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김포는 오래전부터 벼농사가 시작된 곡창지대였고 김포쌀은 중요한 특산물이었다. 지금도 김포에는 벼농사가 활발하다. 김포는 서해안과 맞닿아 있어 어촌의 풍경도 만날 수 있고 김포공항의 비행기들이 오가는 하늘의 통로이기도 하다. 김포는 한강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한강 하구의 독특한 풍경이 있고 북으로는 북한과 경계를 이루기도 한다.
이렇게 김포는 수도권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과 다양함이 가득하다. 이 때문에 과거에는 서울과 가깝지만, 도시보다는 농촌의 풍경이 더 연상되었던 김포였지만, 최근에는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많은 아파트가 건설되고 인구가 크게 늘었다. 이제는 김포만의 특징의 도시를 특색 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가 되고 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45회에서는 김포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여정의 시작은 김포평야의 황금 들판이었다. 봄, 여름, 가을의 시간 흐름 속에서 누렇게 익은 벼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한강을 따라 형성된 논을 지나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시작된 본격적인 여정, 그 버스는 북한과 가깝게 자리한 민간인 통제구역과 유일하게 연결되는 버스였다. 그곳에 사는 이들이게는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기도 했다.
그 버스를 타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그 마을은 평화롭게 보이지만, 북한과의 불과 2km 내외 거리에 있었다. 과거 만들어는 방공호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여전히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사는 마을은 이제 4가구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마을에서 수확할 쌀로 만든 농주와 함께하는 소박한 한 상은 마을 주민들의 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농촌의 평화로움과 긴장감이 교차하는 민통선 마을을 떠나 김포의 과거 흔적이 남아있는 원도심으로 들어섰다. 그 길에는 인근 산에서 주은 도토리를 정리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고 허름한 여인숙과 그 앞에 선 오래된 나무에서 세월의 흔적과 만날 수 있었다.
원도심의 끝 북면 터널 위로 올라가자 잘 가꿔진 텃밭이 있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부부가 과거 오가는 사람이 없어 쓰레기들로 가득했던 이곳을 잘 정리하고 10년 동안 정성스럽게 관리한 탓에 이제는 여러 작물들이 자라는 곳으로 변모했다. 터널 위에 자리한 반전의 장소였다.
터널 위에 자리한 반전의 장소인 텃밭을 지나 안쪽으로 접어들었다. 얼핏 보면 가정집으로 보이는 집은 보리굴비를 주메뉴로 하는 식당이었다. 그 식당은 모자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과거 가정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곳에 정착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만들어낸 보리굴비 요리와 김포쌀로 만든 밥, 간장게장이 어울리는 한 상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정겨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 사는 동네에서 벗어나 발걸음은 한강을 지키는 군사 요충지 덕포진으로 옮겨졌다. 조선시대 수도 한양으로 이르는 물길을 지키는 덕포진은 역사의 한 장면을 응축한 곳이었다. 철조망과 함께 강을 따라가는 길, 작은 포구를 만났다. 이제는 국내 유일의 내수면 어업 포구인 전류리 포구였다. 북한과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이 포구에는 27척의 당국의 허가를 받은 어선만 조업할 수 있다.
이곳에서 부자가 함께 조업하는 현장과 만났다. 아버지는 이제 눈이 어두워지고 건강이 악화됐지만, 수십 년을 함께 한 어업을 멈출 수 없었고 한때 객지에 나가있던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가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강 하구의 거친 물살을 따라 부자의 작은 어선은 위태롭게 보이기도 했지만, 부자는 매일매일 이곳에서 그들의 삶은 영위하고 있었다. 군사적 긴장감이 가득한 최북단의 포구에서 부자는 서로에게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고 있었다.
부자의 따뜻한 정을 느끼며 다시 이어진 여정은 예전 학교와 모습이 같은 박물관으로 이어졌다. 이 박물관은 노부부가 만들고 운영하고 있었다. 이제 팔순에 가까운 노부부는 이 장년층에게는 오랜 추억이 된 초등학교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장작난로와 오래된 풍금, 빛바랜 교과서, 그리고 각종 소품들은 노부부가 전국 각지를 돌며 수집했다. 그리고 또 하나 이 부부의 순애보가 학교의 의미를 더하고 있었다.
교사 생활을 했었던 이 부부의 남편은 그의 부인이 시력을 잃고 교사 생활을 접게 되자 그 역시 교사 생활을 접고 부인을 위한 학교를 김포에 만들게 되었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백발의 할아버지가 된 남편은 이 학교를 드문드문 찾는 이들에게 음악수업을 하면서 행복해하는 아내를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이 부부의 사랑 가득한 학교는 지금도 학교 종을 울리고 있었다.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는 학교이고 박물관이었다.
막바지 해가 서쪽 저편으로 저물어가는 저녁시간, 북녘을 바라보는 철조망 사이로 하루의 마지막 빛이 비치고 있었다. 분단의 현실과 함께 하는 김포의 현실을 일깨우는 장면이었다. 군사 대치의 긴장감이 있지만, 김포에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가을 황금 들판과 그들의 지탱하게 해주는 한강이 함께 하고 있었다. 자연과 역사가 함께 하는 김포는 앞으로 더 발전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 곳으로 보였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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