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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07회] 경북 문경, 백두대간의 거대한 숨결과 함께하는 사람들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1. 1. 3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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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은 예로부터 험준한 고갯길로 유명했다. 문경새재, 조령 고개로 불렸던 이 고갯길은 조선시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높고 험준한 지형은 새도 넘기 힘들다 하여 조령이라는 문경새재라는 말이 붙었다 한다. 이 고갯길은 과거 급제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의 염원이 곳곳에 담겨있다. 

문경새재에는 이제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들의 발걸음은 없지만, 청정 자연이 잘 보존된 힐링의 장소로 중요한 문화재가 함께 하는 역사의 장사로 자리하고 있다. 최근에는 역사 드라마의 촬영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큰 인기를 모았던 역사 드라마 태조 왕건의 중요한 장면들도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드라마 초반을 이끌어가던 주인공 궁예가 최후를 맞이하는 장소도 문경새재를 향하는 길에 있었던 계곡이었다. 

도시 탐사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07회에서는 우리 역사의 숨결이 가득한 문경새재를 품고 있는 경북 문경에 숨어있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여정을 보여주었다. 여정은 시작은 최근 문경의 중요한 명소가 된 문경관광모노레일과 그 전망대였다. 정상에서 문경의 일대의 멋진 절경을 만날 수 있는 단산을 오르내리는 모노레일은 국내 최장거리의 모노레일로 오르는 동안 주변의 멋진 경치를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 정상에서는 한겨울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지만,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산세가 펼쳐져 있었다. 

모노레일과 함께 한 경치를 뒤로하고 이웃들과의 만남을 이어갔다. 오래된 마을을 찾았다. 그 마을 곳곳에는 아리랑의 구절을 담은 벽화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 벽화를 따라가다 마을 한편에 모여있는 주민들을 만났다. 대부분 팔순이 넘은 할머니들은 과거 즐겨먹었던 장떡을 만들고 있었다. 이 장떡은 인근 산에서 나는 나물과 채소에 밀가루를 넣어 만드는데 배고프고 힘든 시절을 견디게 해준 중요한 음식이었다. 

 



이 장떡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 할머니들은 어렵고 힘들었던 시집살이의 설움과 힘들었던 과거사에 담담해 얘기했다. 당시는 서럽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할머니들은 그 시간을 견디고 견뎌 지금은 삶의 기쁨을 함께하고 있었다. 힘들었던 과거를 추억 삼아 이야기하는 할머니들의 여생이 더 밝고 행복하길 기원하며 또 다른 여정을 이어갔다. 

문경새재의 고갯길을 따라가다 묵을 만들고 있는 식당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 식당은 손수 만드는 묵과 조밥을 더한 묵조밥을 주메뉴로 하고 있었다. 산악 지형의 문경에서 많이 나는 도토리와 열악한 지형에서도 잘 자라는 조가 더해진 묵조밥은 지역의 특색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이 식당은 어머니에게서 딸로 그 역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8남매의 생계를 위해 묵을 만들고 이를 장에 팔았다. 묵을 팔기 위해 묵을 머리에 이고 장에 가는 길을 멀고 험난했다. 어머니는 삶의 무거운 무게까지 짊어지며 모진 세월을 견뎌냈다. 지금은 번듯한 식당에서 보다 편한 삶을 살고 있지만, 묵을 만드는 일을 쉬지 않고 있었다. 이런 어머니의 희생과 가족 사랑의 마음은 딸에게로 전해지고 있었다. 어머니와 딸의 서로에 대한 마음이 식당을 훈훈하게 해주고 있었다. 

잠시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 문경의 과거 현대사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문경은 석탄산업이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석탄 탄광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하지만 석탄산업이 쇠락하면서 문경 역시 그 영향을 받았다. 인구가 감소하고 지역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문경에서는 과거의 흔적들을 활용해 문화 관광산업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간이역을 개조해 카페도 이 일환이었다. 2017년 주민들이 참여하는 주민 두레 사업으로 하고 있는 이 카페는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 방문자들에게 특별함으로 다가왔다. 보통 지역의 명소에 자본을 가진 타지 사람들이 카페나 각종 시설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역민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의 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사업을 한다는 건 의미가 있어 보였다. 

문경에 활력을 더해주는 노력은 문경 시내에서도 보였다. 젊은 청년들이 모여 만든 디자인 소품가게는 문경의 명소들을 테마로 한 소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오랜 역사가 있는 문경의 전통과 젊은이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해진 이 공간은 젊은이들이 지역과 함께 하는 소중한 곳이었다. 

지역의 미래 가능성과 함께 한 시간을 벗어나 오래 세월 문경과 함께 하는 이들과 만났다. 낮은 담벼락이 특징인 오래된 마을에서 간판도 없는 작은 슈퍼가 있었다. 가정집과 같은 이 슈퍼는 이 마을에게 유일한 슈퍼로 50년의 역사가 있었다. 30대 젊은 나이에 지역 탄광에서 일하던 남편을 여의고 홀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사장님은 이 슈퍼와 함께 50년을 함께했다. 

이곳은 생계를 유지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고 삶의 에너지를 얻은 곳이었다.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편의점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는 이 슈퍼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소중한 공간이었다. 이 슈퍼가 없으면 마을 사람들은 멀이 읍내로 나가 필요한 물품을 구매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또한, 이 슈퍼는 마을 사람들이 만나는 사랑방으로 특별함이 있었다. 이는 팔순의 사장님이 힘겹지만, 이 슈퍼를 지키는 중요한 이유였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의 정이 가득한 곳이었다.

문경의 영강 계곡을 찾았다. 그곳에서 얼음을 깨고 지역의 특산 어종인 꺽지 잡이를 하는 이들을 만났다. 매운탕이 일품인 꺽지는 맑은 물에서만 서식하는 어종으로 문경의 청정한 자연을 상징하고 있었다. 이렇게 잡은 꺽지는 인근 매운탕 식당으로 향했는데 이 매운탕 식당은 고추장으로만 양념을 하는 꺽지 매운탕이 일품이었다. 대를 이어 60년의 역사가 함께 하는 이 식당은 어머니에서 딸로 문경의 맛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여정의 막바지 닥나무를 베고 있는 밭에 이르렀다. 종이의 재료가 되는 닥나무는 인근 공장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운영하는 이 공장은 과거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만들고 있었다. 기계 대신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지는 이 한지는 복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는 9살부터 한지를 만들었던 아버지의 장인 정신의 결정체였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 학교 가는 것조차 버거웠던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종이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이 한지 공장은 가족을 지켜주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아버지는 온 힘을 종이를 만들었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수작업으로 한지를 만들었고 그 공정은 형편이 나아진 지금도 이어지고 있었다. 오랜 세월 노동으로 그의 등은 굽었고 몸 곳곳에 힘겨운 삶을 대변하는 흔적들이 남아있지만, 그는 과거의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자랑스러워했다. 그의 희생과 노력으로 아들은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삶을 지켜본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은  한지 만드는 일을 이어받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70년 역사의 이 한지 공장의 한지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주문할 정도로 국내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일상에서 흔한 종이지만, 전통의 방식으로 만든 이 공장의 한지는 장인의 숨결이 더해진 작품이었다. 늦었지만, 아버지의 노력이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가 반가웠다. 

문경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자연과 함께 하는 곳이었다. 도시의 복잡함을 벗어난 힐링의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긴 세월을 이어가며 치열한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었다. 좀 더 다가가 보니 삶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특별함 가득한 삶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문경은 조용한 산골마을이 아니었다. 문경에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 일상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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