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야구에서 강력한 불펜진은 팀의 성적과 직결되는 요소가 되고 있다. 불펜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다. 과거 선발, 중간, 마무리의 구분이 없었던 시절 불펜의 중요성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투수 분업화가 정착한 최근 불펜진은 승리를 지키기도 해야 하고 승부 흐름을 유지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불펜진이 약한 팀은 경기 후반이 불안하고 역전패가 늘어날수록 팀 분위기가 크게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 이에 불펜 투수에 대한 평가가 크게 달라지고 있고 FA 시장에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각 팀을 안정적인 불펜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지만, 시즌이 시작되면 기대와 다른 모습이 연출되는 경우가 많다. 항시 등판을 대기해야 하는 불펜 투수들이 꾸준함을 유지하기 어렵고 그 해 많은 이닝을 투구한 불펜 투수가 그 다음 해 후유증을 겪기도 한다. 팀들은 당장의 불펜진 구성뿐만 아니라 불펜 투수들의 컨디션 유지도 신경 써야 한다.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 시즌 마무리 투수를 교체하면서 불펜진에 변화를 줬다. 지난 4년간 롯데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손승락이 은퇴하면서 생긴 마무리 투수 자리를 입단 이후 선발 투수로만 활약했던 김원중으로 채웠다. 김원중은 롯데가 선발 투수로 육성하면서 큰 공을 들였지만, 기대만큼 발전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구위는 뛰어났지만, 기복 심한 투구 내용이 문제였다. 이에 롯데는 힘을 모아 던질 수 있는 불펜 투수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이닝에 대한 부담을 덜고 장점인 강한 직구를 더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
마무리 김원중은 시즌 초반 성공적이었다. 롯데는 풀타임 첫 마무리 투수에 도전하는 김원중의 이닝을 관리하면서 마무리 투수 연착륙을 도왔다. 김원중은 빠르게 마무리 투수로 자리를 잡았다. 시즌 초반 김원중은 1점대 방어율을 유지했고 완벽한 마무리 투수였다. 마무리 투수 자리가 안정되면서 불펜진의 동반 상승효과가 나타났다. 그의 앞에서 필승 불펜조를 구성한 박진형, 구승민의 투구 내용도 안정적이었다. 불안했던 롯데 불펜진은 확실한 필승 불펜조 3명이 등장하면서 안정감을 되찾았다. 롯데가 시즌 초반 상위권을 유지하는 데 있어 불펜진의 활약을 컸다.
하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불펜진에 균열이 생겼다. 마무리 김원중이 풀타임 첫 시즌의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롯데는 시즌 중반 이후 김원중에 대한 관리의 사슬을 끊고 적극적으로 그를 활용했다. 동점 상황에서도 그의 등판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멀티 이닝 소화도 있었다. 아직 20대 젊은 투수인 김원중에게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이닝이 누적될수록 공략 당하는 일이 늘었다. 김원중은 직구 위주의 투구 내용에서 변화가 구사 비율을 늘리는 등 변화를 모색했지만, 결정적인 순간 피홈런으로 무너지는 경기가 늘었고 블론세이브도 쌓여갔다.
김원중은 2020 시즌 5승 4패 25세이브 방어율 3.94를 기록했다. 첫 마무리 투수 도전이었음을 고려하면 기대 이상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전반기와 후반기 성적 편차가 컸다. 블론 세이브 8개는 대부분 시즌 후반기 기록했다. 포스트시즌 진출 경쟁이 본격화된 시점에 김원중이 무너진 경기가 많았다. 그의 블론 세이브 8개는 치명적이었다. 김원중의 문제는 또 다른 필승 불펜 박진형, 구승민도 다르지 않았다.
두 필승 불펜 투수 역시 이닝이 누적되면서 공략당하는 일이 늘었고 페이스가 크게 떨어졌다. 보호 관리의 틀을 벗어나면서 성적도 내림세를 보였다. 이들의 부진 속에 신인 투수 최준용이 등장은 큰 힘이 됐다. 최준용은 150킬로에 이르는 강한 직구를 바탕으로 힘으로 타자를 제압하는 파워 피처였다. 구종은 단조로웠지만, 직구의 구위가 워낙 뛰어났다. 날카롭게 꺾이는 슬라이더 역시 위력적이었다. 시즌 초반 2군에서 프로에 데뷔했던 최준용은 시즌 중반 이후 1군 불펜진에 합류했다. 추격조에서 시작한 최준용은 이후 필승 불펜조에서도 한 축을 담당했다. 신인 투수의 경험 부족이 아쉬웠지만, 충분히 가능성을 확인한 시즌이었다.
최준용은 등장은 반가웠지만, 롯데는 애초 구상한 필승 불펜조가 시즌 내내 원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김원중을 포함해 박진형, 구승민 모두 시즌 초반에 비해 후반기 페이스가 떨어졌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피홈런으로 무너지는 경기가 많았다. 이들은 모두 포크볼과 스플리터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공통점이 있다.
포크볼과 스플리터는 직구 구위가 위력이 있고 힘이 있을 때는 효과적인 무기다. 짧은 이닝을 책임지는 불펜 투수들에게는 더 유용하다. 하지만 힘일 떨어지는 상황에서 포크볼 스플리터는 그 위력이 반감되고 타자들에게 공략하기 쉬운 공이 될 수 있다. 투수들의 부상 위험도 커진다. 필승 불펜조 중 박진형은 거의 매 시즌 부상 공백이 있었고 구승민 역시 포크볼 의존도가 크다는 점이 불안요소다. 세 명의 필승 불펜 투수들이 후반기 어려움을 겪은 것과 그 연관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올 시즌 롯데는 마무리 김원중을 시작으로 박진형, 구승민을 필승 불펜진으로 구성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만큼의 경험과 구위를 가지고 있는 투수가 없다는 현실적이 문제가 있다. 불펜 투수에게 경험은 중요한 덕목이다. 마무리 김원중은 지난 시즌 초보 마무리 투수였지만, 2015 시즌부터 1군에서 경험을 쌓았던 중견 투수다.
올 시즌에도 김원중, 박진형, 구승민은 불펜진의 핵심이다. 지난 시즌 성공과 실패의 경험은 시즌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최준용이 본격 가세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시즌 가능성을 보인 최준용은 한 층 더 발전된 투구가 기대되고 있다. 구위는 이미 인정을 받았다. 다른 필승 불펜 투수와 달리 슬라이더를 중요한 레퍼토리로 삼고 있다. 입단 이후부터 불펜 투수로 육성되면서 불펜투수로서의 이해도가 크다. 지난 시즌 30이닝 미만의 투구 이닝으로 신인왕 경쟁의 자격도 있다. 큰 동기부여 요인이다. 기존 필승 불펜 3인과 다른 유형의 최준용은 필승 불펜진의 다양성을 더할 수 있다. 필승 불펜 중 부진한 투수가 나온다면 그를 대체할 수 있다.
다만, 좌완 불펜 투수의 아쉬움은 남는다. 이미 탈 고교급 좌안 투수였던 특급 신인 김진욱이 불펜투수로 나선다면 롯데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롯데는 특급 신인 김진욱의 불펜 기용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김진욱은 1군 선발 투수 경쟁에 포함될 자원이다. 또 다른 좌완 불펜 투수 김유영은 1군에서 붙박이로 자리하기에는 불안감이 상존하고 있다. 이는 우완 투수 일색인 롯데 필승 불펜진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좌타자가 각 팀의 주력 타선을 구성하는 현실에서 상대 타선의 분위기를 끊기 어렵다. 힘이 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경기 후반이 불안해질 수 있다.
롯데로서는 상대 좌타선 봉쇄가 필승 불펜진의 안정화에 큰 과제가 될 수 있다. 불펜진의 구성과 상대 타선과의 관계를 고려한 현명한 불펜 운영이 필요하다. 데이터 분석 시스템에 큰 공을 들인 롯데가 지난 시즌 누적된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지켜볼 부분이다. 마무리 김원중을 포함해 필승 불펜진을 구성하는 인원들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2021 시즌 롯데는 큰 의욕을 가지고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전력 강화 요인은 크지 않지만, 선수 육성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서 내부에서 선수 충원이 이루어지고 선수층이 두꺼워졌다. 마운드 역시 새로운 외국인 투수 프랑코가 기대 이상의 투구 내용을 보이고 있고 신인 김진욱이 순조롭게 프로에 적응하고 있어 플러스 요인이 늘었다. 선발 마운드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지난 시즌보다 강해졌다. 불펜진이 구상대로 가동된다면 마운드 운영이 보다 수월해질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필승 불펜조가 제대로 존재감을 보이고 유지하는 게 그래서 중요한 롯데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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