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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지는 시기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91번째 방문지는 경기도 북쪽에 자리한 포천이었다. 포천은 휴전선과 접하고 있는 연천과 철원 사이의 내륙에 자리한 도시로 군부대가 곳곳에 자리한 군사도시의 이미지가 강한 곳이다. 여느 도시와 달리 농촌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지리적 특수성으로 개발이 더디긴 하지만, 화산 폭발로 형성된 지형을 따라 흐르는 한탄강의 수려한 경관을 품고 있고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기도 하다. 포천을 대표하는 한탄강은 과거 후고구려는 세우고 후삼국 시대의 주도권을 잡았지만, 계속된 폭정으로 몰락한 궁예의 한이 서려있는 강이다. 

궁예는 왕권에 의해 권좌에서 밀려 쫓기는 과정에서 수도 철원을 벗어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한탄강을 건너 이동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실제는 크고 높다는 의미의 우리말 한과 여울이나 강, 개천을 뜻하는 우리말 탄이 더해진 이름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한탄강은 북한 지역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는데 포천을 지나 임진강으로 흘러들어간다. 포천은 그 한탄강의 중요 지류에 위치하고 있다. 방송에서는 한탄강의 멋진 가을 풍경과 함께 한탄강을 따라 형성된 명소인 비둘기낭 폭포와 한탄강 하늘다리를 소개하며 여정을 시작했다. 

 

 



그런 한탄강을 따라 걷다 넓은 사과 농장에서 이르렀다. 사과 농장에서는 탐스럽게 달려이었다. 그 농장은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함께 어울려 살며 운영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도시에서 귀농한 아들과 함께 사과농장을 일궈냈다 했다. 사과는 과거 대구를 먼저 떠올렸지만, 지구 온난화가 지속하면서 재배 지역이 점점 북쪽으로 이동했고 포천에서도 재배되고 있었다. 

포천에 자리한 이 사과농장은 내륙에 위치해 일교차가 큰 포천의 기후적 이점으로 과일 농사에 큰 이점이 있고 한탄강으로부터 풍부한 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장마에도 한탄강의 넓고 깊은 협곡은 홍수를 막아주었다. 또한, 태풍 등 자연재해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 탓에 올여름 기상이변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 사과농장의 사과는 포천 그리고 한탄강이 준 선물이었다. 

이렇게 온 가족이 힘을 합쳐 포천에서 새로운 터전을 만든 이들이 근처에 또 있었다. 많은 젖소들이 있는 한 목장이 그곳이었다. 이 목장은 직장 생활을 하다 귀농한 딸들과 부모가 함께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목장에서 생산되는 우유로 만든 수제 치즈가 대표적 생산품이었다. 이 치즈는 젊은 딸들의 아이디어와 어려움 속에서도 낙농업을 포기하지 않은 부모님들의 끈기가 더해진 하나의 작품이었다. 이 농장에서는 보통의 치즈와 다른 허브, 고춧가루를 더한 새로운 치즈를 생산하는 등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이곳 역시 젊은이들이 부모님들의 가업을 잇기 위해 돌아와 더 발전시킨 긍정적인 예 중 하나였다. 

가족들의 사랑 가득한 훈훈한 풍경을 뒤로하고 다시 다선 길에 화산 활동이 만든 멋진 풍경을 만났고 여정의 한 편에서 풀피리를 자유자재로 만들어 부는 한 장년의 남자를 만났다. 그는 자연에서 나오는 나뭇잎이나 풀잎을 이용해 풀피리를 만들고 부는 신통한 능력이 있었다. 이러한 능력을 그를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도록 했다. 장년층 이상이라면 시골에서 풀피리를 만들어 불던 추억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를 더 새롭게 승화시킨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과거의 향수를 함께 불러왔다. 

사람들과의 만남 후 포천을 대표하는 또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포천의 명물 이동갈비 식당이 모여있는 이동갈비 거리를 찾았다. 과거부터 포천 이동갈비는 지역을 넘어 전국적인 먹거리로 그 명성이 높았다. 지금도 이동갈비 거리에는 많은 갈빗집들이 자리를 지키고 성업 중이었다. 그리고 거리 뒤편의 골목에는 과거 이 지역의 옛 모습의 간직한 풍경들이 테마거리로 보존되어 과거로의 여행을 하도록 하고 있었다. 물론, 이곳도 개발의 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고 과거 군사도시로서의 명성이 점점 퇴색하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있지만, 과거의 추억을 지키려는 노력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었다. 거리 한 편의 서점은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포천의 중요한 먹거리 거리를 벗어나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는 백운계곡으로 향했다. 과거 이곳은 식당 영업을 위한 불법 시설물이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환경개선 사업으로 불법 시설물이 대부분 철거되고 청정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누구나 편하게 계곡을 찾아 편안한 휴식과 힐링의 장소가 된 계곡이 너무나 반가웠다. 

다시 마을로 향하는 길 옹장굴이라 쓰인 큰 안내판이 보였다. 장소를 찾으니 그곳에는 동굴의 입구가 아닌 한 가정집의 정원이 나타났다. 동굴 입구는 놀랍게도 개인 집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집의 주인은 공사를 하다 우연히 이 동굴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 동굴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길고 험한 지형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아직도 동굴 전체에 대한 탐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복잡하게 얽힌 구조 탓에 집 주인도 동굴의 일부분만을 탐사했을 뿐이었다. 개인 땅에 이런 동굴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 집 주인은 수시로 동굴을 관리하고 있었고 동네 주민들과 방문자들에게 동굴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그가 정원을 열심히 가꾸는 것도 방문자들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했다. 자연의 신비가 가득한 동굴을 바로 접하는 삶이 부럽기도 하면서 신기하기도 했다. 

신기한 동굴을 지나 저녁 무렵이 되어 한 식당에 이르렀다. 이 식당은 어미니와 네 자매가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근처 밭에서 재배한 더덕을 주 재료로 한 더덕 밥상이 주메뉴였다. 오랜 세월 이 식당을 지켜온 어머니의 억척스럽지만, 정성 어린 손길에 더해진 네 자매의 손길이 식당을 더 에너지 넘치게 하고 있었다. 앞서 찾았던 포천의 사과농장과 목장에 이어 온 가족이 협력하고 노력하여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터전을 가꾸고 발전시키는 모습은 마음 한쪽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포천은 한탄강의 거대한 물줄기를 따라 그 지역의 역사를 이어왔다. 지금도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을 따라 포천 사람들도 삶을 이어왔다. 포천에서 만난 사람들은 유명한 그 누구처럼 대단한 삶의 이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포천뿐만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노력과 그 삶들이 모여 가정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지역과 나라의 역사가 만들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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