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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와 1990년 초까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찾았다는 보도가 최근 전해졌다. 이 사건은 10건의 부녀자 연쇄 살인 사건으로 피해자들의 나이가 다양했고 그 수법이  잔혹했다. 또한, 특정 지역에서의 연쇄 살인사건이었다는 점도 큰 특징이었다. 

하지만 막대한 공권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사건은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이 사건이 점점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질 즈음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하며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다시 한 번 큰 이슈가 됐다. 이 영화는 당시로는 큰 흥행작이 되었고 화성 연쇄 살인사건에 대한 관심을 크게 했다. 이런 관심에도 화성연쇄 살인사건은 공소시효가 경과할 때까지 해결되지 못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는 상상이 상당 부분 추가되었지만, 당시 상황을 잘 묘사했다. 당시는 기록이 체계적으로 데이터화되지 않았고 과학수사 기법이 정착되기 전 이었다. 살인 등 강력 범죄에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해주는 증거라 할 수 있는 DNA를 활용한 수사가 불가능했다. 수사관들의 경험과 역량에 절대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는 직관의 크게 의존하는 지역 형사와 수사기록과 증거를 바탕으로 과학적 수사를 추구하는 두 형사의 대립과 협력이 스토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두 형사는 나름의 방법으로 사건 해결에 나서지만,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만 했다.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했지만 강압적인 수사에 의한 무리한 범인 만들기가 들통나면서 수사관들이 궁지에 몰리기도 했다. 

수사관들은 우여곡절 끝에 범인을 추격한 끝에 용의자를 특정했지만, 결정적 증가가 될 수 있는 DNA 분석 자료가 불일치한 것으로 판명되면서 범인으로 확신했던 용의자를 풀어줘야 했다. 영화에서 수사관들은 DNA 분석 자료를 외국에 보내 분석을 의뢰해야 했다. 실제 당시에도 우리나라에는 DNA 분석기술이 없었다. 이는 사건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었다. 

살인의 추억은 범인을 추격하는 것 외에도 당시의 시대상을 곳곳에서 반영했다. 당시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르면서 산업화의 절정기였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을 훨씬 뛰어넘어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시기였다. 사람들은 얼마 안 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부품 꿈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희망과 꿈을 비웃는 듯한 흉악범죄에 우리의 공권력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해당 지역의 사람들은 밤마다 공포에 떨어야 했다. 

당시 수사 여건이 열악했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살인 사건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던 1986년과 1988년은 권위주의 정권을  상대로 한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당시 권위주의 정권은 공권력을 동원해 민주화 운동을 억압했고 사법, 행정, 심지어 언론까지 정권의 입맛에 맞게 움직였다. 

정권의 필요에 재빠르게 반응했던 공권력이었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본연의 일에는 무능력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이런 당시 사회의 이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곳곳에서 투영했다. 그 때문인지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어두웠고 코믹적인 요소가 있었지만, 그 안에는 비판의 코드가 숨어있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사라져가는 유력 용의자와 그 모습을 허탈하게 바라보는 수사관의 모습은 공소시효 만료와 함께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가는 화성연쇄 살인 사건을 축약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10년을 훌쩍 뛰어넘은 2019년 언론에서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를 찾았다는 보도가 대서 특필됐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그토록 잡으려 했지만, 잡지 못했던 그 사람이 이제서야 그 실체를 드러냈다.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모르는 젊은 사람들 모두가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수십 년이 흘러도 알 수 없었던 범인을 잡았다는 안도감과 왜 이제서야 밝혀지는지 대한 분노, 법적인 단죄를 할 수 없다는 허탈감이 교차하고 있다.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싫은 이들도 있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은 매우 다르다. 범죄의 현장이었던 화성은 이제 큰 신도시가 들어섰고 당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도 크게 줄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지역이 연쇄살인사건을 주제로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꺼려 하기도 한다. 언론의 보도 역시 단편적이고 흥미 위주다. 그 사건이 미제 사건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나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하는 기사는 찾기 어렵다. 

여전히 화성연쇄 살인사건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의 입장일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수십 년이 지난 사건에 왜 이런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무고한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희생되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가는 현실에서 이 사건에 대해 무감각해졌고 잊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나 자신의 일이었다면 그럴 수 없다. 누구든 이런 흉악한 범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을 비롯한 장기 미제 사건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꼭 진실이 밝혀지고 단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정의의 실현이기도 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미완의 결말을 보여주었던 영화 살인의 추억이었다. 끔찍한 범죄를 소재로 하면서 추억이라는 영화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그때의 일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일을 잊지 않고 끈질기게 조사하고 진실을 추적한 결말이 조금씩 보이고 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만, 2004년 개봉한 영화가 완결에 다가서고 있다. 이는 사건의 끝이 아니다. 또 다른 미제 사건 해결을 위한 시작이 되어야 한다. 

사진,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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