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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은 다수의 군부대가 자리하고 있는 북한과의 접경지다. 팽팽한 군사적 긴장감으로 대표되는 곳이면서도 화천군은 청정 자연이 잘 보존된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화천은 물의 도시다. 일제 강점기 건설된 화천댐은 우리나라 최북단의 거대한 인공 호수 파로호가 만들었다.

이 파로호는 북한의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의 물을 품고 있다. 화천군은 겨울 축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화천의 겨울 산천어 축제는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고 겨울을 대표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화천군의 이모저모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이웃들의 삶과 이야기를 찾아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른 아침 북한강 파로호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겨울 풍경과 함께 했다. 그 길을 따라가다 우리나라 최북단의 댐인 평화의 댐을 만났다. 1989년 완공된 평화의 댐은 남북 분단과 대결의 상징이다. 이 댐은 민간인 통제선과 가장 가까운 곳에 건설됐다. 애초 건설 목적은 북한이 건설하는 금강산댐에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 1980년대 정부는 북한의 금강산댐을 이용한 수공의 위험이 크다는 뉴스를 연일 보도하며 안보 이슈를 부각했다. 뉴스와 언론에서 금강산댐 붕괴 시 서울 대부분이 물에 잠긴다는 보도는 전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왔다. 

이 시기 학교와 관공서 회사 등 전국 곳곳에서 금강산댐 건설을 규탄하는 집회와 규탄대회가 있었다. 금강산댐에대응하는 댐 건설을 위해 성금 모금 운동이 일어났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이에 참여했다. 이렇게 모인 돈은 평화의댐 건설로 이어졌다. 국민적 여망의 담긴 댐이지만, 북한의 수공 위협은 크게 과장되었음이 나중에 밝혀졌고 이는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국민적 관심을 돌리기 위한 방편이었다. 국민들의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정권 유지와 강화를 위해 활용했다는 점은 씁쓸한 현대사의 한 장면이었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지만, 평화의 댐은 일부 홍수조절 기능을 담당하고 있고 안보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이 평화의 댐 근처에 의미 있는 장소가 있었다. 거대한 평화의 종이 있었다. 이 종은 6.25 한국전쟁 당시 사용된 총알의 탄피와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탄피들이 녹아들어 가 있다. 대표적인 전쟁의 상징물들을 품고 있는 평화의 종은 대립과 반목 대신 협력과 화합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평화의 종소리는 여느 종과 다른 느낌이었다. 앞으로 평화의 댐이 막혀버린 북한강의 물길을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다음 여정을 이어갔다. 

산 아래 정겨운 풍경이 펼쳐진 농촌마을 길을 걷다. 장작불을 때고 있는 한 작업장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함께 하는 전통엿 작업장이었다. 이 마을에서 생산하는 쌀로 만드는 전통엿은 강원도 지역의 대표적 먹거리인 개떡과 닮은 둥그렇고 넓적한 모양이었다.

이 작업장에는 어려서부터 마을에서 나고 자란 할머니들이 우애를 자랑하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들은 아궁이에 불을 때고 가마솥에서 장시간 엿을 고아 내고 손으로 모양을 내는 전통 방식으로 엿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할머니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무려할 수 있는 시간을 달래고 있었다. 힘든 작업이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이웃이 있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 할머니들을 즐겁게 했다. 그들의 즐거움과 행복한 마음이 담긴 전통엿은 그 어느 엿보다 달콤해 보였다.

화천의 명소로 이동했다. 화천천 변을 걷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와 만났다. 이곳은 겨울 산천어 축제가 열리는 장소였다. 산천어 축제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겨우내 꽁꽁 언 화천천에 구멍을 뚫고 얼음낚시를 즐기는 장면이 장관을 이룬다. 여기에 다양한 부대 행사로 방문자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화천의 새로운 명물인 토마토를 이용한 토마토 축제와 함께 산천어 축제는 화천을 대표하는 축제다. 화천 곳곳에는 산천어 축제에서 착안한 조형물과 상징물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산천어 축제는 화천을 상징한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산천어 축제는 2년간 열리지 못하고 있다. 대신 화천의 중심부에는 그 아쉬움을 덜어낼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모양의 산천어 등으로 채워진 산천어 거리는 밤이면 멋진 야경을 보여준다. 지역 주민들이 제작한 그 등에는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있었다. 다시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고 산천어 축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날이 돌아오길 기대해 본다. 

마침 장이 열린 화천의 장터를 찾았다. 장터의 이런저런 모습을 살피다. 시장으로 접어들었다. 이른 아침 한적한 시장 골목 한편에 만두가게가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 가게는 부모님이 운영하다 두 아들이 함께 하면서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둘째 아들이 다음에 첫째 아들이 이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첫째 아들은 과거 조정 경기 선수로 꿈을 키우다 부상 등으로 그 꿈을 접어야 했다. 아쉬움을 안고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부모님의 만두가게에서 제2의 인생을 열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만두를 빚고 소를 만드는 일에 능숙해졌다. 이런 가족의 힘으로 만두가게는 시장에서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 만두가게의 시그니처 메뉴인 김치만두는 어머니의 손맛과 정성, 아들들의 열정이 더해진 특별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읍내를 벗어나 한적한 농촌 마을로 향했다. 그 마을 길을 걷다 소나무 둘러 싸인 멋진 전원주택과 만났다. 이 주택은 도시에서 귀촌한 부부가 손수 지었다. 이 부부의 남편은 젊은 시절부터 자연을 동경하고 전국 곳곳의 산을 찾았다. 그에게 도시생활은 불편하고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아내였지만, 남편을 위해 함께 귀촌했고 화천에 터전을 잡았다. 이곳에서 부부는 한옥집을 지었고 몇 개 건물을 더 지으며 그들만의 독특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아내는 한때 귀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 고비를 넘기고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복잡한 도시보다 화천에서의 삶이 더 편안해졌다. 부부의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부부는 오늘도 일상의 여유를 즐기며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다시 나선 길, 도로 옆 카페 건물이 눈에 보였다. 간판은 식당으로 보였지만, 그 안에는 만화에서 나오는 다양한 로봇 캐릭터 모형이 가득했다. 이 모형들은 종이로 만들어졌고 작은 것에서 아주 큰 것까지 있었다. 이 모형을 만드는 일은 로봇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님 혼자만의 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는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했지만,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었던 꿈인 로봇 모형 만들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취미로 하던 이일은 그와 인생과 함께 하는 일이 됐다. 그 꿈을 더 활짝 펼치기 위해 그는 귀향을 결심했고 어머니의 식당에 터전을 마련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응원하며 식당은 로봇 카페와 닭백숙 식당이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이곳에는 아들이 만든 1,500여 종의 로봇 종이 모형을 만날 수 있다. 그 어디에도 없는 식당이자 카페였다. 꿈을 위해 큰 결심을 한 아들과 그런 아들에 결정을 존중하고 응원하는 어머니는 함께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여정의 막바지 읍내 산천어 횟집을 찾았다. 이곳은 축제의 명칭이기도 한 화천의 명물 산천어를 이용한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산천어는 송어의 한 종류로 송어가 바다로 나가지 않고 민물에 정착한 경우다. 크기는 송어에 비해 작지만, 그 모양과 맛은 송어와 비슷하다. 화천의 명물이지만, 산천어 축제가 열리지 못하면서 축제를 위해 준비한 산천어들의 처리를 놓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했다. 이에 산천어를 식용으로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 식당은 오래전부터 산천어 회와 매운탕 등의 메뉴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산천어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90살을 넘긴 어머니는 지금도 식당을 지키며 그 손맛을 며느리에게 전수하고 식당 일을 돕고 있었다. 가깝고도 먼 사인 고부간이지만, 며느리는 어머니와 조화를 이루며 가업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어느덧 그 며느리는 할머니가 됐고 어머니는 증손자들이 할머니를 찾을 만큼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 속에 이 식당의 맛은 깊어지고 있었다. 

산천어 등으로 채워진 화천 읍내의 야경과 함께 여정은 마무리됐다. 화천은 얼마 전까지 강원도 여느 접경지와 같이 외지인들이 다가가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멋진 겨울 축제가 있는 장소이고 마음의 거리가 한결 좁혀졌다. 대결의 긴장감보다는 청정자연이 함께 하는 여행지로 자리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화천이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곳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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