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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대는 하루가 다르게 모든 게 변화하고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발전이라고 한다. 그동안 우리는 발전이라는 이름의 변화가 우리를 더 행복하고 잘 살게 할 거라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 많은 이들은 그 발전을 상징하는 도시에서 사는 걸 동경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이 행복한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낄 수밖에 없다. 보다 풍요롭고 편리해진 일상이지만, 왠지 모를 공허함이 사람들의 마음 한편에 자리한다. 그러면서 과거를 추억하고 지난 시대의 문화, 예술의 조류가 새로운 유행이 된다. 분명 그때는 더 풍족하지 못했고 말 그대로 세련되지 못했던 일상이었는데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을 떨쳐낼 수 없다. 이는 미래에 자신의 삶을 추억할 때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하루하루 일상을 알차게 채워가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54회에서 모처럼 서울 중심부 여의도와 대방동을 찾았다. 서울은 오랜 세월 국가의 수도이자 경제 중심지였고 산업화 시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여의도는 국회가 자리한 정치의 중심지고, 경제 영역 중 중요한 금융의 중심지로 한국의 멘허튼을 불리기도 한다. 과거 모래섬이었던 여의도는 고층 빌딩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지나온 과거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의도 중심부에 자리한 여의도 공원을 먼저 찾았다. 여의도 공원은 과거 일제 강점기 임시 비행장으로 활용되고 일제의 전쟁 수행에 이용됐다. 여의도 비행장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비행기를 타고 귀환한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손기정은 자신의 소식을 전하며 일장기를 지워낸 신문 기사에서 파생된 일장기 말소 사건 등의 여파로 제대로 된 환영식도 못하고 일제에 의해 이끌리듯 비행장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때의 사진이 여전히 남아있다. 해방 이후에는 광복군이 미군 수송기를 타고 고국에 귀환했고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귀환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여의도 공원은 해방 후 비행장 기능이 사라지고 거대한 광장으로 조성됐다. 국가적인 대규모 행사가 이곳에서 자주 열렸다. 평소에는 넓은 광장에서 많은 이들이 자전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이 광장을 메웠다. 1999년 여의도 광장은 광장을 덥고 있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시민 공원으로 조성됐다. 7만평 규모의 여의도 공원은 이제 누구나 찾을 수 있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고 여의도의 대표적 랜드마크로 자리했다. 근. 현대사의 장면들을 압축한 곳이 여의도 공원이었다. 

여의도 공원을 벗어나 출근길 인파로 가득한 여의도 중심부를 찾았다. 거대한 빌딩 숲 사이사이로 직장인들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도 있었다. 그 빌딩 숲 사이 골목길을 걷다가 작은 매점이 눈에 들어왔다. 각종 먹거리와 생필품, 사무 용품을 파는 이 매점의 사장님은 20여 년 전 직장을 퇴사하고 매점 일을 시작했다. 일을 시작할 때는 모든 게 서툴고 손님들이 많이 올까 걱정했다고 했다. 지금도 사장님은 자신의 손이 빠르지 못해 매일매일이 걱정이다. 이런 느림이 매점의 중요한 메뉴인 김밥과 떡라면에 집밥과 같은 느낌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대용량이 밥솥이 아닌 집에서 사용하는 밥솥을 이용해 밥을 짓고 이른 새벽 재료를 넣고 만드는 김밥은 여느 김밥과 다른 정성이 들어가 있다. 그 김밥과 떡라면은 빠른 출근길에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한 직장인들에게 소중한 한 끼가 되고 있었다. 이 덕분에 이 매점은 이른 아침부터 발걸음 하는 직장인들이 많았다. 오랜 세월 한자리에서 매점을 하다 보니 단골손님들도 늘었고 젊은 직장인들도 많다. 이들과 사장님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정도 쌓였다. 사장님은 직장인들과의 만남에서 에너지를 느끼고 삶을 행복을 찾는다고 했다. 이렇게 매점 사장님은 자신을 믿고 찾는 이들을 위해 아침을 힘차게 열어가고 있었다. 

여의도 도심의 거리를 걸었다. 그 길에 과거 3대 공중파 방송사의 사옥이 있었던 시절을 추억해 봤다. 지금은 KBS만 여의도를 지키고 있다. 나머지 방송국은 다른 곳으로 사옥을 옮겼다. 과거 MBC 사옥이 있었던 자리는 또 다른 빌딩이 공사 중이었다.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한편에 여의도의 방송 역사를 간직한 장소가 있었다. 수많은 연예인과 방송인들의 과거와 현재 증명사진과 프로필 사진으로 벽면을 채운 사진관이 그곳이었다. 이 사진관은 과거 현대 방송사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여러 연예인과 방송인들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이 사진관에서 볼 수 있었다. 사진관의 사장님은 1980년대부터 방송가의 사진사로 활약했다. 프로필 사진뿐만 아니라 드라마 현장 사진도 다소 작업을 했다. 그렇게 쌓은 사진들은 소중한 역사 기록이 되고 있다. 사진관 사장님은 남의 인생을 사진으로 담으며 자신의 인생의 시간을 채웠다. 이 사진들이 잘 보존되고 언젠가 많은 이들이 함께 보며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지길 기대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여의도 빌딩 숲 거리를 걷다 오래된 식당을 들렀다. 20여 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식당은 대표 메뉴는 일명 할매탕으로 불리는 해장탕이었다. 식당을 시작한 어머니의 손맛은 아들 내외에 의해 이어지고 있었다. 여기에 항상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어머니의 원칙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 변하지 않은 맛과 원칙은 빠르게 변화는 여의도에서 긴 시간 식당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지금은 랜드마크로서의 이미지가 다소 줄었지만, 여의도를 대표하는 건물인 63빌딩을 지나 인근 시범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1970년대 초반 조성된 여의도 시범아파트 단지는 당시로는 볼 수 없었던 대단지 아파트였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 큰 관심을 가졌던 아파트였던 만큼 시설도 최신이었다. 아파트에서는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지금은 50년 가까이 세월이 흘러 시간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여의도의 역사를 대표하는 소중한 곳이기도 하다.

이 시범 아파트의 역사를 간직한 장소가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 공인중개사 사무소가 그곳이었다. 이곳에는 아파트 분양과 입주 당시 장부 등 각종 기록들이 있었다 사장님은 빛바랜 그때의 기록을 모두 보관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시범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시점부터 일을 했고 지금은 아들이 그 일을 가업으로 이어받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근. 현대사의 기록이 지켜지고 있었다. 이 공인중개사 사무소는 그래서 너무 소중해 보였다. 

아파트 단지 인근 빵집을 찾았다. 이 빵집은 독일 전통 방식의 빵을 내놓고 있었다. 빵집의 사장님은 과거 공연 기획자의 길을 버리고 독일 제과제빵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유학을 떠나 기술을 배웠다. 그는 보다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사무실 밀집 지역이나 더 큰 상권이 있는 곳에서 빵집을 차릴 수도 있었지만, 사람들과 보다 가까이 소통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아파트 상가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그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빵집을 운영했고 단골손님들과 유대 관계를 유지하며 빵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변치 않은 마음이 그에게는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여의도에서의 여정을 끝내고 샛강을 건너 대방동으로 향했다. 대방동은 여의도와 달리 오래된 주택가가 많고 그 변화가 더뎌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곳도 곳곳에 개발의 바람이 서서히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대방동 주택가 골목을 걷다. 각양각색의 풍선들이 가득한 가게가 보였다. 이 가게는 대방동 토박이 주민들이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40년 토박이인 사장님은 그의 남편과 함께 가게를 열었고 사업이 커지면서 주변 이웃들과 함께 하며 가게 규모를 늘렸다. 이 가게의 풍선은 다양했다. 선물용도 있고 파티용으로도 사용된다고 했다. 이곳의 풍선은 누군가에 행복을 전해주는 존재였다. 누군가에 행복을 전하는 이들의 모습은 밝고 건강해 보였다. 사장과 직원의 관계지만, 이 가게의 구성원들은 오랜 세월 함께 한 사이로 그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알고 신뢰하고 있었다. 이는 그 어느 곳보다 강한 팀워크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들의 고향을 지킨 이들의 한결같은 마음이 함께 하는 가게는 그 어느 곳 보다 특별하고 믿음직해 보였다. 

여정의 막바지, 대방동의 오래된 주택가 골목을 계속 걸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담벼락과 집들이 자꾸만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 마음을 이끌었다. 그 마음이 이끄는 대로 걷다 오래된 중화요리 식당에 들렀다. 겉모습만 봐도 그 세월이 짐작되는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과 만났다. 그는 남편과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이 식당을 지켜왔다.

이 식당은 3대 75년의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사장님은 홀로 식당을 운영 중이었다. 한층 더 힘들고 외로운 일이지만, 사장님은 식당을 지켜달라는 남편의 마지막 유언을 지키기 위해 오랜 세월 지켜온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식당 테이블에 남편과 나란히 앉아 먹던 식사도 혼자 해야 하지만, 남편의 흔적이 곳곳에 베여있는 식당은 사장님에게 너무나 소중한 공간이다. 주변이 변화하고 있지만,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식당을 찾는 오랜 단골들도 사장님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 이 동네를 떠났지만, 이 식당을 찾아 지난 과거를 추억하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이 식당은 마을의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공간이었다. 

서쪽으로 해가 저물어가는 장면으로 마지막 장면이 채워졌다. 해가 뜨고 지는 일상은 매일매일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 시간들 속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어느 순간 일상을 바꿔놓는다. 산업화 시대 그 변화는 놀라울 정도로 빨랐고 지금은 그 변화 속도가 상상 그 이상이다. 그 속에서 과거를 추억하고 하루하루 의미 있는 일상의 만들어 가려 하는 건 한가로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이 우리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행복하게 할 수 있음을 여의도와 대방동에서 만난 이들은 보여줬다. 그런 일상들은 소중한 기억이 되고 역사가 되고 있었다. 여의도와 대방동에서의 시간은 일상의 소중함을 크게 느낄 수 있는 여정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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