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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왕조의 수호를 이끌었던 정몽주가 격살되면서 새로운 왕조 건국의 흐름을 막을 장애물이 모두 사라졌다. 실제 역사에서도 정몽주가 세상을 떠나고 3개월 후 조선이 건국됐다. 이제 이성계가 용상에 오르는 건 시간문제였다. 다시 정국의 주도권을 손에 넣은 급진파 사대부들을 빠르게 움직였다. 정몽주와 함께 이성계 세력과 맞섰던 공양왕은 기울어진 분위기에 전의를 상실했다. 구심점을 잃은 온건파 사대부 세력도 더는 힘을 쓰지 못했다.

정도전을 중심으로 한 급진파 사대부는 고려 왕실을 압박해 선위를 이끌어냈다. 사실상의 왕위 찬탈이었지만, 선위의 형식을 통해 새 왕조 건국의 정당성을 조금이나마 확보했다.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는 걸 주저했지만, 위화도 회군 이후 역사의 흐름을 그는 거스를 수 없었다.

이미 고려왕조 수호를 원하는 구세력이 이성계 세력에 강하게 저항하고 있고 틈이 보이면 그들을 공격할 수 있음을 그는 분명히 인지했다. 그가 주저한다면 그를 따르는 많은 정치 세력들과 특히, 가문이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이는 권력욕과는 다른 문제였다. 결국, 이성계는 옥쇄를 받고 새로운 왕조를 열었다. 조선의 건국이었다. 

조선의 건국으로 이성계 가문은 왕족이 됐고 큰 변화를 맞이했다. 가문이 그토록 염원하던 일이었지만, 이는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었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세상을 떠난 신의왕후 한 씨로부터 5명의 장성한 아들이 있었다. 이방원도 이에 속했다. 이들은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큰 역할을 했다.

 

 


이에 더해 이성계가 중앙 정계에서 세력을 확대하는 데 있어 중요한 버팀목이 된 신덕왕후 강씨 역시 그 존재감이 컸다. 신덕왕후 강씨의 집안은 독자적으로 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이성계에게 큰 힘이 됐다. 조선 건국에 있어 신덕왕후 강씨의 지분도 만만치 않았다. 

이는 향후 내부 권력투쟁의 불씨가 됐다. 신덕왕후 강씨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이성계와 가장 지근거리에 있었고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한층 수월했다. 신덕왕후는 그와 이성계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이성계의 관계를 돈독하게 했다. 이는 차기 권력을 위한 나름의 정지작업이었다.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다섯 왕자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들을 경계하는 마음도 함께 생겼다. 아들 중 가장 영특한 이방원은 중요한 고비마다 큰 역할을 했지만, 그 영특함이 이성계에게는 부담이 됐다. 무엇보다 이방원은 이성계의 뜻을 거스르고 정몽주의 격살을 주도했다.

이후 나머지 아들들은 정몽주 세력의 숙청을 이끌었다. 이들의 과감한 결정과 행동은 결과적으로 조선 건국을 빠르게 했다. 하지만 이성계는 자신의 명을 거부한 아들들에게 크게 분노했다. 이를 자신의 귄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겼다. 또한, 향후 아들들 간 권력 투쟁과 그에 따른 문제를 걱정했다. 아들들이 독자적인 정치 세력이 된다면 당장 자신의 권력에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 이성계와 아들들의 관계는 어느새 정적으로 변해있었다. 특히, 이방원은 이성계의 가장 큰 경계를 받았다. 이는 신덕왕후 강씨도 마찬가지였다. 

이성계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고 통치 시스템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다섯 아들들을 철저히 배제했다. 그들은 정몽주 격살 이후 이성계를 만날 수 없었고 즉위식에서 참석하지 못했다. 아들들은 이성계를 왕 이전에 아버지로서 가문의 영광을 함께 하고 싶었지만, 이성계는 생각이 달랐다.

이런 이성계의 냉정함은 아들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방원 역시 강한 상실감에 빠졌다. 이미 정몽주 격살을 주도한 이후 이방원은 이성계의 냉대속에 실의 빠져있었다. 새 왕조에 열리고 그는 용서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성계는 그를 외면했다. 이방원은 자신이 큰 위험에 빠지는 상황에도 가문을 구하고 새 왕조의 중심이 되도록 온 힘을 다했다. 이방원은 그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큰 아쉬움을 가졌다. 이렇게 부자간에는 깊은 골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성계와 이방원의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하는 일이 또 일어났다.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후 후계 구도를 명확히 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세자 책봉을 서둘렀다. 유교가 중요한 국가 운영 시스템이 된 조선에서 장자 상속이 원칙이었다. 즉, 첫째 아들인 이방우가 우선순위였다. 하지만 이방우는 조선 건국에 대한 부정적이었고 이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개경을 떠나 있었다. 그가 세자로 책봉되기 어려웠다. 이는 나머지 왕자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 신덕왕후 강씨는 그 틈을 파고들었고 이성계의 마음을 움직였다.

신덕왕후 강씨는 이성계와 자신 사이의 두 아들 중 막내인 이방석의 세자 책봉을 강하게 주장했고 이성계도 이에 동의했다. 신덕왕후 강씨는 첫째 아들이 고려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고 있고 새 왕조의 세자로 부적절하다는 파단을 했고 매우 정치적이고 냉철한 판단이었다.

반대로 막내 방석은 이성계에게 큰 사랑을 받는 아들이었다. 이미 첫 번째 부인의 다섯 아들을 경계하기 시작한 이성계로서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도 방석의 세자 책봉이 유리했다. 신덕왕후 강씨의 영향력과 이성계의 정치적 판단이 더해져 방석의 세자 책봉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신덕왕후 강씨는 권력의 실세라 할 수 있는 정도전과 정치적 거래를 통해 그의 지지도 이끌어냈다. 

이런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이방원을 권력에서 점점 멀어졌다. 이방원은 이에 분노했지만, 상황을 바꿀 힘이 없었다. 이방원은 조선 건국 과정에서 함께 했던 신덕왕후 강씨와 정도전마저 자신을 배신한데 크게 분노했다.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와 4명의 형제들은 새로운 왕조에서 소외되고 말았다. 이방원 역시 정치 참여의 기회가 차단됐다. 그는 오랜 세월 관료로서 일했고 새로운 왕조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지만, 힘없는 왕자로 머물기를 강요받았다. 

이방원은 강한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그는 아버지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에게 세자 책봉의 부당함과 형제들에 대한 냉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돌아온 건 냉정한 답변뿐이었다. 이방원은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도 공신 목록에도 오르지 못했고 권력에서 멀어졌다.

이런 이방원에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들이 세상을 떠나는 불행까지 겹쳤다. 갓난 아기를 산에 묻고 눈물짓는 이방원 부부와 이성계와 조정 대신들의 환영 속에 왕비와 세자로 궁궐에 입성하는 신덕왕후 강씨와 그의 아들 방석의 모습은 극적으로 대비되며 달라진 처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이방원은 가정의 큰 불운에 그가 믿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인 신덕왕후 강씨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졌다. 이방원에게는 상황을 바꿀 힘이 없었고 세력도 없었다. 이방원은 정치의 냉정한 속성을 그대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자칫 자신과 가족의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방원으로서는 참고 인내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의 아내 훗날 원경왕후가 되는 부인 민씨는 마음속 울분과 슬픔을 억누르고 이방원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인내토록 하는 냉정함을 보였다. 

후계 구도를 정리하긴 했지만, 이방원을 포함한 전처소생 아들들에 대한 강경책은 이성계와 신덕왕후 강씨에게도 부담이었다. 당장은 그들을 제어할 수 있지만, 조정 대신들 중 상당수는 이방원에 호감을 보이고 있었다. 힘으로만 아들들은 제압하려 한다면 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었다.

이성계와 신덕왕후는 유화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미 자신이 왕비로 책봉되고 아들이 세자가 된 상황에서 정국의 주도권을 가진 신덕왕후 강씨는 이성계에게 전처소생 아들들을 용서하기를 청했다. 신덕왕후 강씨는 이성계와 정도전을 포함한 공신 세력을 힘을 업고 있었고 후계 구도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현재는 물론이고 차기 권력까지 장악한 신덕왕후 강씨에게 맞설 세력은 없었다. 이런 자신감은 포용책으로 이어졌다. 이성계 역시 아들들을 외면하는 비정한 아버지로만 남기는 어려웠다.

 

 


이런 움직임은 이방원에게는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방원은 무한의 신뢰와 희생이 보답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방원은 권력의 속성을 깨달았다. 이방원으로서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힘이 필요하고 치열한 권력 투쟁을 이겨내야 함을 느끼고 있다. 아버지와 가문을 위해 헌신하던 청년 이방원은 이제 정치인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미 이방원의 장인 민제는 변화하는 권력 지형을 감지하고 우호 세력을 규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정은 조선 건국 과정에서 다수의 관리들이 새로운 왕조에 대한 협조를 거부면서 관직 곳곳에 공석이 발생한 상황이었다.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 그 자리를 다시 채우고 국정을 정상화할 필요가 있었다. 민제는 떠난 관리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일에 나설 것을 자청했다. 민제는 훗날 이방원의 책사로 유명한 하륜을 주목했다. 하륜은 지금의 정치 상황에 대해 예측하고 있었고 이성계 가문의 대립과 갈등 또한 예상하고 있었다. 그의 선견지명과 전략가로서의 능력은 이방원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조만간 이방원과 하륜의 만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새로운 왕조 건국을 위한 동지였던 이들이 서서히 이해관계에 따라 대립하기 시작했다. 어제의 동지는 정적이 되고 있다. 이런 정치의 변화무쌍함은 가족 간의 정도 녹아내리게 했다. 이는 앞으로 이성계와 이방원의 관계를 달라지게 할 수 있다.

이방원은 이제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일에 큰 죄책감을 느끼는 아들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과 옳다고 여기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이를 위해 정적으로 돌아선 이들과의 대결을 이겨내야 한다. 이미 차기 권력 구도에서 멀어진 이방원으로서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유혈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이를 위해 이방원은 더 뜨거운 열정이 아닌 더 차갑고 냉정한 인물로 변모할 수밖에 없다. 이는 여러 인물들의 희생과 그들이 흘린 피 위에 세워진 조선 왕조지만,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함을 의미한다. 이제 정치인 이방원의 모습이 더 투영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 드라마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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