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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후 프로야구 최강팀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두산과 함께 했던 현역 선수 생활을 스스로 접었다. 두산의 좌완 투수 유희관이 그 주인공이다. 유희관은 올 시즌 연봉 협상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돌연 은퇴를 택했다. 협상이 더디긴 했지만, 두산은 유희관을 보류 선수 명단에 넣고 올 시즌 전력에 포함했고 유희관 역시 얼마 전까지 연봉 협상을 하는 중이었다. 이에 그의 은퇴 발표는 다소 의외였다. 

유희관은 프로야구에서 보기 힘들었던 독특함이 있는 투수였다. 유희관은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로 요약되는 투수였다. 보통 좋은 투수의 중요한 기준은 제구와 함께 강력한 구위, 볼 스피드가 우선순위다. 이는 과거도 그렇고 현재에도 투수에 대한 가치 평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는 지명 우선순위다. 그만큼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다.

유희관은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투수였다. 그의 직구 최고 구속은 130킬로를 잘 넘지 않았다. 웬만한 고교 선수보다도 느린 직구였다. 그렇다고 변칙적인 투구 동작도 아니었다. 그는 좌완 오버핸드 투수였다. 프로무대에서 통하기 힘든 구위라 할 수 있었다. 또한, 운동선수라면 근육질의 단단한 몸을 연상하지만, 그는 통통한 체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유희관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입증한 반전의 선수였다. 2009 시즌 두산에 입단한 이후 유희관은 상무에서 병역 의무를 마치고 2013 시즌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서 이력을 쌓았다. 2013 시즌 유희관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41경기 145.1 이닝을 소화했다. 10승 7패 1세이브 3홀드를 기록한 유희관은 일약 두산의 주력 투수로 자리했다. 이후 야구 인생의 황금기를 열었다. 두산을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가 됐다. 

 



유희관에게 매 시즌 10승 이상은 기본이었다. 2015 시즌에는 시즌 18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유희관은 2020 시즌까지 8시즌 연속 10승 이상을 달성하며 꾸준함을 과시했다. 느리지만,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제구와 과감한 승부, 느린 직구에 더 느린 변화구는 타자들의 타이밍을 흔들었다. 구속이 느린 투수들이 유인구 승부가 많은 게 보통이지만, 유희관의 투구는 매우 공격적이었다. 눈에 빤히 보이는 공을 타자들은 쉽게 공략하지 못했다. 유희관은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딱 맞는 투수였다. 

그의 성공을 두고 여러 분석이 나왔다. 그 분석에는 부정과 긍정이 교차했다. 그의 느린 공을 공략하지 못하는 리그 타자들의 수준에 대한 우려가 컸다. 유희관에게만 스트라이크존이 넓게 판정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넓은 잠실 홈구장과 두산의 강력한 수비력에 큰 도움을 받았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의 성과가 온전히 유희관이 능력이 아니라는 평가가 근본에 있었다.

유희관은 투구의 성공 조건에 크게 어긋나는 투수였고 사람들은 그의 성적에 대해 뭔가 이상한 면을 찾으려 애썼다. 느린 공으로도 성공할 수 있고 최고 투수 반열에 올랐다는 점에 찬사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지만, 유희관에 대한 평가는 인색한 부분이 많았다. 기존의 성공 공식과 다른 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그는 평가절하됐다. 이는 국가대표 선발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유희관은 그의 최전성기에도 국가대표 선수로 선발되지 못했다. 느린 구속이 국제 경기에서 통하지 않을 거라는 평가에 따른 결정이었다. 하지만 국제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 타자들은 아리랑 볼이라 평가한 다른 나라 투수들의 공에 고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투수의 경쟁력에서 속도만이 능사가 아님을 몸소 체험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유희관은 국내용 투수라는 인식이 강하게 생겼다. 그것도 범위가 좁아져 두산이 아니면 통하지 않을 거라는 편견에 갇히고 말았다. 그의 성과에 대한 가치는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마치 유희관이 언젠가는 한계에 다다를 것을 기대하는 듯했다. 유희관이 야구 외에 비시즌 기간 예능 프로그램에 자주 출연하고 야구 외에 다른 종족에서도 재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엔터테이너적인 면모를 과시하면서 그에 대한 편견은 더 깊어졌다. 유희관은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유희관에게는 분명 억울한 부분이다. 그가 홈구장과 강팀 두산 소속이라는 유리한 환경이 있었지만, 공을 잘 던지지 못했다면 그런 장점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도 없었다. 유희관보다 훨씬 나은 신체조건에 더 나은 구위를 가진 투수들이 잠실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두산과 LG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례는 수두룩하다. 어쩌면 열세인 조건을 이겨내고 성공한 유희관에게 찬사를 먼저 보내는 게 맞다고 할 수 있었다.

최근 프로야구는 물론이고 각 종목의 운동 선수들이 비시즌 기간 활발하게 예능이나 방송을 출연하고 다른 분야에서 또 다른 면모를 보이는 게 보편적인 상황에서 유희관의 비시즌 활동은 문제 되는 일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유희관은 8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다. 선수로서 구설수도 없었고 모범적인 선수 생활을 했다. 다만 그는 느린 공으로 성공했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그는 그에 대한 이런저런 편견을 극복한 선수였다. 

하지만 그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월의 무게를 완전히 이겨낼 수는 없었다. 유희관은 두자릿 수 승수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투구 내용은 점점 내림세를 보였다. 타자들이 그의 공에 대한 공략법을 찾으면서 피안타율이 오르고 실점이 많아졌다. 방어율도 크게 올랐다.

2020 시즌 유희관은 10승을 달성했지만, 11패를 기록했고 방어율은 5.02로 치솟았다. 두산의 선발 로테이션에서 비중도 점점 낮아졌다. 그의 풍부한 경험과 관록은 점점 빛을 잃었다. 결정적으로 2020 시즌 포스트시즌에서 유희관은 엔트리에 포함되긴 했지만, 좀처럼 마운드에 오를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한 경기 등판 기회를 잡았지만, 1회를 넘기지 못하고 마운드를 물러났다. 그에 대한 팀의 신뢰가 어느 정도인지를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는 2020 시즌 후 FA 시장에서 그대로 반영됐다. 유희관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FA 자격을 얻었지만, 시장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8시즌 연속 두 자릿수 승수 달성이라는 결과물이 있었지만, 내림세가 뚜렷한 투구 내용과 20대 후반으로 향하는 나이가 문제였다. 리그에서 귀한 좌완 선발투수라는 장점이 있었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시이는 원 소속팀은 두산도 다르지 않았다.

두산은 팀 야수진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FA 허경민, 정수빈에 대형 계약을 안겨주며 그들을 잔류시켰지만, 유희관과의 협상은 뒷전이었다. 유희관으로서는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해야 했다. 유희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타 구단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전성기를 지난 베테랑 투수는 원 소속 구단의 조건을 수용할지 말지만 남아있었다. 

유희관은 긴 고민 끝에 1년간 기본 3억원에 옵션 포함 7억원 총 10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FA 계약이라 할 수 없는 초라한 결말이었다. 그나마도 FA 미아가 안 된 게 다행이었다. 유희관은 2021 시즌 자신의 건재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며 반전을 기대했다.

하지만 팀 내에서 그의 역할은 5번째 또는 6번째 선발 투수였다. 1군 엔트리 진입도 보장할 수 없는 위치였다. 성적도 더 깊은 내리막이었다. 그 사이 그는 1군과 2군을 오가는 처지가 됐다. 2021 시즌 유희관은 15경기 4승 7패 방어율 7.71로 부진했다. 유희관의 4승을 추가하며 프로 통산 101승으로 100승 투수 대열에 올랐지만, 웃을 수 없었다. 그는 퇴물 취급을 받았다. 2022 시즌 거취도 불투명했다.

그는 FA 1년 계약을 했지만, FA 선수가 계약 시 구단이 4년간의 보류권을 가지는 KBO만의 이상한 제도 탓으로 그의 다음 시즌 거취는 구단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연봉 협상도 다시 해야 했다. 무엇보다 그를 보류 선수로 남겨둘지가 중요했다. 두산은 유희관과 함께 과거 에이스였지만, 기량을 되찾지 못하는 같은 자완 베테랑  장원준을 보류 선수 명단에 넣었다.

이들의 재기 가능성을 기대한 면도 있지만, 일종의 보험 성격이 강했다. 시즌 중에도 선수 방출이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유희관이 시즌을 완주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했다. 차라리 방출되는 게 유희관의 선택지를 넓힐 수 있었다. 두산은 유희관을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예 유했다기보다는 철저히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평가했다. 연봉 협상에서도 그 주도권은 두산에 있었다. 지난 시즌 성적만 놓고 본다면 유희관의 연봉 하락은 불가피했다. 유희관도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없었다. 유희관은 연봉 협상에 임했고 일정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유희관은 선수 생활의 완전 멈춤을 택했다. 유희관으로서는 달라진 팀 내 입지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그의 의지와 달리 기회 자체가 크게 줄어드는 현실이 더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현역 선수로서 재기를 위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게 더 의미 있다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의 존재가 다른 후배 선수들의 기회를 잃게 한다는 점도 고려했을 수도 있다. 그 속을 알 수 없지만, 유희관은 자의 반, 타의 반, 환경적 요인이 결합되며 자신 스스로 선수로서의 운명을 결정했다.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다. 올 시즌 프로야구는 스트라이크 존을 넓히기로 결정했다. 이는 투수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투구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스트라이크존을 넓게 사용하는 투수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유희관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유희관의 부활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들도 상당했다. 두산도 그를 보류 선수 명단에 넣은 건 이런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야구 선수 유희관은 이제 과거형의 이야기가 됐다. 유희관은 프로 통산 281경기 등판에 101승 69패, 1세이브, 4홀드 방어율 4.58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느리지만 강했고 매우 꾸준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편견 가득한 시선을 이겨내고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든 선수였다. 특히, 프로 통산 100승의 가치는 매우 크다. 그는 프로야구 한 시대를 풍미한 투수였다. 그는 분명 성공한 선수였다. 

그의 은퇴 결정 과정은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는다. 그래도 유희관은 은퇴 기자회견을 했고 구단 은퇴식도 예정되어 있다. 두산은 그를 예우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유희관이 충분한 기회를 가진 후 은퇴 결정하도록 했다면 아쉬움의 그림자를 조금은 덜 남길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우리 프로야구는 베테랑들의 도전에 대해 인색해졌다. 최근 프로야구에서는 프랜차이즈 선수라 해도 성과가 없다면 과감히 내쳐지는 게 현실이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프로는 실력이고 돈으로 말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진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의 성과나 노력의 가치마저 쉽게 부정되고 그 가치가 폄하되는 건 생각해 볼 문제다. 이는 구단과 프로야구의 역사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일 수도 있다. 소리 소문 없이 무대에서 사라지는 베테랑들이 훨씬 많다. 프로야구의 역사는 결국 선수들이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그 역사를 너무 쉽게 사라지게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 유희관은 전직 선수가 됐다. 앞으로 유희관은 예능 등 방송에서 그 모습을 볼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인생을 열어갈 그의 모습도 궁금하다.  

 


사진 : 두산 베어스,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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