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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4회] 코로나 시대 재조명 받고 있는 중세 유럽의 페스트 대유형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1. 2. 1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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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지나 2021년을 시작되는 시점에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가장 큰 이슈는 코로나다. 중국 우한에서 원인 모를 괴질로 시작한 이 전염병은 이후 전 세계로 퍼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지금은 현재 진행형이다. 코로나 시대로 불리는 이 시기 우리는 사회, 문화, 경제 거의 모든 분야에서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비대면과 거리 두기가 일상화되면서 대면 접촉이 필수적인 산업들을 큰 타격을 입었다. 단적으로 우리 주변의 자영업의 피해는 지속적이고 광범위하다. 반대로 배송 서비스와 온라인 사업들을 큰 호황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 수혜업종이라는 웃을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산업구조의 개편을 촉진하고 있다. 가뜩이나 인공지능이나 산업의 자동화 등으로 사람들의 일자리가 줄어지는 현실이 더 빨라지고 있다.

농업을 중심으로 한 1차 산업,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2차 산업,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3차 산업을 뛰어넘는 간 산업을 융합하고 새롭게 창조되는 4차 산업의 발전이 점점 더 빨라지고 생활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런 변화는 인간의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하고 발전시키고 있지만, 그 혜택의 차이는 부의 차이에 따라 크게 다르다.

빈부 격차는 이전보다 훨씬 더 커졌고 사회적 불평등의 깊이는 더 깊어졌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가장 불평등한 불황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인 사회 구조는 건강한 사회로 가는 데 있는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에 정부의 시장개입 등 공적 영역의 확대와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조세개편 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전염병의 대유행은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구조적 문제를 더 확연히 드러내고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키는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이는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중세 유럽에서도 지금의 코로나 사태와 비견될 수 있는 사건이 있었다. 1300년도 중반부터 수백 년의 기간을 거쳐 대유형을 반복했던 페스트, 흑사병의 대유행이 그것이다. 페스트의 유행은 유럽의 인구의 1/3을 사망케 할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당시 의학 수준으로 대처할 수 없는 전염병에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어갔다. 사회적 혼란을 극심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기독교가 생활 전반을 지배하던 중세 유럽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그만큼 페스트는 중세 유럽을 붕괴시키고 르네상스 시대와 근대 유럽으로 가는 데 있어 결정적이었다. 역사 교양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 4회에서는 유럽 역사의 전환기를 이끌었던 페스트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뤘다. 

여러 설이 있지만, 역사적 기록으로 중세 유럽 페스트는 1347년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항에 들어온 상선을 그 기원으로 하고 있다. 당시 이 섬에 들어온 상선의 선원들은 대부분 끔찍한 모습으로 사망한 상태였고 생존자들 역시 그 모습과 사망자와 다르지 않았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괴질에 걸려있던 선원들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이것이 페스트라는 신종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이들이 없었다. 

이를 기점으로 페스트는 이탈리아는 물론이고 전 유럽으로 빠르게 전파됐다. 흑사병으로 불리는 페스트는 온몸에 괴사가 발생하고 검게 변하며 고통스럽게 사망에 이르렀다. 감염 확인 후 사망까지 시간은 엄청나게 빨랐다. 이런 신종 전염병의 전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사람들의 비말로 감염돼는 페스트는 급속히 퍼졌다.

페스트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일대에서 풍토병의 형태로 존재했다. 쥐 벼룩을 매게로 하여 전파되는 페스트는 실크로드와 바닷길 등 동서양의 무역이 활발해는 시기에 유럽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상선이나 상인들의 짐을 통해 쥐벼룩을 가지고 있는 쥐가 유입되고 이를 통해 사람에게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아시아는 물론이고 유럽까지 영역을 넓히며 중세 유럽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몽골제국 군대를 통해서도 페스트가 유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단적인 예로 흑해 지역의 대표적 도시였던 카파를 침공했던 몽골군은 성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괴질에 걸려 사망한 병사들의 시신을 투석기를 동원해 카파 성안으로 날려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병사들은 페스트에 감염돼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감염자들과의 접촉은 당시 번성했던 도시 카파에서 페스트를 창궐하도록 했다. 동서양의 교역로에 위치해 있어 사람들의 이동이 빈번했던 이 도시를 거쳐 유럽으로 전염병이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유럽에 상륙한 페스트는 죽음의 병이었다. 그 원인과 치료법에 대한 무지했던 시대에 이 병은 사람들에게 신의 형벌로 인식됐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끔찍한 모습으로 사망하는 상황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종교에 더 의지했다. 이를 위해 교회에 모여 기도를 하거나 채찍으로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는 고행을 자초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은 이 전염병을 막아주지 못했다. 절대적인 권위를 유지하던 성직자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들의 비말로 감염돼고 전파되는 전염병을 대응하게 위해 모인 사람들은 전염병을 더 확산시킬 뿐이었다. 전염병에 대한 무지가 불러온 비극이었다. 

이런 미숙한 대처 외에도 페스트의 대유행은 시대적 상황에도 그 원인이 있다. 1300년대 유럽은 소빙기로 불릴 정도로 이상기후 현상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농작물의 수확은 크게 감소했고 대기근이 장기적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의 영양상태는 급속히 나빠졌다. 인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농노 등 일반 서민들은 더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고 이는 병에 대한 신체적 대응을 더 어렵게 했다. 여기에 인구의 증가로 인해 발생한 도시의 증가로 전염병이 대유행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인구의 밀집도가 높아지는 건 대면접촉의 가능성을 높였다. 당시의 열악했던 위생관념과 위생상태는 전염병이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는 요건이었다. 

병에 대한 과학적 지식 부족과 열악한 생활환경, 도시화의 진행까지 페스트는 최적의 조건 속에 중세 유럽을 파괴했다. 페스트를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기존의 비과학적 대처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에 대처하려 했다.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고 천재 물리학자인 뉴턴은 두꺼비의 토사물이 치료제로서 가능성을 연구하기도 했다. 대 예언가로 알려지 있는 노스트라다무스는 의사로서 당시 보편적인 치료법인 사혈, 즉 환자의 피를 밖으로 빼내는 치료를 금지하고 청결한 생활을 강조하는 등의 조치를 하기도 했다.

당시 기록에는 환자들을 격리하고 접촉을 피하는 등의 조치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에도 나름의 조치를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페스트 환자가 있는 집을 절도한 도둑들이 페스트에 감염돼지 않는 사실을 보고 그 도둑들이 식초를 몸에 바르고 마셔 이를 피했다는 기록도 있다. 식초의 산이 일종의 소독 효과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그만큼 당시 사람들은 페스트에 대응하기 위해 큰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페스트에 대한 조치는 비학적이었다. 지금같이 병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그 원인과 치료법을 개발하는 건 당시 의료기술이나 여건상 불가능했다. 여전히 전염병에 대한 비과학적 대응이 광범위하게 이어졌다. 역시 기록에도 남아 있는 새부리 모양의 기괴한 의사복을 입은 의사들의 모습은 당시 시대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가 일상화된 시대, 이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페스트에 피해가 덜했던 유대인 집단에 대한 반감이 컸다. 유대인들은 상대적으로 청결한 생활을 하면서 전염병의 위험을 줄였지만, 이는 그들에 대한 집단 학살 형태로 불행을 불러왔다. 지금의 코로나 시대에도 특정인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여전하다. 단적으로 중국에서의 코로나가 확산하던 시기 서구 유럽에서 아시아인들에 대한 조롱과 폭력이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렇게 페스트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페스트의 확산을 감소하는 일이 됐다. 전염병의 매게체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서 위생상태 개선이 이루어진 점도 전염병의 창궐을 막는 요인이 됐다. 하지만 급속한 인구감소는 사회 변화를 가속화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인구의 감소는 중세 유럽의 산업을 주력이었던 농업인구의 감소로 이어졌다. 노동인구의 감소는 노동력의 부족과 함께 임금의 상승과 연결됐다. 이는 사회적으로 하층민이었던 농노 등 농업인들이 부를 축적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경제적 부를 축적하면서 이들의 사회적 지위로 한층 높아졌다. 또한, 노동집약적인 곡물 위주의 농업은 점차 와인 생산을 위한 포도농사 등 수익 작물로의 전환을 불러왔다. 이는 농업의 고도화를 촉진하는 일이었다. 산업

구조의 변화와 함께 페스트의 대유행은 신이 아닌 인간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했고 이는 신을 중심으로 한 중세의 세계관을 벗어난 르네상스 시대로의 변화도 촉진했다. 그 과정에서 교황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위상도 크게 떨어졌다. 당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교회는 세속화와 타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하지만 페스트 대유행과 르네상스 등 시대적 흐름의 변화를 피하지 못했다. 기존의 교회를 거부하는 종교개혁이 큰 힘을 얻었고 기존의 교회는 구교와 신교로 그 세력이 나뉘었다. 중세 유렵을 지나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한 국가가 정립되면서 유럽 전체를 아우르던 교회의 영향력은 일상의 세계에서는 점점 멀어졌다. 이는 중세 시대의 종말로 연결됐다. 

물론, 페스트의 대유행이 중세 유럽의 종말을 전적으로 이끌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하지만, 상당 부분 영향을 주었다는 건 분명하다. 이는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코로나 사태와 너무 유사하다. 실제 우리는 변화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병에 대한 보다 과학적인 대응을 하고 있고 치료제와 백신이 빠르게 만들어지는 등 전염병에 대한 대응이 한층 신속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팬데믹의 공포는 여전히 사람들을 두럽게 하지만, 그에 대한 대응 역시 이전과는 달라졌다. 페스트의 대유행 시대와 달리 지금의 코로나 시대는 보다 빨리 회복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와 한층 더해지는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 전염병을 촉진시키는 도시화 등의 문제점을 언제든 또 다른 전염병의 가능성을 남기고 있다. 제2, 제3의 코로나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중세 유럽을 파괴했던 페스트의 대유행 역사를 연구하고 큰 교훈으로 삼아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 시대에 중세 페스트 시대의 재현이 될지, 긍정적 사회 변화를 이끌어낼지 이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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