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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은 깊은 산중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실제 제천은 면적의 70% 이상의 산지로 이루어진 산악지형이다. 그 때문에 외지인들이 쉽게 찾기 힘들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대신 제천은 청풍호반의 멋진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어 찾기 어렵지만,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13회에서는 이 제천을 찾아 그곳의 멋진 자연과 남모를 사연을 가진 이웃들을 만났다. 

여정의 시작은 KTX 역이었다. 제천은 KTX 고속 열차를 타고 찾을 수 있었다. 청량리에서 고속 열차를 타면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제천이었다. 멀었던 마음의 거리가 한층 가까워졌다. 이런 접근성의 향상은 제천의 멋진 자연경관을 찾으려는 이들의 발걸음을 한결 더 가볍게 해주고 있었다. 특히, 2년 전부터 운행을 시작한 청풍호반 케이블카는 청풍호반의 풍경을 위에서 살피며 비봉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제천을 둘러싼 멋진 산세와 그 사이 맑은 호수가 조화를 이루는 풍경은 말 그대로 절경이었다. 

제천의 경치를 뒤로하고 산골 마을로 향했다. 총 9가구 정도가 함께 모여사는 산골 마을에서 어르신들이 장작 패기에 여념이 없었다. 가득 쌓은 장작을 옮겨가는 장소로 함께 따라가니 조청을 만드는 작은 공장이 있었다. 가마솥에서는 조청을 끓여내는 일이 한창이었다. 이 마을의 조청은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서 만들기 시작했고 마을의 명물이 됐다. 인근 산에서 캘 수 있는 칡으로 만드는 조청은 자연의 향과 함께 영양도 만점이었다.

 



장년층 이상에게는 과거 가래떡과 함께 먹던 시골 조청의 맛을 떠올리게 하고 젊은 층에게는 자극적이지 않게 단 맛을 내는 조청이 별미가 될 것 같았다. 조청의 조청을 다리고 엿기름을 만드는 등 과정이 3일이 걸리는 고된 작업이지만, 조청은 마을 주민들이 하나가 되도록 했다. 외롭게 쓸쓸할 수 있는 산골 마을은 이 조청으로 활기차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조청 마을을 떠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걸으며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발걸음이 한 식당에서 멈춰졌다. 이 식당은 산에서 나는 더덕, 황기 등 천연 약초들이 가득 들어간 건강 밥상을 내어놓고 있었다. 제천의 청정 자연과 산은 오래전부터 각종 약초들을 사람들에게 내주었다. 이 식당은 이 약초와 함께 닭백숙 등 보양식을 중요한 메뉴로 하고 있었다. 70~80년대 시멘트 산업이 발달했던 제천에서 공장 근로자들과 주민들을 먼지 가득한 환경 속에서 이런 보양식을 함께 하게 건강을 지켰다고 했다. 이 식당의 약초밥은 제천의 근대화 역사와 함께 하고 있었다. 

여기에 이 식당은 사장님은 과거 아버지와 가족들이 즐겨 먹었던 약초 밥상을 추억을 함께 담아내고 있었다. 이제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좋아했던 이 밥상은 아비지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특별한 한 상의 기억을 채워주고 있었다.

다시 제천의 명소를 찾았다. 삼한시대를 그 기원하는 고대 유적지 의림지가 있었다. 이곳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인공 저수지로 알려져 있는데 과거 우리 농경문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유적이었다. 지금은 제천 시민들과 여행자들이 의림지를 둘러싼 멋진 경치와 함께 산책을 즐기는 명소로 자리하고 있었다. 고대의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제천의 원도심 길을 따라 걷다 예쁜 빗자루가 걸려있는 한 공방을 만났다. 형형색색의 전통 빗자루로 채워진 이 공방은 68년의 세월 동안 전통 빗자루를 만들고 그 기술을 지켜가고 있는 장인의 공간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만들던 빗자루를 따라 만들었고 주변의 요청으로 빗자루를 계속 만들다 평생의 업이 됐다고 했다.

지금은 쉽게 구할 수 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값싼 빗자루를 대부분 사용하는 탓에 수수와 억새 등 주변의 재료로 만드는 전통 빗자루를 그 자리를 잃어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 장인은 빗자루 만드는 일을 놓지 않았고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더 나아가 빗자루를 도구가 아닌 예술품으로 만들어 그 가치를 높여가고 있었다. 그는 전통 빗자루를 만들고 그 기술을 지켜가는 일을 하면서 매일매일이 새롭고 배움의 연속이라 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그의 배우자와 함께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빗자루는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제천 시내를 걷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찹쌀떡 맛집에 이르렀다. 예스러운 분식집 간판을 달고 있는 이 찹쌀떡집은 제천에서 나는 찹쌀과 남다른 팥을 재료로 찹쌀떡과 도넛을 만들고 있었다. 이 집은 가족들이 모여 운영하고 있었는데 3대째 그 가업을 이어가는 중이라 했다. 분식집 역시 과거 이 가족의 추억이 담긴 집을 개조해 사용하고 있었다.

할머니에서 그 자녀로 다시 그 자녀로 이어지는 이 찹쌀떡집의 역사는 50년 넘게 그 맛을 유지하고 이어지고 있었다. 그 맛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서는 지금도 사람의 손으로 팥을 쑤고 떡을 빚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런 노력은 찹쌀떡집 2대를 이어가는 어머니의 지문을 다 사라지게 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젊은 자녀들이 이 찹쌀떡집을 이어가도록 원동력이었다. 가족의 사랑과 함으로 이어지는 이 찹쌀떡집의 맛이 계속 지켜지기를 기원하며 또 다른 여정을 이어갔다. 

시골 마을 길을 걷다 청풍호수 근처의 시골마을 길을 걷다 봄 농사를 준비하는 마을 주민들을 만났다. 이들에 이끌려 경로당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이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이 마을을 1985년 충주댐이 건설되고 일대가 수몰지구가 되면서 이주한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이었다. 애초 88가구가 수몰되었는데 타지로 떠난 이들을 제외하고 22가구가 청풍호수 근처에 터를 잡았다 했다. 

이들은 지척에 두고 온 그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 가득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한때 고향에서 멀이 떨어져 살기도 했지만, 그리움을 완전히 지워낼 수 있었다. 그 그리움은 할머니를 이 마을로 이끌었다. 할머니는 지금도 가끔 물이 빠지면 나타나는 과거 집터를 찾는다고 했다. 그리움을 지워내려 해도 눈앞에 나타나는 고향 마을의 흔적은 그리움을 자꾸만 마음 한편에 쌓여가게 하고 있었다. 이 할머니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이런 사라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간직하고 있는 수몰 전 마을과 함께 하는 빛바랜 사진들은 추억과 함께 마음 한편에 남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 담고 있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라의 발전, 더 큰 이익을 위해 댐을 만들고 그 물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이들의 고통이 숨겨져 있었다. 충주댐의 거대한 규모는 수몰지구의 면적을 더 크게 했고 아픔의 크기도 더 크게 했다. 이들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풍호반 무심히 출렁이고 있었다. 

이렇게 제천은 조용하지만, 기쁨과 슬픔, 삶에 대한 치열함이 가득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청정자연과 멋진 경관을 담은 청풍호반은 이웃들의 역사 또한, 가득 담고 있었다. 제천의 청풍호반은 그래서 더 특별해 보였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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