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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연천군은 휴전선과 인접하고 있어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곳으로 오랜 기간 여겨졌다. 남북 대치의 상황에서 연천은 도시화와 산업화의 흐름과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환경은 연천이 그 어느 곳보다 자연이 더 잘 보존되고 오래된 유적들이 그 원형을 유지할 수 있는 터전이 됐다.

연천은 과거 구석기 시대 유물과 유적부터 고구려 성곽, 더 고대의 지질 유적까지 고대의 역사를 품고 있다. 연천은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터전을 잡았던 곳이었다. 그만큼 사람이 살기 좋은 입지를 갖추고 있었다. 임진강과 한탄강의 물줄기는 그 근본이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남측 변방으로 그들의 안위를 책임지는 중요한 요지였다.

이런 연천은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시대의 흐름과 다소 동떨어진 위치가 됐다. 최근 연천은 청정자연과 그 안에 담겨있는 어디에도 없는 고대의 유적들을 바탕으로 도시인들이 힐링할 수 있는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도로망도 늘어나면서 연천에 대한 거리감도 크게 줄어들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고대의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 연천의 이모저모를 함께 했다. 

여정은 이른 아침 임진강의 풍경 속 고구려 성곽인 당포성에서 시작했다. 삼국시대 세력 다툼의 최전선에서 있었던 당포성은 그때의 긴장감이 사라졌지만, 겹겹이 쌓인 역사의 흔적을 담고 서 있었다. 그 전망대에서 바라본 임진강의 풍경은 멋지가 아름다웠다. 

 



고구려 유적지를 떠나 나선 길, 한 군장 용품점을 찾았다. 휴전선을 접하고 있는 연천은 군사도시로서의 기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군부대와 군 장병들은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연천의 군부대는 과거 군 생활을 했던 수많은 이들의 추억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군장 용품점에는 과거 군 생활을 추억하게 하는 용품들뿐만 아니라 달라진 군 문화를 보여주는 각종 군장 용품도 함께 갖추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군 생활은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했지만, 이제 군대는 과거와 같은 폐쇄성을 상당 부분 걷어냈다. 일과시간 이후에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고 인터넷 이용도 가능하다. 외부와의 소통이 한결 자유로워진 군대는 더는 단절의 장소가 아니다. 이곳에서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소중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 복무 기간도 크게 줄었고 병사들의 월급이나 대우도 긍정적으로 변했다.

물론, 혈기 왕성한 청년들에게 국방의 의무는 힘든 일이다. 최근 신세대 군인들은 군 생활 속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고 긍정의 에너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군장 용품점에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는 화려하고 예쁜 군장 용품이 가득했다. 이곳을 수십 년간 운영한 사장님은 그런 군 문화의 변화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인지하고 있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아들과 그 아버지가 군장 용품을 찾아 필요한 물품을 사는 장면은 군대가 더는 무섭고 힘든 공간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군장 용품은 장년층 이상에는 추억과 달라진 세태 풍경이 공존하고 있었다. 

강을 따라 걷다 직접 농사지은 율무 곡식을 뿌리고 있는 한 어르신을 만났다. 그는 해마다 연천을 찾는 겨울철새 두루미를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었다. 경계심이 많은 두루미는 사람이 없는걸 확인하고 나서야 율무를 먹으로 온다고 했다. 두루미에게는 최고의 먹잇감인 율무를 주고도 그들에게서 공치사로 얻지 못하는 일이지만, 그는 천연기념물이고 세계에서도 개체 수가 몇천 마리에 불과한 두루미가 연천을 찾아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다 했다. 청정 자연이 보존된 연천의 두루미가 다시 한번 반가웠다. 

발걸음은 연천의 민통선 마을인 황산리로 이어졌다. 20여 가구가 함께 모여사는 이 마을은 접경기의 긴장감보다는 이웃 간이 정이 넘치는 따뜻함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연천의 율무로 만들어내는 율무 부꾸미를 함께 나누고 있었다. 이 마을의 상당수 주민들은 전국 각지에서 이곳으로 와 이웃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다양함이 이 마을에서는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서로에 대하 이해와 소통으로 기분 좋은 섞임이 되고 있었다. 이런 즐거움 속에서도 팔순의 어르신에게는 이산의 아픔을 마음 가득 안고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전쟁으로 부모님과 헤어졌고 잠깐의 헤어짐이라 믿었던 이별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자신도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가족 상봉의 희망을 잃지 않고 있었다. 이런 희망은 이웃 간의 정과 함께 그의 삶의 지탱하는 중요한 힘이 되고 있었다. 

황산리 마을을 떠난 여정은 연천의 콩으로 직접 두부를 만드는 손두부 식당에서 연천의 맛을 느끼도록 했고 팔순의 어머니에서 며느리로 전해지고 있는 식당의 역사를 함께 하도록 했다. 그 맛에는 가족을 위해 그의 생 대부분을 희생한 어머니의 가족 사랑과 치열한 삶의 여정이 담겨 있었다. 

손두부 식당 외에 그들만의 역사를 이어가는 이들이 또 있었다. 큰 정미소 마당 한편에서 국궁 연습이 한창인 3부자를 만났다. 그들은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목궁을 제작하고 전승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생업을 위해 정미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나무를 손으로 깎고 다듬어 전통 국궁을 만드는 전통을 이어가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아버지로부터 기술을 전승 받았고 두 아들은 아버지의 기술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전통 목궁 기술은 그 명맥을 다음 세대로 전해 가고 있었다. 

연천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고대 선사유적지 공원은 구석기 시대 유물이 다수 출토한 이 지역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물은 우리 구석기 시대 역사를 더 위로 끌어올린 소중한 발견이었다. 연천에는 이를 기념하는 선사 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연천의 선사시대 전통은 주먹도끼 빵이라는 재미있는 빵으로도 전해지고 있었다. 구석기 시대 대표적 유물인 주먹도끼를 형상화한 이 빵은 지역에서는 나는 재료들로 만들어져 그 의미가 더했다. 이 빵을 만든 사장님은 연천을 더 알리고 싶다는 작은 소망에서 이 빵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연천은 구석기 유적뿐만 아니라 태고의 자연 신비를 함께 가진하고 있다. 임진강변과 한탄강변의 지질은 오랜 세월 쌓인 지질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연천을 포함해 포천, 철원 지역에는 이를 알리고 보존하기 위해 지질공원이 있다. 연천은 그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연천의 재인폭포는 연천을 대표하는 절경 중 하나다. 

연천의 이런 절경을 따라가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부리에 이르렀다.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두 강의 만나는 장소는 특별함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민물 고기를 잡는 어부를 만났다. 어린 아들과 함께 민물고기를 잡고 있는 어부는 멀지 않은 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온 가족들이 하나 되어 운영하는 이 식당에서는 지역의 대표적 보양탕인 어제비탕을 주메뉴로 하고 있었다. 직접 잡은 물고기를 오랜 시간 푹 고아 만드는 어제비탕은 수제비가 더해져 걸쭉한 국물을 만들어 냈다. 청정 자연에서 잡히는 물고기로 만들어진 어제비탕은 특별해 보였다. 

이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는 식당을 하면서 수해로 수차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아픔이 있었다. 하지만 가족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번듯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지금도 아들들은 부모님의 일을 도우며 부모님의 어깨를 가볍게 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 식당에는 이 가족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여정의 막바지 한적한 동네 시골길을 걷다. 노부부가 있는 한 집에 이르렀다. 팔순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는 무엇인가 만드는 데 한창이었다. 이 할아버지는 집안 살림살이 곳곳에 바퀴를 달고 있었고 이미 달려있었다. 집안일이 힘든 할머니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할아버지의 배려에서 나온 일이었다. 방문했을 때로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한 화장대를 만들고 있었다. 

이곳에서 7남매를 키워낸 노부부는 자녀들이 장성해 한 시름 덜었다 한 시점에 할아버지의 암 투병으로 시련을 겪었다. 할아버지는 무려 4차례의 수술을 견디며 암과 싸웠다. 그 곁에서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투병에 큰 힘이 됐다. 이런 부부의 사랑으로 암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 시련이 이들 부부의 믿음과 사랑은 더 굳건히 했다. 할아버지의 할머니에 대한 사랑은 그가 다는 바퀴에 담겨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은 봄 햇살과 같이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연천에는 남북 대치의 긴장 속에서도 행복한 그들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이들이 곳곳에 있었다. 태곳적 부터 그 역사를 이어온 연천의 역사와 함께 이웃들의 역사가 더해지고 있었다. 이런 이웃들이 살고 있는 연천은 더 이상 멀기만 한곳이 아니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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