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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33회] 멋진 바다와 산세, 값진 삶 사는 이웃들이 있는 울진군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1. 8. 2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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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가장 북쪽 해안선에서 강원도와 접하는 울진군은 서쪽으로 태백산맥이 동쪽으로 동해바다의 해안선을 만날 수 있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유적지가 있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고구려 영역에 있었을 당시는 우진아현으로 불렸고 신라가 그 지역을 장악한 이후 지금의 울진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려와 조선에서는 군사 요충지였고 1962년까지 강원도 행정구역에 속해있다 경상북도로 행정구역이 변경된 독특한 역사적 이력이 있다. 영덕과 함께 대게의 산지로 유명하지만, 교통망이 부족해 다소 소외된 지역이기도 했다. 최근 고 멋진 바다와 숲을 테마로 한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동해안에서 보기 드문 온천관광지로 유명하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이 울진을 찾아 지역의 명소와 그곳에 사는 이웃들을 만났다. 

울진의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명소를 먼저 찾았다. 멋진 동해바다의 풍경과 함께 하는 왕피천 케이블카는 최근 건설되어 울진을 대표하는 여행지가 됐다. 그 케이블카를 타고 오는 해맞이 공원에서는 관동 8경에서 가장 첫 손에 꼽히는 망향정과 만날 수 있었다. 그 정자에서 바라보는 동해바다의 풍경은 그곳이 왜 오래전부터 그 지역을 대표하는 풍경인지를 알 수 있게 했다. 

동해바다의 풍경을 뒤로하고 서쪽으로 향하며 울창한 태백산맥의 숲과 만날 수 있다. 수백 년 수령의 토종 금강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 숲길이 인상적이었다. 8만 그루 이상의 금강송이 가득한 울진 소나무 숲길은 꾸준한 관리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금강송은 조선시대 최고의 목재였고 울진의 소나무 숲은 왕실에서도 관리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 한적한 소나무 숲길에서 수백 년의 시간을 함께 하며 걸을 수 있었다. 울진 금강소나무길로 조성되어 더 많은 탐방객이 찾을 수 있게 된 이 길은 인터넷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 숲길을 따라 내려가다 그 아래 자리한 마을을 만났다. 그 마을의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그 지역에서 흔한 소나무에서 나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송홧가루와 솔잎이 들어간 전통 다식과 왕이 보양식으로 마셨다는 송홧가루가 들어간 음료 등이 이 마을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도시와 동떨어진 삶이 다소 불편함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청정 자연이 매일 주는 선물과 함께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계곡물을 따라가다 강가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은어 낚시를 하는 이들과 만났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울진의 왕피천은 은어 낚시를 하는 이들이 명소가 된다고 했다. 1급수의 맑은 물에서만 사는 은어를 이 왕피천에서는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곳 역시 청정 자연이 주는 선물과 같은 장소였다. 

이제 이웃들을 만나기 위해 울진의 읍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각 가게마다 특색 있고 잘 정돈된 입간판이 서있는 시장길을 따라 걸었다. 시장을 탐방하던 중 한 국수 식당이 보였다. 그 식당은 바다와 접하고 있는 울진과 어울리는 회 국수가 있었다. 1978년 문을 연 이 식당은 어머니에서 아들로 대를 이어 운영 중이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비법을 전수받아 그 맛을 지켜가고 있었다.

아들은 도시에서 살았지만, 어머니의 병환으로 귀향해 이 식당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치매증세로 오랜 시간 투명 중이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삶과 함께 하는 국수와 이 식당을 지키고자 큰 결심을 했다. 어머니는 아들마저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병이 악화됐지만, 국수의 맛은 잃지 않았다고 했다. 아들은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삶의 터전을 지키는 게 마지막 효도로 여기도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아들의 마음이 담긴 국수는 더 특별했다. 

시장을 나와 특색 있는 벽화가 있는 마을을 찾았다. 그 마을은 울진 출신의 만화가 이현세의 작품을 재현한 벽화가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수백 미터의 담벼락을 따라서 그려진 이현세의 대표 작품 공포의 외인 구단은 원작을 그대로 재현할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벽화는 이현세의 부탁을 받은 그의 처남이 지속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지만, 남다른 자부심으로 이현세의 만화를 벽화로 재현하고 있었다. 울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벽화마을을 떠나 넓은 마당이 있는 마을로 향했다. 그 마당은 과거 지역의 큰 장터가 있던 곳이었다. 그 이곳은 지역을 대표하는 큰 장이 서는 곳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인구가 급감하는 현실 속에서 여느 시골의 장터처럼 그 규모가 축소되고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이 장터는 지역을 대표하는 장 이제 그 공간은 마을 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의 공간이 됐다. 하지만 과거 장터에서 장사를 하던 이들이 함께 마을을 이루며 그때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몇몇  마을 주민들을 과거 장사를 하던 시절 팔았던 물품들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빛바랜 물품들은 한때 번성했던 이곳을 추억하고 하고 있었다. 비록 과거의 일이 됐지만, 마을 주민들에게 장터의 기억은 그들이 삶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남아 있었다. 

다시 여정은 최근 개장한 국내 최장 거리의 해양 산책로인 울진의 스카이워크를 따라 한적한 어촌 마을로 향했다. 이 마을에서 집을 가꾸기 위해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는 노년의 형제가 보였다. 이들은 부모님의 집을 이어받아 함께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은 집을 떠나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의 뿌리가 되는 집을 함께 지켜가기 위해 3형제는 그 집을 공동 소유하고 수시로 내려와 집을 수리하고 있었다.

그 집에는 가족들의 과거 기록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 형제들의 성적표와 생활기록부, 가족들의 사진 등 가족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기록물들이 집 벽 한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집은 가족들의 역사박물관이었다. 가족의 역사를 함께 지켜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근 장남인 첫째 형이 세상을 떠나는 아픔이 있었지만, 남은 두 형제는 큰 형의 몫까지 더해 더 정성스럽게 그들의 집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들의 노력이 대를 이어 계속되기를 기원했다. 

여정의 끝에서 울진의 작은 포구를 찾았다. 그 포구에서 어선에서 일하는 선장을 만났다. 아직 30대의 젊은 선장인 그는 한때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질풍노도와 같은 청년기를 보내다 귀향을 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잘 풀리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끈질긴 권유로 함께 바다 일을 시작했다. 아버지와 일하면서 다투기도 하고 갈등도 있었지만, 이제는 바다가 익숙해졌다.

진짜 선장이 된 그를 이끌던 아버지는 지금 병환으로 그와 함께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간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다행히 아들 중 한 명이 간을 기증하기로 했지만, 장기간이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 젊은 선장은 당분간 홀로 바다와 싸워야 한다. 그 역시 작업 때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었다. 아울러 아버지의 삶과 함께 배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커졌다고 했다. 과거 아버지는 방황하던 아들을 기다렸지만, 지금은 아버지의 아들이 병마와 싸우고 있는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부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바다에서 일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울진은 때 묻지 않은 바다와 숲이 함께 하는 곳이었다. 그런 자연과 접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힐링 되는 느낌이었다. 또한, 그곳에서 만난 이들 역시 그 자연과 닮아 있었다.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은 여정은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채워줬다. 그 속에서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행복의 척도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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