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29, 30회] 후계자를 위한 선택, 그 갈림길에 선 이방원

 

이방원에게 수성을 위한 길에서 중요한 문제가 등장했다.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는 중전 민씨 집안에 대한 처리와 후계자 결정에 관한 일이었다. 이방원은 치열한 권력 투쟁과 잔혹한 숙청 등을 통해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지만, 차기 권력에 대한 걱정을 마음 가득 안고 있었다. 

자칫 자신의 구축한 왕 중심으로 중앙집권 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면 그가 권력을 잡기 위해 흘린 피와 각종 과오에 대한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이는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도 연결될 수 있는 일이었다. 이에 그는 매사에 위험 세력의 발생 가능성을 살피고 차기 권력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려 했다.

여전히 두 명의 장성한 처남이 있는 민씨 가문은 이방원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정치적 영향력이 컸던 장인 민제는 병으로 사망하고 조정에 나왔던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사사했지만, 여전히 민씨 가문의 정치적 역량을 물려받은 민무휼, 민무회 두 형제가 있었다. 이들은 몸을 한껏 낮추고 공격을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다. 중전 민씨 역시 이런 부분을 경계했다.

이방원은 민무휼, 민무회 두 형제에게 관직을 내렸다. 민씨 가문과의 화해라는 의미보다는 이들을 보다 가까운 곳에 두고 감시하고 숙청의 구실을 찾기 위한 일이었다. 민씨 가문은 온 힘을 다해 숙청의 칼날을 피해 가려 했다. 중전 민씨 역시 더는 이방원에 대응하지 않고 현실 정치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과거 중전 민씨의 몸종이었다 함께 궁궐에 입궁해 이방원의 아이를 임심해 낳은 효순궁주 김씨의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당시 효순궁주의 임신 사실이 알려지자 민씨 가문에서는 사가에 나와있던 그녀를 핍박했다. 어렵게 효순궁주 김씨가 아들을 낳았고 모자는 궁궐로 들어가 궁주와 경녕군으로 봉해졌다. 중전 민씨는 이들이 화근이 될 수 있음을 염려해 자존심을 내려놓고 한때 자신의 몸종이었던 그녀에게 사가에서의 일을 발설하지 말 것을 간청하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 일이 잊혀갈 즈음 효순궁주 김씨는 과거 그가 경녕군을 낳을 때 민씨 가문에 핍박받았던 사실을 이방원에 발설했다. 

 

이방원으로서는 숙청을 위한 좋은 명분이 생겼다. 이방원은 민무휼, 민무회 형제를 체포해 국문토록 했다. 그들은 심각한 고문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불충의 죄가 씌워졌다.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숙청의 칼날을 그들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중전 민씨는 이들의 구명을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그들의 운명을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민무휼, 민무회 형제는 사사되며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민씨 가문에서 당장 현실 정치에 나설 수 있는 아들들은 모두 제거됐다. 비정한 정치인 이방원에게 혈연과 과거 인연을 중요하지 않았다. 왕에 대한 충성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였다. 공신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방원은 그가 필요로 하는 공신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비위사실에서 그들을 보호하며 곁에 뒀다. 강한 충성심을 가진 이들이 이방원에는 필요했다. 하지만 마지막 공신들이라 할 수 있는 하륜과 이숙번, 조영무 등도 스스로 사직을 하거나 비위 혐의로 유배되며 그의 곁을 떠났다. 차기 권력에 위협이 될만한 세력은 사실상 모두 제거됐다.

이렇게 차기 권력의 위험 요소들을 제거한 이방원이었지만,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세자가 제왕의 자질을 갖추지 못하는 상황이 이방원에게는 큰 고민이었다. 세자 양녕대군은 이방원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이방원은 적장자의 왕위 계승이라는 명분을 지켜내고 싶었지만, 국가를 고려하면 양녕대군은 부족함이 많았다.

여기에 양녕대군의 각종 비행은 수차례 이방원을 분노하게 했다. 이방원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양녕대군을 다독이고 강하게 훈육하며 원하는 왕의 길을 가길 기대했지만, 양녕대군은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버리지 못했다. 특히, 술과 여성과 관련한 각종 편력은 그에 대한 대신들과 백성들의 부정적 평판을 더 키웠다.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왕위는 크게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으로 반대세력과 조정 대신들을 장악했지만, 그런 통치가 계속 지속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이방원은 왕이 높은 학식과 지적 능력을 겸비하고 국정 전반을 살필 수 있어야 하도 대신들과 항상 토론이 가능할 수 있기를 원했다. 세자는 그런 왕이 아니었다. 

이런 이방원의 마음속에 셋째 아들 충녕대군이 점점 자리하기 시작했다. 충녕대군은 학문을 포함해 문화, 예술 전반에 식견이 뛰어났고 상당수 대신들 역시 그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었다. 시간이 흘러 장성한 충녕대군 역시 왕위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형인 세자 양녕대군이 각종 비행 등으로 인심을 잃어가는 시점에 충녕대군은 그와 크게 비교되며 점점 주목을 받았다. 이방원 역시 적장자 계승의 원칙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이방원은 충녕대군의 권력에 대한 욕심을 인정하고 그 역시 차기 권력을 이어받을 수 있음을 인정했다. 이는 차기 왕위를 놓고 세자 양녕대군과 충녕대군의 대결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이방원은 충녕대군에게 왕위에 대한 기회를 주면서 유혈 충돌이 아닌 정치력과 개인의 학문적, 지적 역량으로 이를 이뤄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충녕대군이 양녕대군보다 더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고 대신들의 지지를 얻어내야 함을 의미했다. 차기 권력을 위해 사실상의 오디션이 시작된 셈이었다. 충녕대군은 정치, 국방 등 각종 국정 현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대신들과 접촉하며 세력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세자 자리에 위협을 양녕대군은 이방원의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전략으로 세자의 자리를 지키려 했다. 양녕대군은 적장자에 이미 세자로 책봉된 첫 쩨 아들이라는 우월적 지위에 오랫동안 제왕 수업을 받았다는 점, 여전히 아버지 이방원이 장점에 대한 왕위 계승에 미련이 크다는 점을 이용했다. 그는 이방원의 정치적 입장에 적극 찬성하며 신임을 얻으려 했다. 특히, 민감한 사안인 이방원의 처남들에 대한 숙청과 관련해 양녕대군은 이에 동조하며 이방원의 숙청을 더 용이하게 했다. 

 

 

 

하지만 충녕대군은 민무휼, 민무회 형제의 숙청과 사사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며 양녕대군과 대척점에 섰다. 충녕대군은 공포 정치보다는 인과 덕에 근거한 왕도 정치를 구현하려 했다. 그는 이방원의 정치를 뛰어넘으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양녕대군은 아버지 이방원의 길을 그대로 답습하고 왕위를 지키는데 주력했다. 그러면서 각종 비행을 멈추지 않았다. 충녕대군에 이에 대해 비판하며 양녕대군과 갈등도 깊어졌다. 차기 왕위를 놓고 두 형제는 정적이 되어 맞섰다.

이런 대립에 어머니 중전 민씨는 충녕대군에게 왕위에 대한 의지를 접도록 설득했다. 형제간의 권력 투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충녕대군은 어떠한 정치적 보복도 없을 것임을 약속하며 형인 양녕대군보다 뛰어난 역량을 지닌 자신의 왕위에 올라야 함을 거듭 주장했다. 자칫, 신변에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충녕대군의 권력에 대한 의지는 확고했다.

이런 대립 속에 양녕대군의 비행은 점점 더해졌고 마침내 이방원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양녕대군을 옹호하던 중전 민씨 역시 자신의 남동 4명에 대한 사사에 적극 찬성한 양녕대군의 처사에 대한 분노와 그의 비행을 인지한 이후 마음이 돌아섰다. 양녕대군은 그에 대한 우호세력을 모두 잃고 사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이방원은 고위 관료들을 모아 양녕대군의 세자 폐위와 새로운 세자 책봉을 공론화하기를 결정했다. 두 형제의 왕위를 향한 대결은 역사에 정해진 결말대로 그 끝을 향하게 됐다.

이제 조선은 권력을 두고 대결을 지속하는 창업과 권력투쟁의 시기를 지나 수성과 시스템에 의한 통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방원은 권력과 관련해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주고 힘이 아닌 정치적 역량과 능력으로 이를 쟁취토록 했다. 그러면서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이후 정치보복을 하지 못하는 전통을 만들려 하고 있다. 훗날 조선 최고 성군이 될 충녕대군은 이런 이방원의 뜻에 가장 부합하는 왕으로서의 자질을 입증하고 있다. 이렇게 비정하면서 살벌한 정치의 흐름과 함께 태종에서 세종으로 이어지는 차기 권력 구도가 새롭게 자리하기 시작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