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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는 삼국시대가 정립되기 전 한반도 남쪽의 삼한에 속했던 사벌국을 그 기원으로 할 정도로 긴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상주는 신라로 병합되었고 통일 신라시대 지방 행정 구역인 9주에 그 이름이 있다. 고려 시대에는 지방에 설치한 12목에 속해 지방관의 파견되었고 조선 시대 초기 경상도 지역의 중심 도시로 지역을 관할하는 감영이 설치되기도 했다.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를 합친 말로 유서 깊은 도시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곳이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24회에서는 경북 내륙의 유서 깊은 도시 상주를 찾아 지역의 명소와 특산물, 사람들과 만났다. 여정의 시작 전 멋진 낙동강의 풍경을 살필 수 있는 경천대를 찾았다. 경천대로 올라가는 산책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초록의 수목이 방문자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오른 경천대는 상주 제1경이라 할만했다. 경천대의 본래 이름은 하늘이 스스로 그  풍경을 만들었다 해서 자천대였다. 그만큼 경천대는 예로부터 멋진 절경을 자랑하는 명소였다. 

경천대에서 내려와 본격적으로 길을 나섰다. 오전 시간 상주 시내는 자전거를 타는 이들도 많이 보였다. 이들은 출근길과 등굣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친환경 교통수단인 자전거는 최근 그 수요가 늘고 자전거 전용도로 등 관련 인프라가 확충되고 있다. 상주는 자전거가 매우 보편적인 교통수단으로 보였다. 알아보니 상주는 1910년대부터 자전거가 널리 보급되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상주는 자전거의 도시로도 불린다 했다. 세월이 흘러 자동차 등 더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이 늘어나면서 사용자 수가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시민들을 따라가다 오래된 자전거 수리점에서 이르렀다. 6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자전거 수리점은 자전거 도시 상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수십 년 된 낡고 오래된 자전거도 이 수리점에서는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마침 오래된 자전거를 싣고 와 수리를 맡기는 이가 있었다. 그가 가져온 자전거는 지금을 보기 힘든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는 자전거와 빛바랜 세발자전거까지 다양했다. 이 자전거 수리점에서 자전거들은 또 다른 역사를 이어갈 힘을 얻게 됐다. 친환경이 중요한 시대적 흐름이 되고 있는 시대 상주의 자전거 타는 풍경은 과거를 추억하는 풍경이 아닌 또 다른 미래를 여는 풍경으로 보였다. 

 



상주 시내에서 벗어나 오래된 골목길을 걸었다. 그곳에서 한 피자가게가 보였다. 간판이 없어 잘 모르면 지나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피자가게였다. 이유가 있었다. 이 피자가게는 하루 10판 이상의 피자를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 때문에 많은 손님이 찾으면 발걸음을 되돌리는 이들이 많을까 걱정이 되어 그 이름을 알리지 않는다고 했다. 독특한 경영 철학을 가진 이 피자가게의 사장님은 젊은 여성이었다.

그는 미술과 음악을 좋아했고 예술가의 꿈을 안고 서울로 나가 살았다. 하지만 그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던 도시의 삶은 고단했고 기대와 너무 달랐다. 그렇게 도시 생활에 지쳐가는 시기 그는 고향인 상주로 돌아와 새로운 인생을 열었다. 지금의 가게가 있는 골목은 과거 할머니가 살았던 곳으로 할머니는 그에게 이곳에서 함께 살 것을 소망하기도 했다. 자신의 꿈을 찾아 상주를 떠나면서 할머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그는 홀로 할머니의 바람을 실현하고 이어가고 있었다.

비록 예술가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사장님은 성공과 결과에 매달렸던 도시 생활에서 느낄 수 없었던 소소한 일상과 천천히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큰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사장님에 의해 만들어지는 피자는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중심으로 최고의 재료를 사용하고 있었다. 대량 생산을 하게 되면 그 정성이 흐트러질 수 있기에 소량 생산을 고집한다고 했다. 그에게는 이 피자가게가 유명해지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이 결코 행복하지 않아 보였다. 이 피자가에서 그는 느릿느릿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행복한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소신 가득한 피자는 그래서 더 특별했다. 

다시 상주의 농촌 풍경을 따라 걸었다. 그 길에 넓은 뽕나무 밭이 있었다. 뽕나무 잎은 명주실의 재료가 되는 누에고치를 만드는 애벌레의 먹이다. 상주는 신라시대부터 명주가 중요한 특산물이었다. 상주는 대표적인 특산물인 곶감과 낙동강변의 비옥한 토지에서 나오는 쌀, 명주를 3대 특산물로 하고 있다. 뽕나무 밭은 명주를 만들어내는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밭에서 일하는 분을 따라 옷감을 만드는 농가로 향했다. 백 년은 넘었을 명주실을 짜는 베틀을 비롯해 세월의 흔적 가득한 물건들이 곳곳에 있었다. 

함창지역은 상주의 명주를 대표하는 지역인데 함창 명주는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물론, 합성섬유와 각종 첨단 소재의 섬유와 옷감이 보편화되면서 명주는 쇠락을 길을 걷긴 했지만, 함창명주는 우리 전통을 지키려는 이들의 사명감과 노력으로 그 역사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방문한 농가의 부부는 손으로 하는 일이 대부분인 함당 명주 만드는 작업이 힘들고 고되지만,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명주 옷감을 만들어내면서 상주의 명품으로 명주를 자리하게 하고 있었다. 그들의 노력에 헛되지 않고 함창명주가 또 다른 명품으로 굳건히 자리하길 기원했다. 

상주의 교외 낙동강변을 따라 걸었다. 그 길에 강 한가운데 자리한 섬이 보였다. 경천섬이라 불리는 이 섬은 최근 지역의 숨은 관광지를 발굴 육성하는 강소형 관광지 사업의 일환으로 정비되고 개발됐다. 이섬은 멋진 산책로와 낙동강의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자전거 도시 상주에 맞는 자전거길과 함께 강을 가로지르며 즐길 수 있는 보트 투어로 색다른 경험도 할 수 있었다. 강 한가운데 자리한 섬은 춘천의 남이섬을 먼저 연상하게 되는데 경천섬도 지역의 또 다른 명소로 기대가 됐다. 

시원한 강변의 풍경을 뒤로하고 멋진 산책로가 있는 마을을 찾았다. 그곳에서 한 한옥이 눈에 들어왔다. 모녀가 함께 살고 있는 그 집은 특별함이 있었다. 그곳은 상주지역에서 전해지는 오래된 요리 백과사전인 시의전서의 요리를 재현한다고 했다. 시의전서는 원본은 사라지고 한글 필사본만 전해지고 있었다. 시의전서는 요리만이 아닌 당시 우리 문화와 시대상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었다.

그 책의 요리를 재현하는 건 한 시대를 재현하는 일도 그 자체가 의미있게 다가왔다. 딸은 책의 내용과 함께 어머니의 오랜 경험을 모아 전통의 요리를 만든다고 했다. 어머니는 연로했지만, 자신의 몸으로 익힌 비법을 딸에게 전수해 요리의 완성도는 높이고 있었다. 그렇게 모녀는 서로에 의지해 전통을 지키며 함께 하는 시간을 가치있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여정의 막바지 농촌 마을 길을 걷다가 복숭아 과수원을 만났다. 보통의 과수원과 다를 게 없어 보였던 이곳에 특별한 사연이 숨어있었다. 과수원 주인을 따라가니 수십 개의 돌탑이 보였다. 이 돌탑은 과수원 주인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돌을 쌓고 그렇게 만들어진 탑이 지금에 이르렀다. 그는 평생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 어머니에게 효도를 다하지 못한 한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그는 70살이 되어 탑을 쌓는 일일 시작했다. 그전에는 자신의 삶을 지켜가는 것도 버거웠다. 하지만 그가 좀 더 여유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 주지 못했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어머니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것이 그에게는 후회로 남았다. 그가 2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방의 유품을 모두 정리하지 못하는 것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지워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수십 개의 돌탑은 그래서 그에게 더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상주에서 많은 이웃들을 만났다. 상주는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도시와는 다른 느림과 여유가 함께 하는 도시였다. 비록 과거의 영광을 잃고 소도시가 됐지만, 상주에는 다른 곳에 없는 도시만의 가치가 곳곳에 베어 있었다. 그런 상주에 사는 사람들 역시 그들만의 삶의 여정을 거친 세파에 아랑곳하지 않고 쌓아가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풍요로워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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