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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월드컵 역사에서도 그 사례를 찾기 힘든 일을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이 해냈다. 2월 1일 설날 밤 대표팀은 UAE에서 열린 시리아와의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A조 원정 경기에서 2 : 0으로 승리했다. 최종 예선 7차전 레바논 원정 1 : 0 승리에 이어 이 승리로 대표팀은 최종 예선 6승 2무를 기록하며 남은 2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조 2위를 확정하며 카타르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했다. 대표팀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이어진 본선 진출의 역사를 연장하며 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이 축구의 맹주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 볼 수 없었던 압도적 페이스다. 그동안 10번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뤄냈지만, 최종 예선은 긴장된 분위기가 대부분이었다. 졸전을 펼치다 가까스로 본선행에 성공한 일도 있었고 경기력 저하에 대한 문제로 최종 예선 과정에서 감독이 교체되는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대표님의 경기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본선에 진출한다 해도 박수받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월드컵 본선 진출을 당연시하는 팬들의 생각은 보다 경기 내용에 대한 기대치를 끌어올렸고 이를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타르 월드컵으로 가는 길도 결코 쉽다고 할 수 없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의 아쉬운 결과를 뒤로하고 대표팀은 포르투갈 출신의 벤투 감독을 새롭게 선임하며 다음 월드컵을 대비했다. 그를 선임하기 이전 세계적 명장들에게도 오퍼를 했지만, 그들의 한국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벤투 감독 역시 상당한 커리어가 있었지만, 이전에 접촉했던 감독에 비해 부족함이 있었다. 벤투 감독은 선임 당시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이었다. 대표팀은 그에게 4년 계약을 보장하며 월드컵 진출과 본선까지 장기 프로젝트를 맡겼다. 그동안 대표팀 감독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거나 단기 계약을 하면서 경기력의 연속성이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일이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 체제가 4년 넘게 이어질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동안 대표팀의 역사에서 4년 넘게 자리를 지킨 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국 대표팀 감독 자리는 어느새 독이 든 성배가 됐기 때문이었다. 다수의 외국인 감독과 심지어 축구 레전드 출신 국내 감독들도 불명예 퇴진을 거듭했다. 

 

 


벤투 감독 체제의 대표팀도 여러 고비가 있었다. 벤투 감독은 우리 대표팀에는 생소했던 후반 빌드업을 중시하는 축구의 색깔을 입히려 했다. 그동안 한국 축구는 강력한 체력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한 압박과 빠른 축구가 강점이었다. 다른 시도가 있긴 했지만, 결과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 기동력과 체력에 바탕을 둔 다소 투박하지만, 압박과 기동력의 축구가 더 효과적이라는 게 일종의 정설이 됐다.

벤투 감독의 빌드업  축구 역시 난관이 있었다. 상대 강력한 압박에 빌드업이 무력화되는 일이 있었고 수비 위주 팀에게는 빌드업 축구는 효과적이지 않았다. 볼 점유율은 높았지만, 골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후방에서만 볼이 돌아가는 답답한 축구의 모습이 반복됐다. 특히, 아시아 지역 팀들에게도 고전한 경기가 늘어나고 원정 경기에 대한 약점이 도드라지면서 벤투 축구에 대한 의문부호가 늘어났다. 이는 벤투 감독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인 경기력의 발전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월드컵 예선을 거치면서 나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유럽의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무기력했다. 손흥민이라는 당대 최고 스타가 있었지만, 오히려 손흥민에게만 의존하는 경기 방식이 한계를 보였다.

상대 팀이 손흥민을 묶으면 대표팀의 공격이 쉽게 풀리지 않았고 빌디업을 중시하는 팀 경기 방식에 수비가 적응하지 못하면서 수비도 흔들렸다. 여기에 유럽파 선수들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벤투 감독의 성향도 그에 대한 비판에 중요한 원인이 됐다. 한국 축구의 구원자로 주목받았던 벤투 감독은 어느새 편협하고 고집만 센 지도자로 평가절하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는 축구팬들은 물론이고 전문가들도 다르지 않았다. 감독 교체설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최종 예선 3경기에서 부진한 경기가 이어지자 벤투 감독 체제에 대한 우려는 더 깊어졌다. 대표팀은 최종 예선 조 편성에서 강팀 호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를 피했다. 행운이었지만, 최근 들어 상대 전적에서 크게 밀리는 숙적 이란이 같은 조에 있었고 나머지 팀들이 모두 중동 국가로 추첨되면서 긴 원정 거리에 대한 부담을 가져야 했다. 그중 시리아와 레바논은 이라크는 내전과 테레, 정치 경제 불안으로 홈에서 제대로 경기를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팀들이라는 점에서 긍정 전망이 우세했다. 

여기에 최종 예선 초반 3경기를 모두 홈에서 치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고 홈 3연전 후 이란과 대결한다는 점도 긍정적인 여건이었다. 하지만 대표팀은 1차전 이라크전에서 졸전 끝에 0 : 0 무승부를 기록하며 불안한 출발을 했다. 이 경기에서 대표팀은 기존의 답답한 빌드업 축구의 한계를 드러냈다. 실속 없는 점유율 축구에 부실한 골 결정력, 장거리 이동에 따른 컨디션 저하 문제가 있는 유럽파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에 대한 문제점, 유연하지 못한 전술의 문제 등 다양한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더해 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의 부상까지 겹쳤다. 이어진 레바논과의 홈경기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그 경기에서 대표팀은 1 : 0의 힘겨운 승리를 했다. 손흥민의 부상 결장에서 승리를 했다는 점은 평가받을 수 있었지만, 경기 내용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가장 큰 고비가 찾아왔다. 대표팀은 3차전 시리아와의 홈경기에 이어 이란 원정의 일정이 있었다. 시리아전 결과가 승리가 아니라면 이란전에 대한 부담은 한층 가중될 수 있었다. 시리아전 막판까지 이런 불안감은 현실이 되는 모습이었다. 대표팀은 1 : 0으로 앞서가는 경기를 했지만, 경기 막바지 동점 골을 허용하며 1 : 1로 경기가 끝날 가능성이 컸다. 홈 3연전에서 1승 2무를 계산에 크게 어긋나는 결과가 될 수 있었다. 여기서 극적인 상황이 나왔다. 경기 종료를 앞둔 시점, 세트피스 상황에서 에이스 손흥민이 결승골을 터뜨리며 2 : 1 극적인 승리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필드골이 없어 애를 태우던 손흥민이었다. 소속팀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하면서 대표팀에서는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손흥민이었다. 대표팀에서 손흥민은 공격적인 역할과 함께 경기를 조절하는 주장으로서 대표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에 더 주력했다. 그의 리더십은 분명 긍정적이었지만, 공격수로서 골이 나오지 않는 상황은 대표팀에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다. 이런 손흥민의 골이 정말 필요한 순간 터져 나왔다.

이 승리는 대표팀에 상승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어진 이란과의 최종 예선 4차전에서 대표팀은 손흥민의 선제 골을 포함에 이란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경기 후반 장거리 원정에 따른 체력 문제로 이란에 밀리며 1 : 1 동점을 허용하긴 했지만, 비관적 전망이 많았던 이란 원정을 무승부로 마무리하며 큰 고비를 넘겼다. 이로써 대표팀은 최종 예선 통과의 가능성을 한층 끌어올렸다. 특히, 원정팀의 지옥이라 불리는 이란 테헤란 경기에서 이란에 밀리지 않은 경기를 하면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흐름은 계속 이어졌다. 대표팀은 홈과 원정을 오가는 과정에서도 최종 예선 5차전과 6차전에 연달에 승리하며 본선행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 대표팀의 조직력은 완성도를 더했고 경기 운영도 유연해졌다. 짧은 패스 위주의 빌드업 축구에서 벗어나 롱 패스가 필요할 때 나왔고 좌우 측면 돌파로 공격의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 상대 밀집 수비에 대한 해법도 하나 둘 찾아나갔다. 새로운 선수 발굴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뒤로하고 각 포지션에 주전들을 대신할 수 있는 선수들이 하나 둘 등장했다. 대표팀은 주전 선수들의 부상 공백에도 흔들리지 않은 경기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벤투 감독에 대한 의구심도 점점 사라져갔다.

그는 긴 기간 대표팀을 지도하면서 대표팀의 선수 구성에 맞는 전술을 찾았고 이를 실전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경기가 거듭되고 팀 훈련을 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팀 조직력이 완성됐다. 비난 여론에도 그에게 신뢰를 보낸 성과가 하나 둘 나타났다. 강해진 팀은 에이스 손흥민의 위력도 배가시키는 일이 됐다. 

마침내 대표팀은 최종 예선 7차전과 8차전마저 연이어 승리하며 1차 목표에 도달했다. 대표팀은 국내파 선수들로만, 구성된 터키 전지훈련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고 약팀이었지만, 유럽의 아이슬란드와 몰도바전에서 대승을 거두며 자신감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황의조와 짝을 이룰 조규성이라는 스트라이커가 등장했고 취약 포지션인 좌. 우 풀백에는 김진수, 김태환이 기존의 이용, 홍철의 경쟁자로 등장하며 선수 기용폭이 넓어졌다. 미드필더진에는 백승호가 새로운 카드로 등장했다. 

이는 7차전과 8차전 대표팀 주전 공격수 손흥민, 황희찬의 부상 공백을 메울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이 부재는 큰 악재였지만, 국내파 선수들이 그 자리를 충분히 대신했다. 조규성은 강력한 피지컬에 놀라온 활동량으로 새로운 스트라이커의 전형을 보이며 황의조 못지않은 활약을 했고 백승호 역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무난한 경기력을 보였다. 좌측 풀백 김진수는 시리아와의 원정 8차전에서 결승골과 함께 공. 수에서 맹활약했다. 대표팀은 새로운 얼굴들의 등장과 함께 장기간 다져진 조직력을 바탕으로 원정 2경기를 무난히 승리했다. 기상 이변에 따른 이동의 어려움과 코로나 확진자 발생의 변수가 있었지만,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만큼 대표팀은 단단한 전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최종 예선 2경기를 남겨주고 본선행을 확정한 대표팀은 남은 2경기에 새로운 선수들의 실험할 수 있는 여력을 마련했다. 부상 중인 선수들의 충분히 회복할 시간도 벌었다. 하지만, 긴장을 완전히 늦출 수는 없다. 본선에는 아사이 지역 상대팀과의 비교할 수 없는 강팀이 즐비하다. FIFA 랭킹 30위권의 대표팀의 상황은 32팀이 나서는 월드컵 본선에서 하위권 전력이라 할 수 있다. 팀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남은 최종 예선 경기는 이를 위한 소중한 시간이다. 

또한, 그동안 이기지 못하는 상대가 된 이란전도 중요하다. 이미 본선 진출을 확정한 두 팀이지만, 대표팀은 그동안 이란전에서 진 빚이 많다. 대표팀은 이란과의 홈경기에서 그동안의 기울어진 관계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 마침 이란과의 홈경기에는 관중 입장도 가능하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강한 상대로 승리한다면 랭킹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분명 큰 성과다. 축구 변방국에서 이제는 당당히 월드컵 단골 진출국으로 그 입지를 다진 한국이다. 하지만 홈에서 열린 2002년 한. 일 월드컵 4강 이후 대표팀의 본선 경기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대표팀에 대해 높아진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했다. 다수의 선수들의 유럽 등 해외에 진출하고 아시아에서는 크게 활성화된 프로리그를 가지고 있지만,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최근 월드컵 본선 무대는 아쉬움으로 채워졌다. 그때마다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는 본선 무대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는 팀이 돼야 하는 대표팀이다.

이점에서 아시아 최종 예선은 희망적인 요소가 많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경기력이 발전하고 있고 선수들의 기량이 전체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팀 전술의 완성도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강팀과의 대결에서는 가지고 있는 장점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본선까지 평가전을 통해 더 완성되고 누구와 상대해도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는 팀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은 10회 연속 본선 진출은 충분히 자축할 수 있는 일이지만, 더 큰 과제를 풀어야 하는 대표팀이다. 



사진 : FIFA 홈페이지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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