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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서초구과 방배동은 대표적인 부촌이다. 높은 빌딩 숲이 있고 다양한 문화 예술 시설이 모여있다. 높은 아파트 가격은 이 지역의 부를 상징한다. 이렇게 화려하고 보통의 삶과 다를 것 같은 곳이지만, 서초구 방배동은 오래된 주택단지들이 곳곳에 자리한 강남 같지 않은 강남으로 불리기도 한다. 동네 이름이 서초구 관악구를 경계하는 우면산을 등지고 있는 동리라는 의미의 방배에서 유래했다는 점은 이곳이 예로부터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동네임을 짐작하게 한다. 지금 방배동의 모습도 옛 지명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61회에서는 방배동의 주택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채웠다. 이른 아침 동네 산의 산책로를 걸으며 여정을 시작했다. 봄기운이 느껴지는 길을 따라 잠시 자연과 함께 했다. 그 길에 에어로빅 동작을 함께 하며 아침 운동 중인 동네 할머니들과 인사했다. 꽤 오래 손발을 맞춰본 듯 동작이 자연스럽고 활기찼다. 아침의 상큼한 공기와 함께 산책도를 벗어나 본격적인 동네 탐방에 나섰다.

오래된 주택들이 즐비한 주택가 길을 걷다가 눈에 띄는 장소가 보였다. 종이로 꽃을 만드는 종이꽃 공방이었다. 젊은 여성 3명이 함께 하는 이 공방은 아직 일반인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페이퍼 플라워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이들은 이 작품들을 각종 행사나, 백화점의 장식, 쇼룸, 기념식 등의 장식으로 납품하고 실제 설치도 한다고 했다. 이들은 친구 사이로 페이퍼 플라워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시기부터 함께 했고 어려움을 극복했다. 그 과정에서 방배동의 주택가에 터전을 잡았다. 이들의 작품은 이제 꽤 알려졌고 곳곳에서 주문이 들어온다고 했다. 방문했을 때도 백화점 장식을 위한 작품 만들기에 열중이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함께 하며 새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여성 3인에게 응원을 보내며 다시 길을 나섰다.

주택가 골목을 걷다 작고 아담한 식당을 발견했다. 그 식당은 메뉴가 이채로웠다. 그 식당은 유기농 재료로 만드는 건강 밥상이었다. 식당의 테이블도 많지 않기도 했지만, 식당의 사장님은 한 상을 차리는데 온 정성을 다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없고 좋은 재료를 조미료 가공을 최대한 덜하고 요리를 하기에 식단가도 올라가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없어 보였다. 

 

 

 



식당의 사장님은 과거 건강식품 회사를 꽤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진짜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그는 주택가에 건강 식당을 열었다. 번화가에서 유명해지기보다는 동네 주민들과 좋은 음식을 나누며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식당이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고 식당의 진면목을 아는 이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 식당에서의 한 끼는 맛과 함께 건강을 손님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이런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의 얼굴에는 행복이 넘쳐 보였다.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자동차 정비를 하는 기술자를 만났다. 인근에서 자동차 수리점을 운영하는 그는 출장 수리도 한다고 했고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작업은 왼손으로만 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과거 사고로 인해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그는 두 손으로도 하기 힘든 타이어 교체 작업을 아주 능숙하게 해내고 있었다. 그를 따라 그가 일하는 자동차 수리점으로 향했다. 

그는 장애를 얻은 후 이를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로 자동차 정비를 배웠다. 자동차 정비는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는 그에게는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이겨내기 위해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시시각각 찾아오는 오른팔을 통증도 이겨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는 동네 주민들이 믿고 차를 맡기는 기술자가 됐다. 힘든 세월이었지만, 그는 장애가 결코 불가능의 상징이 아니라는 걸 그의 삶으로 입증했다. 그는 오늘도 힘차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주택가 골목길을 걷다가 어디론가 향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그들을 따라가니 실내 야구 연습장이 있었다. 이전에 있던 슈퍼마켓을 리모델링해 만든 곳이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야구를 즐기며 배우고 있었다. 마음껏 뛰어놀 장소가 없는 도시에서 이 야구 연습장은 아이들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였다.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얼마 전까지 프로야구 선수로 1군에서도 활약했었다. 2020 시즌을 마치고 방출된 그는 현역 선수 연장을 희망을 이어갔지만, 더는 프로무대에서 뛸 수 없었다. 그는 지도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방배동에서 동네 야구교실의 선생님이 됐다. 화려한 프로선수 생활을 자신의 의지와 달리 접었지만, 그는 아이들과 함께 하며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었다. 그와 함께 야구를 배운 아이들 중 큰 야구선수가 나오길 기대하며 또 다른 장소로 향했다. 

다시 길을 걷다 오래된 상가 건물에서 목재를 옮기는 이들이 보였다. 그들을 따라 공방으로 들어갔다. 그 공방은 나무 현판이나 인쇄용 목판 등을 제작하는 각자장 공방이었다. 이 공방의 장인은 40년 넘게 각자장 장인으로 살아왔다. 그는 화재로 소실된 남대문 현판 복원 등 문화재 복원에도 다수 참여했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어렵게 전통 공예의 맥을 이어온 그는 최근에서야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의 기술을 이어갈 후계자가 없는 현실이 그를 안타깝게 하고 있었다. 대신 그는 동네 주민들을 포함해 취미로 각자장 기술을 배우려는 이들을 가르치며 전통 공예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알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 한편에서 그는 각자장 기술에 점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딸이 그의 기술을 이어가기를 소망하고 있었다. 물론, 강요할 수는 없다. 대신 그는 그저 딸의 선택을 기다릴 뿐이다. 전통 공예기술이 맥이 누군가에 의해 이어지길 소망하며 장인은 오늘도 나무와 씨름하는 중이다. 

동네 한편에 자리한 사당이 보였다. 청권사로 불리는 이 사당은 태종 이방원의 둘째 아들이었던 효령대군의 사당이었다. 그는 태종 이방원의 첫째 아들인 양녕대군이 세자 자리에서 폐위되고 세자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위치였지만, 셋째 충녕대군이 세자 자리에 오르면서 왕위에 대한 꿈을 버렸다. 그는 이후 불교에 귀의했고 권력과 정치에 일체 관심을 두지 않는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 속세의 번뇌를 버린 탓인지 그는 장수했다. 그런 그의 흔적을 도시 동네에서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식당들이 모여있는 골목길을 걸었다. 그 길에 막 식재료가 도착한 식당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서울에서 아주 먼 남해바다 통영의 음식을 메뉴로 하는 통영 요리 전문식당이었다. 이 식당에서 봄과 너무 잘 어울리는 메뉴인 도다리 쑥국을 만날 수 있었다. 봄 내음과 바다 내음 가득한 한 상을 차려졌다.

부부가 운영하는 이 식당은 10년 넘게 방배동 한 편을 지키고 있었다. 그 어느 업보다 경쟁이 치열한 요식업에서 그것도 강남 상권에서 자리를 지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부는 통영에서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그 일이 뜻한 대로 풀리지 않았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서울에서 버텨내기 위해 부부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지금 자리에 식당을 개업했다.

 

 


부부는 식당을 처음 열었을 때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주로 서빙을 담당하는 남편은 항상 넥타이에 정장을 하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이 식당을 찾아주는 손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정성 가득한 서비스로 보답하고 있었다. 주방을 담당하는 아내는 어릴 적 고향의 맛을 되살려 이 식당만의 맛을 내고 있었다. 이런 부부의 노력과 정성은 꾸준히 단골손님들이 이 식당을 찾는 원동력이 되고 있었다. 이 부부 인생의 봄날은 그렇게 계속되고 있었다. 

오래된 주택들이 드문드문 자리한 주택가를 찾았다. 마치 어느 지방의 소도시를 보는 듯한 이 동네는 아직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았다. 주택 앞 마당에서 선풍기를 고치는 일에 열중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는 팔순이 넘은 아니지만, 매우 활동적이고 적극적이었다. 그는 동네에서 버려지는 선풍기 같은 가전을 가져와 수리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준다고 했다. 그가 수리해서 되살리는 건 가전제품 외에 우산 등 다양했다. 그의 손재주와 기술은 동네에서 모든 이들이 다 알고 있었다. 지금도 가전제품 수리가 필요하면 할아버지는 찾는 이들이 많다. 삭막한 도시 속에서 볼 수 없는 정겨운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가전 수리점을 운영했고 기술자로 오래 세월 일했다. 이제 은퇴를 하고 노년을 보내고 있지만, 그는 일을 놓을 수 없었다. 그는 그의 기술을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누고 베풀고 있었다. 그는 동네에서 만능 기술자, 맥가이버로 불리고 있었다. 그는 동네 주민들과 수시로 소통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삶이 행복해 보였다. 서울에서도 사람들이 정이 오가는 모습에서 흐뭇한 미소가 절로 세어 나왔다. 

이렇게 방배동에서는 기존에 이 동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모습과 다른 장면 장면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빌딩 숲과 고급스러운 주택가, 보통 사람과 다른 이들이 살고 있을 것 같았지만, 오랜 세월 동네를 지키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 동네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는 이들도 있었다. 그 일상의 삶이 모여 방배동의 하루하루가 채워지고 있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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