헌군주제와 같은 방식으로 왕은 재상을 임명하기만 할 뿐, 국정 운영은 재상이 중심이 되어 하고 권력의 견제와 감시는 언관 제도를 활용하여 하도록 해다. 권력 기관이 상호 작용을 통해 권력자의 독단을 막고 합의에 의한 국정 운영을 하도록 했다. 이는 그가 조선 초 저술한 조건 경국전에서 드러나 있다. 이 책에서 정도전은 민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그의 국정 운영 철학이 위민사상에 근거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 외에도 정도전은 한양 천도와 경복궁의 건립과 함께 새로운 도읍지 한양의 도시 계획을 주도하기도 하면서 신흥 국가 조선이 기초를 다지는 데 있어 중심에 있었다. 조선의 초대 임금인 이성계는 정도전을 적극 지지하며 그의 사상이 현실이 되도록 뒷받침했다. 하지만 정도전의 재상 중심주의는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한 왕자들과의 대립을 불러왔다. 이런 정치적 대립은 유혈 충돌로 이어졌고 정도전은 그 꿈을 다 펼치지 못하고 이방원에 의해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정도전의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에서 반역자 프레임이 갇히게 된다. 

조선이 안정화되면서 정도전의 개혁적 사상은 조선의 새로운 기득권 세력에게는 큰 위험 요소였다. 조선 건국 과정에서 정도전의 역할은 희미해졌고 그 자리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로 채워졌다. 조선의 통치자들에게 정몽주는 충의의 상징으로 유용했다. 이후 정몽주는 크게 미화됐다. 정몽주는 그가 건국을 반대했던 조선에서 더 추앙받는 인물이 됐다. 정도전은 조선 곳곳에 그의 흔적을 남기고도 언급될 수 없는 인물로 오래 세월 남게 됐다.

이렇게 정도전은 고려의 마지막과 조선의 시작을 함께 한 인물로 그 비중이 상당했지만, 그가 새운 조선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비운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정치적, 사상적 유산은 조선의 역사 곳곳에 스며들었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백성을 위하는 위민정치사상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점에서 정도전은 조선의 역사에만 국한되어 평가할 수 없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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