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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전성기를 지난 나이에 기량을 다시 발전시키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나이에 따른 체력과 순발력 저하가 필연적이고 이를 메우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도 다르지 않다. 오랜 기간 선수로서 큰 활약을 하는 선수도 많지만, 상당수 선수들은 30대 중반으로 향하면서 기량 저하가 뚜렷하다. 선수 육성을 강화하는 추세에서 기량이 떨어지는 30대 선수들은 시즌 후 정리 대상이 되고 있다. 주전이 아니라면 30대 선수들은 매 시즌 냉혹한 평가에 직면해야 한다. 올 시즌 후에도 이름있는 선수들이 대거 방출의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롯데에서 내야와 외야를 겸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 정훈은 상황이 다르다. 정훈은 올 시즌 큰 활약으로 팀 내 입지가 한층 강화됐다. 1987년생으로 30살을 훌쩍 넘긴 베테랑 정훈으로서는 반전의 시즌이라 할 수 있는 올 시즌이었다. 2019 시즌 1군에서 88경기 출전에 0.226의 타율에 2홈런 17타점에 머물렀던 정훈은 올 시즌 1군에서 111경기 출전에 타율 0.295에 11홈런 58타점을 기록했다. 극적인 변신이었다. 

정훈은 이런 타격 능력에 1루수와 중견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수비 능력으로 롯데 라인업의 유동성을 더해주었다. 두 포지션에서 모두 평균 이상의 수비 능력을 보여주었다. 올 시즌 타격에서 심각한 부진을 보인 주전 중견수 민병헌을 대신해 중견수로 많은 경기에 나서며 외야진의 공격력 저하를 덜어주었고 이대호와 후반기 1루수로 나선 이병규와 함께 1루 포지션을 함께 소화하며 이대호, 이병규의 체력 부담도 덜어주었다. 정훈은 1군에서 꼭 필요한 선수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런 정훈이지만, 올 시즌 시작 전 그가 1군 붙박이 멤버가 될 수 있을지에 의문이 있었다. 롯데는 2019 시즌 후 대대적인 팀 개편에 돌입했다. 프런트와 코치진이 상당 부분 교체됐고 팀 운영 시스템도 과학적이고 효율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했다. 선수들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보다 냉정한 평가 속에 젊은 선수들에 대한 육성을 강조했다. 위치가 애매한 선수들은 정리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정훈 역시 상황이 좋지 않았다. 보류 선수 명단에 들었지만, 경쟁력을 입증해야 했다. 당장은 주전보다 1군 엔트리 진입이 급했다. 

정훈은 1루와 외야 백업을 두루 소화할 수 있는 선수로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완벽한 주전이라 할 수 없었다. 롯데는 주전 1루수 이대호의 체력 부담을 덜어줄 백업 선수가 필요했다. 그 1순위였던 베테랑 좌타자 이병규는 부상으로 재활 중이었고 2군에서 올릴 선수가 잘 보이지 않았다. 외야수 전준우의 1루수 전환을 고려할 정도였다. 전준우 1루수 카드가 유보되면서 정훈의 자리가 생겼다.

1군에서 생존한 정훈은 연습경기 등을 통해서 뜨거운 타격감을 보여주었고 자신의 팀 내 입지를 점점 강화했다. 시즌 초반 그의 방망이는 매우 뜨거웠다. 이런 타격감을 바탕으로 전준우는 1루수로 출전하는 빈도가 높아졌고 이대호가 1루수로 나서는 경기에서는 지명타자로 나섰다. 사실상 주전으로 자리한 정훈이었다. 정훈의 뜨거운 방망이는 롯데가 시즌 개막 후 상승세를 유지하는데 큰 힘이 됐다. 하지만 최고조의  타격감을 유지하던 정훈은 불의의 부상으로 상당 기간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그에게도 팀에도 아쉬운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정훈이 빠지면서 롯데 타선의 힘도 함께 떨어졌다. 성적도 뒷걸음질 쳤다. 어느새 롯데는 정훈의 복귀를 고대하는 상황이 됐다. 

1달여의 공백기를 거친 정훈은 돌아와서도 여전한 타격감을 유지했다. 타순은 하위 타선에서 테이블 세터진으로 변경됐다. 롯데 타자들에 부족한 투수와의 끈질긴 승부 능력과 높은 출루율, 여기에 한때 4할을 넘었던 득점권 타율까지 정훈은 팀 타선에서 윤활유 같은 존재였다. 정훈과 손아섭으로 이루어진 롯데의 테이블 세터진은 출루와 해결 능력까지 겸비한 롯데에서 꾸릴 수 있는 최상의 조합이었다. 중견수 수비까지 소화하는 정훈의 활약은 시즌 내내 부진했던 민병헌의 공백을 충분히 메우는 수준이었다. 만약, 정훈이 없었다면 롯데 타선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다. 

아쉬움은 있었다. 정훈은 시즌 후반기 10월에 타격 페이스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3할을 넘어선 타율을 2할대 후반으로 떨어지게 하고 각종 타격 지표의 그래프가 하락하는 원인이 됐다. 하지만 올 시즌 연봉 6,400만원에 불과한 정훈의 성적은 최고의 가성비를 보여주었다. 올 시즌 활약으로 정훈은 내년 시즌에도 롯데에서 단단한 입지를 차지할 수 있게 됐다. 

롯데는 내년 시즌 FA 4년 계약 마지막 해를 맞이하는 외야수 민병헌과 손아섭이 있다. 손아섭은 올 시즌 뛰어난 활약을 했고 그 페이스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민병헌은 극심한 에이징 커브 현상을 보였다. 민병헌이 FA 두 번째 FA 자격을 얻는 동기부여 요소에 자극받아 반등한다면 최상이지만, 그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외야의 허전함이 계속될 수 있다. 롯데는 올 시즌 트레이드와 2차 드래프트로 외야 유망주 추재현과 최민재를 영입했다. 하지만 이들은 올 시즌 1군에서 활약이 미미했다. 병역의무도 이행해야 한다. 내야에서 외야로 전향한 강로한과 백업 외야수로 1군에 머물렀던 김재유도 아직은 1군에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할 수 없다. 또 다른 백업 외야수 허일은 방출됐다. 정훈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올 시즌 후반기 1루수 자리를 나눠가졌던 이대호의 이병규는 내년 시즌에도 그 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지만, 30대 후반의 베테랑이다. 이병규는 매 시즌 부상 변수가 있었다. 롯데가 기대하는 대형 신인 나승엽의 1루수 기용 가능성도 있지만, 정훈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리빌등과 성적은 함께 잡아야 하는 롯데로서는 과도기라 할 수 있는 2~3년의 기간 공수를 겸비한 유틸리티 플레이어 정훈이 가치가 크다. 내년 시즌 롯데의 전력 구상에도정훈은 한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정훈은 프로야구 선수로서 남들이 하지 못한 경험을 쌓았다. 2006시즌 지금은 키움 히어로즈가 된 현대 유니콘스의 육성 선수로 입단한 이후 방출되면서 프로야구 선수 이력이 단절됐고 군 복무 후 아마 야구 지도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롯데에 입단 테스트를 통해 입단하면서 다시 프로야구 선수로 돌아왔고 2군에서 기량을 발전시켜 조성환에 이어 주전 2루수로 자리를 잡았다. 2015 시즌 정훈은 주전 2루수로 3할 타율을 넘어서며 롯데 2루수 계보를 잇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후 정훈은 공수에서 기량이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이며 그 위치가 흔들렸다. 

롯데가 외국인 선수 선택을 내야수로 하면서 정훈은 1군에서 버티기도 버거운 상황에 몰렸다. 정훈은 이런 어려움을 내야와 외야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로 스스로를 변신시키며 버텨냈다. 하지만 그 자리는 항상 불안했다. 얼마 전까지 정훈은 언제든 방출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도 있었다. 이 위기에서 정훈은 올 시즌 놀라운 반등에 성공했다. 그 어떤 선수보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정훈으로서는 또 한 번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정훈의 모습은 가면 갈수록 베테랑 선수들에게 가혹하기만 한 프로야구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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