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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남부 경기의 중간에 위치한 과천시는 1980년 초 서울에 집중된 정부기관을 분산하고 서울의 과밀화를 막기 위해 조성된 1세대 계획도시 겸 행정 중심의 신도시였다. 과거 과천시는 시흥군 과천면이었지만, 정부청사가 건립되고 그 배후에 아파트 등 주거 단지와 도시가 조성되면서 1986년 1월 1일 시로 승격되어 도시로서 그 역사를 시작했다. 

과천시는 북쪽으로 서울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에 자리한 관악산과 청계산, 우면산이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다. 도시에는 양재천이 흐른다. 그 때문에 과천시 지역 중 많은 녹지가 있고 80프로 이상의 개발제한 구역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 이는 도시개발 등에 제약이 되고 있지만, 반대로 쾌적한 주거환경을 가진 살기 좋은 도시가 되는 이유가 됐다. 

과천시는 서울에 있는 행정기관의 이전 등을 주 목적으로 도시가 조성되면서 시 땅의 60%가 넘게 정부와 서울의 소유로 되어 있다. 그로 인해 시의 각종 부동산 개발에 있어 독자적 진행이 어려운 면이 있지만, 지역 번호가 서울과 같은 02를 사용하는 등 경기도 속 서울과 같은 느낌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 때문인지 과천시는 전국의, 기초 자치단체 중 두 번째로 작은 면적과 경기도에서 세 번째로 적은 77,000여 명의 인구로 있는 작은 도시임에도 높은 비중으로 인해 결코 작지 않은 도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과천시에는 행정관서 외에 수도권의 중요한 놀이공원이자 테마파크인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가 있고 경마경기가 수시로 열리는 경마장으로 불렸던 렛츠런파크 서울,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과천과학관 등 문화 예술과 관련한 주요 시설이 입지하고 있다. 최근 세종자치시가 생기고 그곳으로 과천에 있었던 정부기관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행정 도시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다른 정부 부처가 다시 입주하고 과거 정부부처가 있었던 지역에 새로운 발전 계획이 수립되는 등 또 다른 변화를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1980년대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가 진행 중인 이 과천시를 찾아 그 안에 담긴 이웃들의 이야기와 함께 했다. 

 

 


여정의 시작, 서울과 남부 경기지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지나는 남태령 고개 산책로를 걸었다. 도로와 나란히 하는 산책로는 과거 조선의 수도 한양으로 향하는 이들이 지나는 도보길이었다. 산책로 자리한 표지석은 과거 남태령 고개의 역사를 살필 수 있도록 했다. 

남태령 고개를 내려와 봄 햇살이 비치는 개천변의 산책로를 다시 걸었다. 그 길에 과천시의 대표적인 공원인 중앙공원에 이르렀다. 그 공원에서 과천을 둘러쌓고 있는 산인 관악산과 우면산, 청계산을 축소해 형상화한 조형물이 발걸음을 이끌었다. 그 조형물 앞에는 과천시를 지나 흐르는 양재천을 형성화한 조형물이 있어 과천시의 모습을 마치 하늘에서 조망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공원 봄 느낌을 안고 관악산의 등산로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 자리한 식당에 들렀다. 마침 식당에는 산행을 마친 이들이 식사를 위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과천에 있는 관악산, 우면산, 청계산을 지키고 관리하는 안내소 직원이었다. 그들 중 이 식당을 잘 아는 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20대 청년 시절부터 안내소에서 일했고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됐다. 그는 안내소 일을 하면서 5년 전부터 이 등산로 입구 식장을 인수해 배우자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 식당은 25년 전부터 등산객들과 함께 했다. 배우자는 식당 초기 오랜 역사의 식당을 맡았다는 게 크게 두렵고 무섭기도 했지만, 산에서 일하면서 수시로 식당일을 도와주는 남편의 응원 속에 식당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 부부의 식당은 등산로 입구 식당들의 대표 메뉴인 비빔밥과 파전으로 매일매일 등산객과 만나고 있었다. 이제 관악산은 이 부부의 삶 그 자체였다. 관악산 그리고 과천고 함께 하는 부부의 이야기는 지금도 진해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과천의 아파트 단지 길을 걸었다. 아파트 사이로 길쭉하게 자리한 건물들이 보였다. 1980년대 초 과천시가 시작할 때부터 있었던 시장이었다. 과거에는 노점들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건물을 생기도 보통의 전통시장과 다른 전통시장으로 수 십 년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과 함께 한 상인인 한 어머니를 만나 시장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시장이 열릴 즈음에 지방에서 상경해 자리를 잡았고 시장에서 세월을 보냈다. 그 사이 동네 주민들은 물론이고 주변 상인들을 서로의 일상과 삶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소중한 이웃이 됐다. 어머니에게 이들은 남이 아닌 세월을 함께 하는 동반자였다. 그들이 있어 어머니는 하루하루를 힘차게 열어갈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봄 햇살 속 어머니는 이웃들과 함께 행복한 일상으로 자신의 삶 한편에 채워가고 있었다. 

1980년 세워진 오래된 상가 건물에 보였다. 여러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상가 건물 한편에 빵 굽는 냄새를 따라갔다. 젊은 여자 사장님이 운영하는 빵 가게가 있었다. 젊은 엄마인 가게 사장님은 과거 잡지사 등에서 다자인 관련 일을 하다고 빵이 좋아 제과제빵을 기술을 배웠고 취미로 했던 그 일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사장님은 독특하게도 도시락 크기의 케이크를 고객들의 주문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다. 나만의 케이크를 만날 수 있다는 게 크게 매력적이었다. 사장님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으로 힘겨운 시간도 있었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이 공간이 소중하고 일상이 즐겁다고 했다. 그가 만들어갈 제2의 인생을 응원하며 다시 길을 나섰다. 

과천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를 찾았다. 봄기운이 완연한 시기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1980년대 만들어진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는 당시에는 없었던 테마파크 형태로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았다. 지금은 다른 곳에 테마파크와 놀이공원이 많은 생겼지만, 개장 초기 이곳은 수도권을 물론이고 전국에서 방문자들로 북적였다. 지금도 그 위상은 여전하다. 특히, 봄에 피는 벚꽃으로 가득한 벚꽃길은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곳에서 봄나들이를 나온 시민들을 만났고 서울대공원 초기부터 방문자들을 실어날났던 코끼리 열차를 타며 잠시 과거 추억과 현재의 시간을 함께 느껴보기도 했다. 

서울대공원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봄꽃과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과천에 자리한 화훼 단지가 그곳이었다. 꽃 재배농가가 밀집한 이곳은 꽃 재배를 위한 비닐하우스가 가득했다. 난방을 위해 피우는 연탄난로에서 나온 연탄재가 이채롭게 다가왔다. 

화훼 단지 내부에 들어가니 계절을 초월해서 피어나는 다양한 꽃들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40년 경력의 꽃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를 만났다. 젊은 시절 상경해 꽃 재배와 도매 일을 한 부부에게 과천은 제2의 고향이라 했다. 꽃 배배 초창기 수해로 삶의 터전을 잃는 등 시련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 화훼 단지에서 완벽히 자리를 잡았다. 부부는 대조적인 성격이었다.

아내는 과거 전국 노래자랑 입상 경력의 가수를 꿈꿨던 에너지 넘치고 활달할 성격이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묵묵히 지켜주고 곁에 있었다. 다른 성격이었지만, 부부는 조화를 이루며 긴 세월을 꽃과 함께 했다. 꽃은 이제 그들 삶 그 자체였다. 봄이 되면서 일도 늘고 전국 곳곳으로 꽃이나 화분을 배송하는 등 바쁜 시간을 부부는 보내고 있었다. 부부는 매일매일 봄꽃과 같은 화사함으로 그들의 일상의 채워가고 있었다. 

과천의 명소 경마장 인근의 길을 걷다 큰 그림 캔버스를 옮기는 이들이 보였다. 마침 그 캔버스 그림의 화가가 있었다. 그의 안내를 받아 작업실로 향했다. 이 화가의 작품은 여느 그림과 크게 달랐다. 그는 다양한 모양의 도장, 인장으로 회화 작품을 완성하는 인장화가였다. 그는 손으로 인장을 파고 그 인장을 쌓아 그림을 완성했다. 작업이 고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6대째 과천에서 살아온 토박이인 그는 과거 개발이 되면서 사라지는 마을에서 우연히 버려진 도장을 발견했고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이후 그는 청년 시절부터 인장화가의 길을 걸었다. 생소하고 남이 하지 않은 길을 가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그를 아끼고 지지하는 할머니가 있어 큰 힘이 됐다.

 

 



할머니는 그가 어려서부터 몸이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그를 돌보고 함께 했다. 그가 인장화가의 길을 걸을 때도 아낌없는 지지를 보냈다. 할머니는 그가 인장화가로서 성장하는 데 있어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였다. 그의 작업실 한편에 자리한 지금은 세상을 떠난 할머니의 초상화는 그의 할머니에 대한 마음을 담고 있었다. 이제 할머니가 함께 할 수 없지만, 화가는 시대 흐름에 맞게 작품을 발전시키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와 작업실에서 함께 하고 있는 할머니의 초상화가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여정의 막바지 한적한 길가의 막국수 식당을 찾았다. 이 식당은 특이하게도 들기름만 넣어 먹는 들기름 막국수가 주메뉴였다. 온 가족이 5년 전 이 자리의 식당을 인수해 운영하고 있었다. 사장님은 막국수의 맛을 찾기 위해 수년간 전국 막국수 맛집을 다녔다. 그 노력의 결과로 들기름 막국수가 탄생했다. 

사장님은 과거 청주에서 막국수로 크게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사장님은 가족들과 함께 더 큰 성공을 꿈꾸며 10여 년 전 서울로 상경해 강남에 식당을 열었다. 초기 식당은 번창했다. 성공이 눈앞에 보였지만, 메르스 사태 등이 겹치면서 식당 운영이 어려워지고 식당 문을 닫아야 했다.

장사는 안되고 내놓은 식당은 팔리지 않고 그 과정에서 큰 빚을 지기도 했다. 그런 실패의 기억을 안고 가족은 과천에서 다시 막국수 식당을 열었다. 아픈 실패의 기억이었지만, 가족들은 더 뭉치고 함께 했다. 가족들의 힘은 식당을 다시 일으키는 원동력이 됐다. 막국수 식당의 가족들은 다시 차근차근 행복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 가족에서 과천은 너무나도 소중하고 고마운 곳이었다. 

이렇게 과천 곳곳에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중간중간 시련이 있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봄날과 같은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봄 햇살 속 그들의 일상은 봄과 너무 닮아 있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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