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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시즌이 끝을 향해가는 시점에 한 베테랑 선수가 은퇴 소식이 전해졌다. 롯데 외야수 민병헌이 전격 은퇴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민병헌은 소속 구단을 통해 2006년부터 시작된 그의 프로야구 선수 이력의 종료를 조용히 알렸다. 민병헌은 통산 1군에서 1,438경기 출전에 99개의 홈런이 포함된 1,266개의 안타를 때려냈다. 578타점에 187개의 도루, 0.426의 장타율과 0.362의 출루율을 기록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상황에 맞는 배팅과 득점권에서 결정력, 뛰어난 작전 수행 능력을 겸비한 타자였다. 재치 있는 주자 플레이로 팀 공격에 새로운 옵션이 되는 선수였다. 외야수로 최고의 수비 능력을 보여준 선수였다.

이런 다재다능함은 수차례 그를 국가대표로 선발돼 활약하는 요인이 됐다. 2006 시즌 두산에서 신인 드래프트 2차 2라운드에 지명돼 프로에 데뷔한 민병헌은 입단 초기 두산의 두꺼운 선수층 속에서 경쟁에 밀려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경찰청 야구단에서 병역 의무를 이행하고 복귀한 이후 크게 발전된 기량을 보이며 두산의 주전 중견수로 올라섰다. 그가 외야의 주축 선수로 자리한 시기는 두산의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올라선 시점과 일치한다.

민병헌은 두산에서 수차례 우승을 경험했고 다수의 포스트시즌 경기 등 큰 경기 경험을 쌓았다. 공수를 겸비하고 우승의 커리어의 다수 가지고 있는 외야수가 2017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자 여러 구단에서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두산의 프랜차이즈 선수인 그의 타팀 이적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반전이 일어났다. 그와 큰 접점이 없어 보였던 롯데가 그와 FA 계약을 체결했다. 민병헌은 4년간 80억 원의 대형 계약으로 팀을 옮겼다. 이를 두고 여러 말들이 있었다. 

당시 롯데는 프랜차이즈 포수 강민호와의 FA 계약에 실패하며 그의 삼성행을 바라봐야 했다. 삼성은 롯데를 능가하는 배팅을 하며 그를 영입했다. 롯데 역시 삼성과 동일한 4년간 80억 원을 강민호에 제시했지만, 강민호의 선택은 삼성이었다. 추후 알려진 사실이지만, 삼성은 공식적으로 발표된 계약 금액보다 훨씬 높은 금액으로 강민호를 영입했다. 롯데는 강민호와 외야의 주축 선수 손아섭과의 FA 계약을 모두 성사시켜야 했지만, 손아섭과 계약은 성공했지만, 강민호의 이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팬들의 비난 여론도 강하게 일어났다. 롯데는 FA 시장에 남은 타 팀 선수들을 주목했다. 롯데는 민병헌에 손을 내밀었고 민병헌 역시 시장에서 그의 가치를 가장 높게 인정한 롯데행을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민병헌



그렇게 롯데에 입단했지만, 롯데의 외야진은 프랜차이즈 스타 손아섭과 전준우가 확고히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다수의 선수들이 외야 한자리를 놓고 경쟁 구도를 형성 중이었다. 그중 김문호가 오랜 기다림 끝에 잠재력을 발휘하며 주전 자리를 굳혀가는 상황이었다. 마침 김문호는 민병헌과 같이 2006 시즌 롯데의 지명을 받고 프로에 데뷔한 입단 동기였다.

이후 민병헌은 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가 됐지만, 김문호는 기량 발전이 더뎠다. 운명의 장난은 이들을 롯데에서 다시 만나게 했다. 4년간 80억 원에 영입한 FA 선수 민병헌은 당연히 주전이었다. 김문호는 백업으로 밀렸고 줄어든 출전 기회는 폭발할 듯했던 잠재력을 다시 봉인시키고 말았다. 김문호는 2019 시즌 후 롯데에서 방출되는 아픔을 겪었고 2020 시즌 한화와 계약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반전을 이루지 못하고 쓸쓸히 은퇴하고 말았다. 프로의 냉혹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두 선수의 대조적 모습이었다. 

민병헌의 영입은 중복 투자의 느낌이 강했다. 재능 있는 외야수가 있는 상황에서 롯데는 당장 포수 보강이 시급했다. 트레이드 등 강민호의 자리를 대신할 선수가 절실했지만, 움직임은 없었다. 롯데는 강민호와의 계약금으로 책정된 금액을 민병헌에 투자했다. 롯데는 민병헌 영입으로 외야의 뎁스를 한층 강화하고 그의 한 차원 높은 수비 능력으로 부족한 외야 수비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 또한, 3할 이상이 가능한 그의 타격 능력과 잠실 홈구장에서 가뿐히 두자릿 수 홈런을 때려냈던 그가 타자 친화 구장인 롯데 홈은 사직에서 능히 20홈런 이상을 때려낼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롯데는 민병헌 두산의 주축 선수로 축적한 우승 DNA와 리더십은 롯데 선수들에게 긍정의 에너지가 될 수 있다는 경기 외적 상승효과도 기대했다. 

나름 이유가 있는 롯데의 민병헌 영입이었지만, 그 효과는 기대를 충족하기에 부족했다. 민병헌은 2018 시즌부터 롯데에서 4시즌 동안 한 번도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지 못했다. 부상도 있었고 몸 맞는 공으로 인한 불운도 있었다. 수비 능력은 변함이 없었지만, 타격에서 민병헌은 높은 생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8 시즌 17홈런 66타점으로 나름 역할을 했지만, 그의 연봉 등을 고려하면 본전 생각이 나게 하는 결과였다. 

민병헌은 이후 타격폼을 수정하며 장타력을 증진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등 나름의 방법으로 공격력을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을 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장타와 타점 생산력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팀 타선에서 민병헌 효과는 크지 않았다. 수비는 리그 최고 중견수 다운 면모를 유지했지만, 롯데가 그를 영입한 이유는 다재다능함이 있는 타격이었다.

이렇게 성적에서 아쉬움이 있었지만, 민병헌은 특유의 리더십으로 팀의 리더로서 또 다른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높였다. 이대호, 손아섭, 전준우 등 다수의 베테랑이 있는 롯데였지만, 민병헌에게는 이들에게 없는 우승 경험과 강팀 두산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가 있었다. 그의 말과 행동은 롯데 젊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될만했다. 이에 민병헌은 2019 시즌 도중 주장 자리에 큰 부담을 가지고 있는 손아섭을 대신해 주장 역할을 했고 2020 시즌 팀 주장으로 시즌을 함께하며 팀을 잘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록, 롯데의 프랜차이즈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 이상의 비중을 가진 선수가 민병헌이었다. 

롯데의 민병헌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시점인 2020 시즌 도중 발견된 뇌동맥류가 그의 선수 커리어에 큰 악재가 됐다. 언제든 뇌출혈로 이어질 수 있는 무서운 병인 뇌동맥류를 안고 민병헌은 선수 생활을 해왔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았지만, 민병헌은 시즌을 완주하는 투혼을 보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병의 치료가 시급했다. 민병헌은 수술 후 긴 재할을 거쳐야 했다. 병이 병인만큼 그의 선수 복귀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민병헌은 이런 우려에도 복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고 선수로 뛰기 위한 몸을 빠르게 만들었다. 5월부터 퓨처스 리그에서 경기네 나서기 시작한 민병헌은 뜨거운 타격감을 과시했고 여전한 경쟁력을 보였다. 5월 26일 민병헌은 드디어 롯데 1군 선수로 돌아왔다. 시즌 초반 투. 타의 극심한 부진 속에 최하위로 쳐진 롯데로서는 민병헌의 복귀가 긍정의 분위기를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가 1군 엔트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민병헌은 여전히 수비 능력과 날카로운 타격 능력을 보였지만, 건강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떨치지 못했다. 운동 능력이나 반응 속도도 예전과 달랐다. 민병헌 1군 등록과 말소를 반복했고 8월 29일 두산전에서 2타수 1안타를 기록한 이후 1군에서 말소됐다. 롯데 팬들은 민병헌이 후반기 팀에 다시 복귀해 포스트시즌 경쟁을 하는 팀에 보탬이 되길 기대했지만, 8월 29일 두산전은 그의 선수 커리어에서 마지막 경기가 됐다.

 

민병헌



민병헌은 의지만으로 그에 건강 문제를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했다. 치료와 선수 생활을 병행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민병헌은 자신으로 인해 또 다른 선수의 기회가 사라지는 게 오히려 팀에 해가 된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FA 마지막 해에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높여보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민병헌의 선택은 건강이었다.

민병헌은 롯데와의 FA 4년 계약이 종료되는 올 시즌 스스로 선수 커리어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런 민병헌의 선택에 여전히 많은 팬들과 야구 관계자는 아쉬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냉정히 실패한 FA 선수인 점을 고려하면 다소 이례적인 반응이다. 민병헌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선수였다. 그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성실했고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였다.  그런 그가 아직 충분히 더 뛸 수 있는 나이에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하는 현실은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물론, 비즈니스적 측면에서 롯데의 민병헌 FA 계약은 실패라 할 수 있다. 민병헌은 4년 계약을 온전히 다 채우지 못했다. 성적 면에서 기대치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남겼다. 데이터가 선수 평가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최근 프로야구 흐름에서 민병헌에 대한 롯데의 투자는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민병헌의 영입으로 인해 롯데의 세대교체가 지체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민병헌의 건강 문제는 불가항력의 문제였고 그가 원인을 제공한 일이 아니었다. 민병헌의 불운이 롯데에서 나타났다 할 수 있다. 민병헌은 자신의 불운에도 최선을 다했고 팀에 보탬이 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또한, 민병헌은 모범적이 선수 생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 투자 대비 효율성에 근거한 금전적 평가만으로 민병헌을 평가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 민병헌은 당장 건강을 돌보는 일이 우선이지만, 향후 지도자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다. 그의 힘들었던 선수 생활의 막바지 경험도 지도자 생활에 큰 자양분이 될 수 있다. 민병헌은 고질적인 롯데의 문제인 수비 강화에 필요한 코칭 능력이 있다. 선수 민병헌은 롯데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롯데가 그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롯데의 민병헌으로 또 다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건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민병헌의 의사가 전제돼야 하지만, 이는 민병헌에 대한 롯데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사진 : 롯데 자이언츠,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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