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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군은 전라북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전주를 둘러싸고 있는 입지에 완주군 중 일부가 분리되어 존재하는 독특한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다. 완주군의 북쪽 지역은 충청남도와 접하고 동쪽으로 높은 산지의 진안군, 서쪽으로는 넓은 평야의 김제시와 접하며 다양한 생활권을 혼재하는 곳이기도 하다. 입지는 농촌을 연상하게 하는 완주군이지만, 지역 내 산업단지에 대기업이 다수 입주하여 있고 이를 기반으로 전북의 군 지역에서는 가장 재정 자립도가 높다. 이에 완주군은 도농통합 형식의 지자체 통합보다는 자족도시로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43회에서는 완주군을 찾아 이모저모를 살폈다. 가을 느낌 가득한 풍경과 그 가을과 닮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완주군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경각산이었다. 이른 아침의 멋진 운무는 신비롭게 다가왔고 운무가 거친 후 맑은 하늘 아래 완주군은 누렇게 익어가는 논과 아직 남은 초록의 빛, 도시의 풍경이 함께 어울리며 가을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 경각산의 정상에 자리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은 멋진 완주군의 전경을 내려보며 스릴을 만끽하고자 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을 하늘과 함께 하는 패러글라이딩 비행이 멋졌다.

산을 내려와 한 농촌마을을 찾았다. 황금 들녘을 지나 예쁜 그림이 집 벽에 곳곳에 그려긴 골목길을 걸었다. 마을의 한 집에서 생강을 다듬고 있는 주민들이 보였다. 이 마을에서 재배하는 토종 생강이라 했다. 마트나 시장에서 생각의 뿌리만을 접하는데 수확한 생강은 긴 줄기가 있어 총각김치를 담그는 길쭉한 총각 무를 연상하게 했다. 이 마을에서는 마을 대대로 토종생강을 재배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의 생강 재배 농민들은 과거 그들의 부모님으로 부터 재배법을 배웠다. 그때는 유년기 추억 역시 생강밭에서 쌓았다. 그때의 개구쟁이들은 이제 마을의 전통 생강을 지키고 이어가는 노년의 나이가 됐다. 그들의 생강 밭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 이전에 어릴 적 추억이 함께 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농촌 읍내 마을의 한 시장을 찾았다. 장날이 아닌 시장은 한적했다. 하지만 시장 한 편의 국숫집은 많은 이들이 식사를 위해 찾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국숫집은 3대를 이어가며 60년 넘게 시장 골목을 지키고 있었다. 1대 사장님의 맛을 지키고 있었다. 메뉴는 국수 하나로 단출했다. 대신 그 양은 소, 중, 대, 특대로 구분하여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소라고 해고 그 양이 적은 건 아니었다. 매우 푸짐했다.

1대 사장님이 지켜온 재료와 양을 아끼지 말라는 철칙이 지금도 지켜지고 있었다. 1대 사장님은 과거 8남매와 함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국숫집을 시작했다. 과거 식당을 하는 어머니들이 바람인 최소한 자식들이 배를 골지 않게 할 수 있다는 바람이 담긴 일이기도 했다. 이는 국숫집은 찾는 손님들에게도 푸짐한 인심을 나눠주는 것으로 이어졌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맛과 함께 이 국숫집의 인삼까지 덤으로 마음 가득 담아 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재잘거림이 들리는 초등학교 앞을 지나다. 오래된 문방구 간판이 보였다. 흔히 알고 있는 학교 앞 문방구를 기대하고 들어선 건물의 풍경은 예상과 너무 달랐다. 과거 문방구와 슈퍼였던 이곳은 이제 누구나 방문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림방으로 변모했다. 이곳은 40년 넘은 문방구를 건물을 개조해 재 탄생한 문화공간이었다. 애초 이 건물을 개조할 때 마을 주민들이 아쉬움이 컸다고 했다. 그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가 사라진다는 건 큰 상실감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에 이 그림방의 운영자는 과거 건물의 외형을 유지하고 간판 또한 과거의 모습 그대로 두었다. 문방구는 그 역사를 간직한 채 더 많은 이들이 찾는 곳으로 거듭났다. 특히, 마을 어른들도 편하게 방문해 도안을 따라 작품 그림을 그리고 예술의 멋을 느낄 수 있는 놀이공간이기도 했다. 도시재생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도시재생의 좋은 예는 또 있었다. 완주군에서 만난 삼례문화예술촌은 과거 일제강점기 양곡 저장창고가 있었던 부지를 활용해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과거 건물의 외형을 유지해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문화,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미래 지향적인 활동을 하도록 했다. 과거와 현재가 결합되어 미래의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곳이었다. 마침 그곳에서 어린이 뮤지컬 연습이 한창인 어린이 배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린이 배우들은 이곳에서 새로운 작품을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은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으로만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위드 코로나가 시작됐고 일상이 회복되는 만큼 이들의 공연이 문화예술촌을 방문한 관객들 앞에서 이루어지는 날을 기대해 본다. 

잠시 억새밭을 사이에 두고 걸을 수 있는 만경강변의 산책로를 걸었다. 깊어가는 가을의 느낌이 가득한 풍경이 이어졌다. 그 길에 끝에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철교가 있었다. 만경강 철교였다. 만경강 철교는 일제 강점기 일제가 김제평야 등 이 지역의 곡창지대에서 수확한 쌀을 수탈하여 일본으로 가져가는 기차를 위해 건설했다.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이 철교는 바로 옆 신설 철교가 생기면서 기능을 다했지만, 역사의 현장으로 남았다. 그 철교를 따라 걸으며 잠시 아픈 우리 역사를 살필 수 있었다. 

다시 인적이 드문 농촌마을을 찾았다. 길을 걷다 농촌마을에서 보기 드문 빵집이 보였다. 호기심에 들어간 빵집에는 주인이 없었다. 대신 안내문이 눈에 보였다. 그 빵집은 누구나 들어와 빵을 사고 스스로 돈을 돈 통에 내는 셀프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빵집의 사장님은 빵집뿐만 아니라 농사일을 병행하고 있고 빵집을 계속 지키기 어려워 이 방식을 택했다고 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로 시작한 무인 빵집은 마을의 명물로 자리했다. 지금도 여러 사람들이 방문해 스스로 계산하고 빵을 사 가고 있었다.

이 빵집은 사장님은 과거 도시에서 케이크를 만드는 일을 하며 경제적으로 편안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자녀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도시생활에 회의감을 느꼈고 과감하게 귀향을 결정했다. 그렇게 그는 이곳에서 빵집을 시작했다. 수입은 줄었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다른 일을 함께해야 했지만, 자녀의 건강도 좋아졌고 자신은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느리지만 알차게 그는 하루하루의 삶은 채워가는 중이었다. 무인 빵집을 통해 얻은 사람에 대한 산뢰와 정은 그가 농촌에서 정착하며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힘으로 보였다. 

또 다른 농촌마을로 향했다. 그 마을 길에서 오래된 순두부 식당이 보였다. 50년 넘은 이 식당은 어머니에서 딸로 가업을 이어가며 역사를 지켜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사용했던 아궁이나 가마솥으로 끓인 순두부를 손으로 짜내는 손두부 방식을 지켜가고 있었다. 또한, 인근 밭에서 직접 콩을 재배해 두부의 맛을 유지하는 데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과거 딸은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두부를 만들고 이를 들고나가 파는 어머니의 고단한 삶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한 편으로 창피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고 자신의 그 기술을 이어받아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이런 모자의 애틋한 마음이 함께 하는 순두부 식당은 마음까지 훈훈하게 해주었다. 

 

 


여정의 막바지 한적한 농촌 마을 길을 걸었다. 마을 곳곳에 있는 감나무는 잘 익은 주황색 감이 푸른 하늘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길에 감을 수확해 집으로 가지고 가는 주민을 만났다. 그를 따라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 집에서는 감을 선별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마을의 감은 씨가 없는 게 특징이었다. 유독 이 마을에만 이런 감나무가 많다고 했다. 그 감나무의 상당수는 수백 년 넘은 수령을 자랑하고 있었다.

올해 101세가 되는 할머니가 자녀들과 함께 감 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할머니는 이제 60대 나이가 된 막내 아들 부부와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이 모자에게 감나무는 서로 살가운 대화를 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였다. 할머니는 그동안 자신과 함께 자라고 늙은 마을의 감나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아들은 어머니와 함께 감나무를 가꾸고 감을 수확하며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올가을에도 모자는 이번에 수확하는 감 예기로 그들의 시간을 채워가고 있었다. 

감은 시간을 두고 잘 익어야 맛을 낼 수 있고 수확의 시기를 놓쳐도 홍시가 되어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수확을 해서 말리면 곶감으로 또 다른 맛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그 모양이 변해도 더 깊은 맛을 내는 감은 100살이 넘은 나이에도 활력이 넘치고 즐겁게 일상을 살아가는 할머니와 너무 닮아 있었다. 몸은 늙었지만, 누군가의 삶의 버팀목이 되고 삶의 지혜를 알려주는 어른, 연륜에서 오는 여유가 있는 할머니는 그 존재만으로도 아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었다. 

이렇게 화려하지 않지만, 조용히 완주군의 이웃들의 그들의 일상을 가치있게 채워가고 있었다. 특별해 보이지 않지만, 그 일상에는 저마다의 삶의 의미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우리 일상의 가치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완주군에서의 여정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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