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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군은 경기도 기초 자치 단체 중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양평군 대부분의 땅은 산림지역에 녹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지형은 양평군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만들었다. 실제 겨울철 추위 관련 뉴스를 보면 양평군이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양평군은 산과 계속, 강이 어우러진 청정의 자연을 자랑하다. 용문산은 양평을 대표하는 산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또한, 수도권의 중요한 식수원인 팔당댐이 근처에 있고 남한강이 흐르고 있다. 이 때문에 양평군은 청정한 자연과 전원의 풍경이 있는 교외 휴양지 이미지가 강하다. 이전에는 도시와 크게 떨어져 있는 먼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경의선이 개통되어 양평군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어 마음의 거리도 크게 줄었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71회에서는 이곳 양평군을 찾아 그곳의 자연과 풍경, 그 안에서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과 만났다. 

남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를 걸었다. 화창한 하늘과 산책로에 피어있는 철쭉꽃이 걷는 이의 마음까지 밝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예전부터 양평에는 칡이 많이 나왔다. 이에 양평군은 과거 칡의 한자인 갈자가 들어간 갈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양평의 역사가 함께 하는 갈산공원을 찾았다. 공원에서 통기타로 버스킹을 하는 주민들을 만났다. 동네 친구라고 하는 두 남성은 양평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이라 했다. 그들은 양평에서 꾸준히 버스킹 및 라이브 공연을 해왔다. 갈산 공원은 그들이 즐겨 찾는 무대였다. 그들의 양평 사랑하는 마음이 담긴 자작곡을 들으며 잠시 남한강과 함께 하는 양평군의 풍경 속에 빠져들어 봤다. 

공원을 벗어나 어느 한적한 마을을 찾았다. 곳곳에 꽃이 핀 마을 길이 인상적이었다. 그 길에 꽃 국수 식당 간판이 보였다. 잘 정돈된 정원과 한옥집이 있었다. 마침 그 집 정원 한편에서 손님들이 봄기운과 함께 식사 중이었다. 식당의 주메뉴인 국수에는 식용 꽃이 고명으로 정성스럽게 올라와 있었다. 식당의 사장님을 만났다. 

 

 


사장님은 귀촌 20년 차로 과거 서울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교육 문제로 노심초사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 남편과 함께 아이들이 보다 편안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결심했다. 그 길로 귀촌을 실행에 옮겼고 양평군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보다 훨씬 교통이나 각종 사회 인프라가 부족한 양평군으로의 귀촌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잘 자랐고 사장님 역시 전원생활이 편안하기만 하다. 사장님은 일상의 변화를 주기 위해 6년 전 사장님은 식당을 열었다. 바쁘고 힘든 일상의 시작이었지만, 그런 일상의 행복하다고 했다. 자신의 국수를 맛있게 먹는 손님들의 모습에서 보람과 행복을 얻고 있었다.

사장님은 먼 곳에서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위하 한우 사골로 고와낸 육수를 매일 같이 만들고 있었다. 사장님은 그곳이 손님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그 사장님 옆에는 장성한 딸이 함께 하며 일을 거들고 있었다. 전원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장님의 모습은 행복으로 가득해 보였다. 그 꽃 국수의 꽃은 그런 행복을 그대로 상징하고 있었다. 

양평군의 명소 용문산 자락의 한 마을을 찾았다. 마을 한편의 오래된 한옥집 앞에 늘어서 있는 그림들이 예사롭지 않았다. 가까이서 보니 보통의 그림과 달라 보였다. 우리 전통 민화를 주재로 한 그 그림들은 지금은 보기 힘든 인두로 그려낸 낙화였다. 그 낙화의 화가를 만났다. 

그는 그림을 정식 학교에서 배우지 않고 독학으로 배웠다. 그러던 중 20대 초반 나이에 낙화를 접하고 낙화를 하는 스승으로부터 그림 기법과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의 낙화 그림은 전통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숯불을 피우고 그 불로 달군 인두로 빠르게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 나가야 했다. 신속하면서도 세심한 작업이 필요했다. 쉽지 않은 그림이지만, 낙화 화가로서 삶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이런 그의 곁에는 그를 응원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가족들의 힘으로 그는 전통 낙화를 지켜갈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그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였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아내의 마지막 소원은 화가가 그려주는 초상화를 보는 것이었다. 화가는 아내의 그 소원을 생전에 이루어주지 못했다. 이는 화가의 마음을 항상 무겁게 했다. 늦었지만, 화가는 아내의 초상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늦었지만, 아내의 초상화 작업을 하면서 화가는 매일매일 아내와 만나고 있었다. 아내의 바람대로 그는 전통 낙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마침 그의 조카가 전통 낙화를 배우기 위해 함께 하면서 그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 보였다. 전통 낙화가 계속 그 명맥을 이어가길 바라며 다시 길을 나섰다. 

양평의 비닐하우스 단지를 찾았다. 양평은 도시지역으로 판매하는 채소나 과일 등 근교 농업이 발달해 있는 곳이다. 그 속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젊은 부부를 만났다. 부부의 비닐하우스 농장에서는 관상용 관엽식물과 장어 양식을 함께 하는 친환경 순환농법, 아쿠아포닉스 농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아쿠아포닉스 농법은 기존 수경재배와 양식을 겸하는 농업이다. 물고기 양식을 하면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배설물들을 버리지 않고 거름으로 활용하고 이를 이용해 식물을 재배한다. 재배 농가는 자연의 순환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오염물질 발생을 억제하고 물의 사용도 줄일 수 있다. 최근 중요해지고 있는 친환경 저탄소 흐름에 맞는 농법이다. 

최근 시도되는 농법인 만큼 관련 자료 등이 부족하다. 이 농장의 부부 역시 아쿠아포닉스 농업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았다. 초기에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스스로 기술을 배우고 공부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부부는 도시에서 제과제빵을 배우고 관련 가게를 열려고 했지만, 농촌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과감히 귀촌을 결심했다. 시행착오 속에서 부부는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부부의 미래를 응원하며 떠 다른 곳으로 행했다. 

양평군의 청정한 자연과 닮은 맑은 물이 흐르는 길을 걸었다. 그 길에 봄이 깊어가는 한 마을이 보였다. 그 마을 입구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자매가 보였다. 나무로 만든 그 장난감을 매우 특색이 있고 보통 접하는 장난감과 달랐다. 그 장난감의 자매의 할아버지가 손수 만들었다고 했다.

그 자매를 따라 한 집에 들렀다. 할아버지가 작업에 열중이었다. 할아버지는 손녀들을 위해 스스로 배운 목공 기술로 장난감을 하나 둘 만들었다. 그 작품들이 보여 이제는 집 마당 한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10여 년 전 도시에서 귀촌을 결심했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여러 병으로 아픈 아내를 위해 물 맑고 공기 좋은 전원을 찾았고 도시 생활을 정리했다. 다행히 아내는 지금의 집에서 건강을 회복했고 함께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이룬 작은 기적이었다. 

이후 할아버지는 취미로 목공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손녀들만을 위한 작품들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 작품들은 매우 다양하고 아이디어 가득한 장난감도 있었다. 목공일은 할아버지에서는 전원생활을 하는 데 있어 큰 즐거움이 됐다. 그의 가족 사랑하는 마음이 그의 일상을 행복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다른 농촌마을을 찾았다. 텃밭에서 작업 중인 노부부를 만났다. 이들에게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 부부의 텃밭에서 자라는 작물들은 모두 토종 종자에서 난 작물이기 때문이었다. 부부는 배추와 각종 채소, 콩, 옥수수, 과일 등 토종 작물들의 종자를 지키고 보존하며 키우고 있었다.

 

 


토종 작물들은 그 모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작물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일반인이 그런 일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심함과 정성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프로 농사꾼이 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이끌며 그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제 팔순이 넘어선 부부지만, 이 부부는 오늘도 토종종자를 지키며 전원의 삶을 살고 있었다. 부부는 자신들만 아니라 그 종사를 이웃에게도 나누며 신토불이 지키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이들이 노력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잘 이어지길 바라며 다시 길을 나섰다. 

여정의 막바지 어느 조용한 마을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 쌓여있는 돌탑들을 바라보다 산에서 내려오는 한 부부를 만났다. 그 부부는 마을 산에서 봄나물을 한 아름 캐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부부는 이 나물을 재료로 하는 나물 밥상 식당을 한다고 했다. 특이하게도 이 식당은 하루 3시간 예약을 한 3팀만 손님으로 받고 있었다. 부부의 남편은 식당에 반대했지만, 아내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이렇게 타협이 이루어졌다. 

이 식당의 상차림은 지역에서 나는 나물을 바탕으로 한 어디서도 보기 힘든 천연 밥상이었다. 부부는 이를 통해 돈을 벌기보다는 전원생활의 행복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보였다. 

이들 부부의 전원생활은 아내의 강력한 주장으로 현실이 됐다. 보통은 남편이 전원생활을 설득해 귀촌하는 스토리가 많지만, 이 부부는 그 반대였다. 이제는 남편도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함께 즐기고 있었다. 여기에 아내는 오랜 소원이었던 식당을 열었고 삶의 즐거움을 하나 추가했다. 아내는 전원생활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삶은 알차게 채워가고 있었다. 남편은 그런 아내의 든든한 후원자로 동반자로 함께 하고 있었다.

이렇게 양평군은 여러 이웃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전원 속에서 현실에 안주하거나 즐기는 것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삶의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원석을 가공해 멋진 보석을 만들 듯 자연 속에서 그들의 삶을 더 빛나게 바꿔가고 있었다. 양평군에서의 여정은 가치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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