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68회] 남도의 봄맞이 풍경과 함께 한 전남 고흥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0. 4. 12. 10:20

본문

728x90
반응형

지난주 스페셜 방송으로 꾸며졌던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전남 고흥을 찾았다. 고흥군은 국토의 남쪽 끝에 자리한 작은 어촌 마을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 우리나라 항공 우주산업의 중요한 전초기지라 할 수 있는 나로우주센터가 생기고 그곳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가 발사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지금도 나로우주센터는 우리 항공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고흥에서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봄을 맞이하며 힘차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웃들과 만났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한 지역이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절실한 상황에서 모든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고흥의 사람들도 코로나19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더 무거워진 삶의 무게가 그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여정의 시작은 이른 아침 해안가였다. 보통의 바닷가하면 떠오르는 모래사장이 아닌 몽돌이라 불리는 자갈들로 이루어진 해안가는 파도 소리가 그 몽돌에 부딪치며 바라의 소리를 전해주고 있었다. 세상은 이런저런 일들로 복잡다단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몽돌 해변의 풍경은 잠시 시간의 흐름을 느리게 가게 하는 느낌이었다. 

 

 



바다 근처 어촌 마을의 풍경들을 따라 길을 걸었다. 나로도항의 어선들은 출항 준비가 한창이었다. 풍어를 기원하는 만선 깃발이 이곳을 찾는 이들을 반겨주었다. 봄을 맞이하는 항구의 어민들은 각자의 배에서 희망 가득한봄을 기원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모두가 풍요로운 바다가 되기를 소원하며 서로를 격려하고 있었다. 어민들의 조금은 투박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뒤로하고 뭍으로 올려진 배에서 작업을 하는 어민을 만났다. 

그는 배에 붙은 해초와 조개 등을 열심히 제거하고 있었다. 배에 붙은 해초들과 조개들은 배의 속도를 느리게 하고 안전한 항해를 방해할 수 있어 수시로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일이 고되고 힘들어 전문적으로 그 작업을 하는 이가 나로도항에는 얼마 없다고 한다. 

이제 칠순을 넘어 팔순을 바라보는 작업자는 배우자와 함께 배 한 척을 작업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 목선을 제조하는 장인이었다. 그는 연간 수십 척의 목선을 만들 정도로 이 분야의 뛰어난 장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목선이 더 단단하고 가벼운 합성수지로 만든 어선들로 대체되면서 그의 일도 크게 줄었다. 이런 변화가 일을 접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배를 청소하는 일을 하면서 바다를 떠나지 못했다. 나로도항의 어선들은 지금도 그에게 일을 맡기고 있었다. 그가 없다면 상당수 배들은 어선 청소를 위해 인근의 여수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나로도항의 어민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다. 지금은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그는 강한 사명감으로 그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로도항의 어민들과 함께 하다 이 항구에서 많이 나는 생선이 삼치를 전문하는 식당들이 밀집한 삼치거리로 향했다. 고흥의 삼치는 도시 사람들의 마트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그 크기기 상당했다. 큰 크기만큼 먹을 수 있는 방법도 회부터 탕, 무침 등으로 다양했다. 삼치 요리를 맛보려 한 식당에 들렀다. 이곳에서 고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삼치 요리와 만날 수 있었다. 경찰 공무원을 퇴식 후 배우자가 함께 수십 년간 이 식당을 지켜온 사장님은 배우자와 티격태격하면서도 금세 화해하는 우리네 일상의 모습과 함께 식당을 지켜가고 있었다. 사장님 부부의 정성과 고흥 명물의 만남으로 만들어진 삼치 요리는 특별함이 있었다. 

식당을 나와 고흥의 또 다른 특별함과 만났다. 보리밭의 풍경을 지나 커피 농장에 다다랐다. 흔히 커피는 열대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고흥에서는 비닐하우스를 활용해 국내산 커피를 생산하고 있었다. 한 커피농장에서 고흥의 진한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었다. 이 농장은 주인은 5년간 실패를 거듭하며 커피 재배의 노하우를 스스로 익혀 지금은 번듯한 커피농장으로 만들었다. 지금 고흥의 커피 농장은 이 농장을 시작으로 20여 개에 이른다고 했다. 남도의 한마을에서 만나는 커피농장과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어촌과 농촌의 풍경을 벗어나 사람들의 북적임이 있는 읍내로 들어섰다. 800년 수령의 거목이 이 지역의 수호신으로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고흥의 오래된 전통 시장을 찾았다. 이 시장은 어느 전통시장과 차이가 있었다. 이 전통시장에는 수십 개의 생선구이 전문점이 있었다. 고흥의 전통시장은 현재 생선 숯불구이 시장으로 특화되어 있었다. 사람들인 이곳에 방문해 다양한 생선구이를 즐길 수 있었다. 이곳의 상인들은 시장 옥상에 마련된 건조장에서 반 건조한 생선을 구워 손님들에게 내주고 있었다. 고흥의 특색을 잘 살린 장소였다. 

고흥 읍내를 지나 여객 터미널에 이르렀다. 나로도 항에서 배로 3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작은 섬으로 향했다. 이 섬은 애도라고고 하고 쑥이 많이 난다고 해서 지역민들이 쑥섬으로도 불리고 있었다. 짧은 항해를 거쳐 찾는 쑥섬에서는 봄나물이 쑥을 캐는 바쁜 손길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또한, 한적해 보이는 이 섬에서 만날 수 있는 장면 장면들이 눈길을 끌었다. 과거 쌓아올려진 돌담길을 잘 보존되어 있어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과거의 기억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주었다. 수십 마리의 고양이가 주민들과 공존하는 모습은 길양이들이 학대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뉴스를 자주 접하는 도시와는 다른 훈훈함으로 다가왔다. 이 섬의 고양이들은 섬 주민들의 보살핌 속에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 고양이들은 이 섬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또 다른 명물이었다. 

쑥섬에서 만나는 비밀의 장소도 찾았다. 이 섬의 정상으로 향하는 길, 수백 년 동안 잘 보존된 난대림으로 가득한 숲길이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식생들이 공존하는 이 숲길은 그동안 외지인들이 접근할 수 없고 신성시되는 곳이었지만, 최근 산책로도 개방되었다. 지금은 지역의 명소로 자리했다. 이 산책로는 원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 있었다. 이 산책로를 따라 섬 정상으로 향하니 멋진 바다의 풍경이 청량감을 다가왔다. 여기에 멋지게 꾸며진 정원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이 정원은 섬 주민에 의해 오랜 기간 가꾸어지고 관리되고 있었다. 이 노고를 통해 섬을 찾는 이는 멋진 바다 풍경과 함께 하는 하늘아래 정원과 만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힘들고 고단한 작업의 연속이지만, 섬을 찾는 이들의 즐거움을 에너지 삼아 그 일을 이어가고 있었다. 쑥섬은 섬 주민들의 천해의 자연환경과 섬 주민들의 노력이 더해져 사람들의 힐링 장소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전남 고흥은 복잡한 도시의 삶과 다른 여유와 낭만, 그리고 정이 함께 하는 곳이었다. 그 안에서 첨단 우주산업이 함께 공존의 장소이기도 했다. 물론, 이곳의 사람들 겉에 보이는 낭만적이 풍경 속에서 치열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에 지친 도시인들에게 고흥의 풍경은 잠깐이었지만, 잠시나마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그 무엇이 있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