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021 프로야구] 사라지는 SK와이번스, 다시 소환되는 쌍방울 레이더스의 기억

스포츠/2021 프로야구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1. 2. 12. 07:00

본문

728x90
반응형

신세계 이마트의 전격적인 야구단 인수는 여전히 프로야구의 중요한 이슈다. 그 대상이 SK와이번스라는 점에서 큰 충격이 크다. 모기업이 프로야구단 운영에 적극적이었고 상당한 투자를 했던 SK와이번스였다. SK와이번스는 프로야구의 운영과 마케팅도 성공적이었다. 수도권 인천을 연고로 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SK와이번스는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시점에 그 이름을 바꾸는 처지가 됐다.

이를 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프로야구단 운영에 적극적인 대기업의 진출을 환영하긴 하지만, 운영에 큰 문제가 없었던 프로야구단의 매각은 프로야구가 여전히 산업적으로 그 가치가 떨어짐을 입증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여전히 자생력이 떨어지고 재정적으로 모기업에 의존해야 하는 프로야구의 현실에서 언제든 구단 매각의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외부 변수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는 프로야구의 외형 성장에 가려진 어두운 이점이기도 하다. SK와이번스의 매각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큰일이다. 

SK와이번스 역시 구단 매각 과정을 거쳐 그 역사가 시작됐다. 인천을 연고로 하고 있지만, SK와이번스는 지금은 프로야구단이 없는 전주, 전북을 연고로 했던 쌍방울 레이더스가 그 전신이다. 2000년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던 쌍방울 레이더스는 팀 해체를 선언했고 SK는 그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단을 인수해 연고지 이전과 함께 새로운 프로야구단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역사가 그대로 이어진다고 할 수 없지만, 선수들의 면면은 SK와이번스로 이어졌다. SK와이번스의 매각을 지켜보며 쌍방울 레이더스를 추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1년 프로야구 리그에 처음 참가했다. 그전 1989년 프로야구는 7개 구단 체제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제8구단 창단의 필요성이 컸다. 1982년 6개 구단 체제로 출범한 프로야구는 제5공화국 정권의 필요에 따라 리그가 만들어지고 재벌 기업들이 각 지역별로 떠맞듯이 프로야구단을 창단했다. 이후 프로스포츠는 축구, 농구, 배구, 씨름 등으로 그 영역을 넓혔다. 그중에서 야구는 최고 인기 스포츠로 이슈를 가장 앞에서 이끌었다. 지역 연고제의 정착을 기반으로 흥행도 성공적이었다. 당시는 프로야구를 통한 기업 이미지 개선과 광고, 홍보효과가 프로야구단 운영의 가치를 뛰어넘었다. 

 



이에 프로야구단에 대한 대기업들의 관심이 커졌다. 대전을 연고로 제7구단 빙그레 이글스가 창단해 리그에 참여했다. 하지만 7개 구단 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리그 확장을 위해 제8구단 창단의 움직임이 리그 안팎에서 일어났고 쌍방울을 모기업으로 하는 쌍방울 레이더스 창단으로 이어졌다. 당시 광역 연고지 원칙으로 쌍방울은 전북과 전주를 연고지로 했다. 그 연고는 최강 해태 타이거즈의 연고지로 해태 타이거즈의 반발이 있었다. 절대 강자 해태를 견제하기 위한 창단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프로야구에 참여했지만, 쌍방울 레이더스는 신생팀이 가지는 선수 부족 문제를 피하지 못했다. 급한 대로 기존 구단의 방출 선수들과 신인 우선 지명으로 선수를 충원했지만, 부족함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자금 여력이 떨어지는 모기업의 상황도 불안요소였다. 연고지 전주와 전북의 고등학교 팀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연고지 선수 자원 부족도 큰 문제였다. 

하지만 쌍방울 레이더스는 기존 구단에서 방출된 선수들의 기대 이상으로 활약하고 신인 선수들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예상외의 선전을 했다. 여러 구단에서 모은 선수들의 주축을 이룬 쌍방울 레이더스는 구단의 이름에 빗대어 공포의 외인부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위권 팀의 위치는 벗어난 건 아니었다. 

1995년 시즌 후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쌍방울은 달라졌다. 김성근 감독 특유의 지옥훈련과 선수 자원 모두는 활용하는 토털 야구, 내일이 없는 치열한 승부를 하는 근성과 끈기의 야구는 팀을 강팀으로 면모 시켰다. 1996, 1997 시즌 쌍방울 레이더스는 2년 연속 126경기 체제에서 70승 이상을 기록하며 포스트시즌에 오르는 선전을 했다. 변변한 선발 투수가 없었지만, 불펜진을 적극 활용하는 벌떼 불펜 작전으로 이를 메웠고 김성근 감독의 카르스마를 중심으로 뭉친 선수들의 팀워크와 조직력은 열세의 전력을 극복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김성근 감독의 리그를 대표하는 지도자로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팀이 상위권으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다수의 스타 선수도 배출됐다. 리그를 대표했던 좌타 거포 김기태는 쌍방울에서 성장해 이름을 알렸고 은퇴 후에는 KIA와 LG 등에서 감독으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어린 왕자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동안의 외모가 특정이었던 김원형은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기도 했고 선발투수로 큰 활약을 했다. 그는 은퇴 후 SK, 롯데, 두산의 코치를 거쳐 지금은 SK와이번스의 감독으로 돌아왔다. 

이들 외에 리그 최고 포수로 기억되는 박경완이 쌍방울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성장했고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시대를 풍미했던 좌완 투수 조규제도 있었다. 1997 시즌 불펜 투수로는 전무후무한 시즌 20승의 대기록을 달성한 김현욱은 쌍방울 선수였다. 이 밖에 리그 최다 연속 경기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는 철인 최태원도 쌍방울과 함께 했다. 

이렇게 쌍방울 레이더스는 짧은 기간 구단의 역사를 만들어 갔다. 모기업도 구단의 성적이 상승하면서 지원액을 늘렸고 1997 시즌에는 프로야구 8개 구단 중 최고 수준의 연봉을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쌍방울 레이더스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팀이 정점을 이루고 있던 1997년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IMF 경제 위기의 여파는 프로야구에도 몰아쳤다. 국가적인 경제 위기에서 기업들의 투자자 지출이 크게 위축되고 수익이 없는 프로야구단은 천덕꾸러기가 됐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다소간 여력이 있었지만, 쌍방울 레이더스는 그렇지 않았다. 모기업이 외환위기 속 부도 위기에 직면하면서 프로야구단의 운명도 달라졌다. 당장 구단 운영을 위한 자금이 부족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쌍방울 레이더스는 주력 선수들의 현금 트레이드하는 방법으로 구단 운영자금을 조달했다. 포수 박경완을 시작으로 조규제, 김기태, 김현욱 등 주축 선수들이 하나 둘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다. 이런 전력 약화를 성적 하락을 불러왔다. 김성근 감독은 열악해진 선수단 상황에도 팀을 이끌어갔지만, 전력 약세를 극복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당연히 팀 성적은 최하위권으로 곤두박질했다. 이는 홈 팬들의 외면으로 이어졌다. 패하는 경기가 일상은 홈팀을 응원할 팬은 없었다. 

이렇게 어렵게 구단을 이어갔지만, 1999 시즌 쌍방울 레이더스는 한계가 분명히 보였다. 최악의 경기력 속에 쌍방울 레이더스는 17연패의 불명예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승률은 3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팀을 이끌어가던 김성근 감독도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됐다. 하지만 쌍방울 레이더스의 부진이 김성근 감독의 책임이라 말하는 이는 없었다. 이후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마무리하긴 했지만, 최악의 경기력에 구단 운영의 여력마저 잃은 쌍방울 레이더스가 다음을 기약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쌍방울 레이더스는 세기가 바뀌는 2000년 시즌을 앞두고 구단 해체를 공식화했다.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단은 SK가 인수했고 SK와이번스로 새롭게 창단했다. 선수단을 인수하긴 했지만, SK와이번스는 쌍방울 레이더스의 역사와는 단절된 팀이었다. 연고지도 전주에서 인천으로 이전했다. 과거 쌍방울 레이더스 흔적은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로 이어왔던 최태원의 연속 경기 출전 신기록은 SK와이번스에서 1014경기까지 이어졌고 쌍방울의 영건 김원형은 SK에서 활약하며 명예로운 은퇴를 했다. 쌍방울에서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 됐던 포수 박경완은 SK와이번스로 돌아와 최고 포수로서 선수 이력을 쌓았다.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지명된 신인 선수였던 이진영은 SK에서 기량을 꽃피웠고 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로 성장했다. 이렇게 SK와이번스에는 쌍방울 레이더스의 역사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SK와이번스의 전성기 시절 역시 과거 쌍방울의 돌풍일 이끌었던 김성근 감독 시절이었다. 

이렇게 쌍방울 레이더스와 완벽하게 단절될 수 없는 SK와이번스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예정이다. SK와이번스를 인수한 신세계 이마트는 기존 구단의 역사를 그대로 이어갈 것임을 천명했다. 구단 연고지나 구성원들 모두가 그대로 인수될 예정이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사례와는 차이가 있지만, 쌍방울 레이더스의 기억은 더 희미해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과거 쌍방울 레이더스의 신인 투구였던 김원형이 감독으로 구단의 또 다른 역사를 이어간다는 점도 또 다른 아이러니다. 

쌍방울 레이더스의 10년은 우리 프로야구의 취약한 구조를 그대로 보여준 시간이었다. 언제든 모기업의 상황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 있는 프로야구단의 불안한 입지는 지금도 여전하다. 프로야구단 자체로는 수익구조를 만들기 힘든 현실도 여전하다. 쌍방울 레이더스 이후 현대 유니콘스가 그런 전철을 밟았고 히어로즈로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추억의 팀 쌍방울 레이더스의 사례는 여전히 현실이 될 수 있다. 다만, 의욕적으로 프로야구단을 인수한 신세계 이마트가 프로야구단을 통해 새로운 수익구조를 창출한다면 프로야구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도 있다. 이제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프로야구의 흑 역사로 만 기억될 것이 아니라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교훈이 역사가 되어야 한다. 이는 신세계 이마트의 프로야구단의 앞으로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 글 : jihuni74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