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시선] 코로나 사태에도 잊지 말아야 할 3.1 운동의 정신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0. 3. 2. 12:47

본문

728x90
반응형

온 나라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 우한시에서 시작된 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은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중국과 인접한 우리나라 역시 이 바이러스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부 차원의 대응체계를 구축했지만,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확진자가 계속 늘었다. 우려는 있었지만, 발생한 확진자는 우리 방역망에서 추적 감시가 가능한 수준으로 통제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청정지역이었던 대구 지역에서의 31번째 환자 발생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특정 종교집단의 대규모 감염이 확인되었고 확진자가 급속히 증가했다. 대구,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늘어난 확진자는 그 수가 4,000명을 넘어섰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코로나19라는 이름을 가지고 강한 기세로 우리 일상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감염증의 예방을 위해 사람들의 모이는 환경을 조성할 수 없는 상황은 각종 행사와 이벤트, 스포츠 경기의 취소와 파행을 불러왔다. 학교는 개학을 일정을 뒤로 미뤘고 직장인들 역시 불안한 마음에 출퇴근을 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것도 있다. 사람들은 평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일상이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이 됐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의 사태가 언제 진정될 수 있을지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감을 파고드는 각종 뉴스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하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의연함을 가지려 하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소식은 밝고 희망적이지 못한 요즘이다. 언론들과 방송은 연일 시시각각 늘어가는 확진자와 사망자 소식을 중계하듯 속보로 알리고 있다. 

이런 일상의 파괴는 국경일은 3.1절의 풍경도 바꿔놓았다. 일제에 부당한 식민 지배와 억압에 온 국민이 저항했던 3.1운동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있는 큰 사건이었다. 3.1운동은 국민들이 주체가 된 비폭력 평화운동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예를 찾아보기 힘든 저항운동이었다. 3.1 운동을 기점으로 독립운동을 다시 활력을 되찾았고 해외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이는 임시정부의 수립으로 이어졌다.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정을 시작하는 의미가 있었다.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전개된 독립운동은 이봉창, 윤봉길 등 수많은 애국지사의 의거와 광복군의 창설, 일제와의 대결까지 끊질기게 이어졌다. 

3.1운동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큰 획을 긋는 일이었고 민주주의 국가 건설의 초석이기도 했다. 이를 기념하는 3.1절의 의미가 큰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0년 3. 1절은 지나해 3.1운동 100주년을 넘어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의미 있는 날이 될 수 있었다. 3.1절 기념식 장소가 1920년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며 기념식을 거행했던 배화여고라는 점은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에 속에 작고 수수하게 기념식을 진행해야 했고 3.1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미디어의 방송이나 프로그램은 코로나 뉴스에 묻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나마 MBC의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3.1운동의 막전 막후 이야기를 다루며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정도였다. 

3.1운동은 일본 도쿄 유학생의 2.8 독립 선언을 비롯해 김규식으로 대표되는 독립운동가들이 참석했던 파리 강화회의, 미국 대통령 윌슨에 의해 제기된 민족 자결주의 등의 외적 요인이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다. 더 큰 이유는 일제의 억압적인 식민지 지배였다. 일본은 우리 국민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친일파들과 결탁하여 우리의 국권을 빼앗았다. 이후 일제는 독립에 대한 열망의 의지를 힘으로 억눌렀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고 그 과정에서 희생됐다. 그 속에서 국민들의 일제에 대한 저항 의지는 점점 강해졌다. 이런 시기 고종황제의 갑작스럽고 석연치 않은 서거는 국민들의 마음을 더 강하게 요동치게 했다.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던 화산과 같았던 국민들의 독립의지는 종교계와 학생들에 의해 조직화된 만세 운동으로 이어졌다. 당시는 통신의 발달하지 못해 상호 소통이 어려운 시기였지만, 종교계와 학생들은 그들의 가동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여 거사를 준비했다. 그에 필요한 독립 선언서는 마치 첩보 작전을 방불케하는 과정을 거쳐 인쇄되고 전국에 배포되었다. 

독립선언서의 인쇄 과정에서는 일제 앞잡이가 된 조선인 형사에 발각되는 위기가 있었지만, 거액의 뇌물을 건네며 위기를 넘기기도 했고 인쇄물을 운반하는 과정에서는 일본 경찰에 발각되는 순간에 정정이 되면서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준비과정은 급박하게 전개됐지만, 거사일까지 관련 사항은 철저한 보안이 유지됐다. 준비 과정에서 밀고자와 내부자의 배신이 있었지만, 3월 1일의 만세운동은 시작할 수도 없었지만, 일제는 이에 대해 알지 못했다.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모두가 하나가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사 당일 민족 대표들은 모처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총독부에 그 사실을 알리기만 했을 뿐 사람들이 모인 지금의 탑골공원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민족대표들은 국민들의 희생을 우려했다. 하지만 소식을 알고 모인 국민들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탑골공원에서 한 청년에 의해 낭독된 독립선언서는 모였는 사람들에 큰 울림을 주었고 대규모 만세운동으로 이어졌다. 수백 명의 군중은 수천 명이 되었고 도심 곳곳에서 거대한 사람들의 물결을 이루었다. 이 운동은 이후 전국으로 그 소식이 전해졌고 각지의 만세 운동으로 이어졌다. 

일제는 초기 이 운동이 조기에 진압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만세 운동의 불꽃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무자비한 진압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국민들의 희생되었다. 화성 제암리에서는 수십 명의 주민들이 영문도 모른 채 일제에 의해 학살되는 비극이 있었다. 다수의 사람들의 투옥되었다. 유관순 열사의 순국도 이때 일어났다. 이 외에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국민들이 옥고를 치러야 했다. 

이런 국민들의 만세 운동의 과정에서 친일파 인사들은 스스로 나서 만세운동을 폄하고 이를 무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그들의 영달과 안위만을 추구했다. 결국, 일제의 무력과 무자비한 탄압 속에 만세 운동의 불꽃은 사그라들고 말았다. 하지만 3.1 운동은 우리 독립운동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고 그 정신은 우리 헌법에 그대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그동안 임시정부에서부터 헌법이 수차례 개정되었지만, 3.1운동 정신의 계승은 헌법 전문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만큼 3. 1운동의 정신은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한 중요한 근간이었다. 

이런 국민적 저항운동은 이후 불의에 저항하는 국민운동의 중요한 뿌리가 되었다. 4.19 혁명과, 80년대 민주화 운동, 최근 촛불 혁명까지 우리 국민들의 불의에 함께 맞서 싸웠고 불의에 편승한 정권을 바꿔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도 함께 성장했고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은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런 국민들의 성숙된 시민의식과 별개로 우리 민주주의는 당파적 이해에 얽매인 정치권의 난맥상으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아쉬움이 있었고 지금도 우리 정치의 후진성은 진행형이다. 국민들의 뜻과 상관없이 정치권은 권력 다툼에만 골몰하며 국민들의 위한 정치는 선거철에만 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우리 국민들은 이런 정치에 실망하면서도 차악을 선택해야만 한다. 

지금 코로나 사태에 따른 위기 상황에도 우리 정치권을 해결책에 대한 고민과 토론보다는 다가올 선거에 대한 계산을 앞세우고 있다. 마치 전적 분열의 모습이다. 이번 적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공포와 불안을 함께 가져오고 있지만, 이에 맞설 수 있는 단합된 힘을 우리 정치권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결국, 위기 극복은 선한 다수 국민들의 힘으로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나라의 위기 앞에 정치권은 이런 국민들의 보호하고 하루빨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리더십과 방안을 도출하는 것이 우선이다.

3.1운동 당시 맨몸으로 일제의 총과 칼에 맞서 만세를 외쳤던 국민들은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적에게서 빼앗긴 일상을 되찾기 위해 함께 싸우고 있다. 3.1운동 당시 국민들은 자신의 이해타산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나라의 독립이라는 대의와 함께했다. 누구도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고 국민들의 단합된 힘과 의지는 독립운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위기 속에서 빛나는 국민들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가지는 못할망정 편 가르기와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는 현실, 미디어에서 3.1절의 정신과 의미를 되새기는 것조차 버거운 또 다른 현실 속에서 이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사진, 글 : jihuni74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