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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이마트의 SK와이번스 인수 소식에 묻혔지만, 같은 날 프로야구에서는 의미 있는 뉴스가 함께 있었다. 2021 시즌 연봉 협상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KT 구단과 KT 불펜 투수 주권이 KBO에 신청한 연봉 조정 심의에서 선수 측 안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주권은 구단 안보다 3천만 원이 많은 보인의 안인 2억 5천만 원의 연봉을 받게 됐다. 

이 결정이 큰 의미를 갖는 건 역대 두 번째로 선수의 안이 받아들여진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KBO의 연봉 조정에서 선수안이 받아들여진 건 2002년 LG 선수였던 류지현 현 LG 감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동안 KBO 리그에서 연봉 조정 신청건은 100여 차례가 있었고 심의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열린 건 20여 차례 있었다. 선수의 안이 조정위원회에서 받아들여진 건 한차례 확률은 5%에 불과했다. 주권의 사례가 더해지면서 그 확률은 10% 안팎으로 올라섰다. 

이런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선수에게 있어 연봉 조정 신청은 넘기 힘든 벽과 같았다. FA 자격을 얻기 전까지 연봉협상에서 구단은 선수보다 절대 우위에 있었다. 선수 이동이 극히 제한된 리그 상황에서 선수는 쉽게 구단의 방침을 거르를 수 없었다. 연봉 협상 과정에서 구단과의 갈등이 깊어지면 선수에게 불이익이 갈 수 있다는 부담이 컸다. 실제 구단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선수들이 트레이드 되는 사례도 있었다. 결국, 선수들은 연봉협상에서 큰 줄다리기를 하더라도 스프링캠프가 열리기 전 구단안에 대부분 합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구조상의 문제와 함께 연봉 산정과 관련한 각종 정보에서 구단은 선수보다 훨씬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은 협상에서 구단이 우위를 선점하는 중요한 이유였다. 선수는 이런 정보에 접근하지 어려웠다. 성적에 대한 수치화 과정이나 평가 자료를 선수가 만드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다. 선수가 구단안에 반발해 연봉 조정을 신청한다 해도 선수의 입장을 뒷받침할 데이터나 자료가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구단들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KBO의 환경도 선수에 절대 불리했다. 선수가 구단과의 불편한 관계를 감수하고도 연봉 조정 신청을 하는 용기를 발휘한다 해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는 것과 같았다. 2002년 LG 류지현 연봉 조정 신청 승리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단적으로 2010 시즌 후 리그 최고 타자였던 이대호의 연봉 조정 신청 과정은 구단과 선수와의 관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2010 시즌 이대호는 타율, 홈런, 타점을 포함한 타격 3관왕은 넘어서 도루를 제외한 타격 7개 부분 타이틀을 차지하며 최전성기를 보냈다. 이에 더해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이대호는 기존 3억 9천만에서 7억 원으로의 연봉 인상을 주장했다. 그의 소속 구단 롯데는 6억 3천만원 안을 고수했다. 

롯데는 2003년 이대호와 비슷한 연차였던 이승엽의 연봉을 참고했고 타 선수들과의 형평성, 구단의 연봉 시스템 등을 고려한 결정이라 했다. 하지만 이대호는 2003년 이승엽의 연봉 산정과 큰 간극이 있다는 점과 당시 리그 야수 중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았던 두산 간판타자 김동주의 연봉 7억 원을 기준선으로 삼았다. 

이대호의 당시 성적은 7억 원 연봉을 받기에 충분했다. 성적과 함께 그로 인한 관중 동원 능력 등 마케팅적 플러스 요인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롯데는 그들의 안을 유지했고 연봉 조정 신청에 이르렀다. 이대호는 나름의 자료를 제출했지만, 구단의 자료보다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KBO 연봉 조정위는 구단 안을 승인했다. 결국, 7천만 원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롯데와 이대호는 KBO에 결정으로 그 희비가 엇갈렸다. 

이를 두고 당시 야구팬들은 양측이 원만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사실에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리그 최고 선수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연봉 조정 신청까지 이르게 한 롯데 구단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컸다. 이는 롯데 구단이 투자에 인색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2011 시즌 후 FA 자격을 얻은 이대호는 롯데의 제안을 거부하고 해외리그 진출을 선택했고 일본과 미국에서 선수 생활의 커리어를 이어갔다. 리그 최고 타자를 잃은 롯데는 전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당연히 팬들의 비난도 상당했다. 2010 시즌 후 연봉협상 과정에서의 갈등이 이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할 수 없다. 

이렇게 리그 최고 타자도 넘기 버거웠던 연봉 조정 신청의 벽을 주권은 넘어섰다. 이는 리그 환경 변화를 보여주는 일이다. 최근 선수 에이전트 제도가 활성화되면서 우수 선수들은 연봉협상과 FA 계약 등에서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구단과의 협상에서도 선수들은 에이전트에 이를 위임하고 불필요한 갈등을 피할 수 있다. 선수 측은 보다 체계화된 자료와 근거로 구단과 협상할 수 있다. 이번 연봉 조정 신청에서 주권은 이전과 달리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를 제출했다. 이는 평가에 있어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KBO 역시 이전과 달리 조정위원회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했다. 구단에 절대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 여기에 주권의 소속 구단인 KT 역시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 선수 출신 이승용 단장은 선수 권리 행사에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 KBO의 연봉조정 위원회에서 KT와 주권은 각자의 자료를 제출하고 객관적인  판단을 받고자 했다. 서로에 대한 비난을 피했다. 주권 역시 연봉조정 위원회 출석을 하면서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연봉 조정 신청이 선수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주권은 자신의 주장을 강력히 할 수 있을 만큼 2020 시즌 KT 불펜진에서 큰 활약을 했다. 주권은 리그에서 가장 많은 77경기 등판했고 불펜 투수로는 많은 70이닝을 투구했다. 포스트시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주권은 정규리그 6승 2패 31홀드의 성적에 방어율 2.70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 불펜 투수 반열에 올랐다. 2015 시즌 입단 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성장했던 주권은 불펜 투수로 자리 잡은 2019 시즌에 이어 더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KT가 창단 첫 정규리그 2위와 함께 포스트시즌 진출을 하는 데 있어 주권의 비중은 매우 컸다. 

이런 뛰어난 성적은 그의 연봉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구단과의 3천만원 간극은 크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주권은 선수로서의 권리를 포기하기보다는 객관적인 판결을 원했다. 상대적으로 낮은 불펜 투수들의 가치를 재평가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KT 역시 이런 주권의 주장을 이해하고 결과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수와 구단의 관계가 보다 수평적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주권의 연봉 조정 신청 결과로 앞으로 리그에서 연봉 조정 신청이 보다 활성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구단들로서는 우려되는 일일 수도 있지만, 협상 과정에서의 감정싸움을 배제하고 오히려 객관적인 판결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선수와 구단 모두 긍정적이 면도 크다. 

구단들은 보다 객관적인 체계적인 성과평가 시스템을 만들 수 있고 선수들 역시 자신의 주장을 보다 공평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KBO는 더 공평하고 객관적인 조정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아직 풀어야 할 과제가 있지만, 주권의 연봉 조정 신청의 과정과 결과는 KBO가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보다 민주적이고 유연해질 가능성을 발견한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사진 : KT 위즈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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