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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나 국제 축구 관련 기사 등을 살피면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FIFA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한 나라에서 복수의 축구 협회가 등록된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이 그렇다. 영국은 FIFA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등록되어 있고 국제 경기에 하나의 나라와 같이 출전한다. 2022년 11월에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도 다르지 않다. 

카타르 월드컵 B조는 같은 영국팀의 대결 가능성이 크다. 시드를 배정받은 잉글랜드가 이 조에 선착해 있다. 여기에 이란과 미국이 더해졌다. 남은 한자리는 유럽 플레이오프 승자가 들어올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그 플레이오프에 웨일스와 스코틀랜드가 우크라이나와 경쟁 중이다.

예정대로라면 웨일스가 스코틀랜드 와 우크라이나 경기의 승자와 월드컵 본선 티켓을 놓고 대결해야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스코틀랜드 대 우크라이나전 연기되면서 6월에 마지만 본선 진출국이 가려질 예정이다. 많은 이들의 예상은 웨일스 또는 스코틀랜드의 진출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그 예상이 현실이 된다면 월드컵 본선에서 같은 영국 대 영국의 경기가 성사될 수 있다. 

이런 예외는 축구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축구는 영국에서 현대적인 규칙이 정해지고 활성화됐다. 영국 축구 협회가 FIFA보다 먼저 창설됐고 축구가 대중 스포츠로 먼저 활성화됐다. 이 영국의 축구가 유럽과 전 세계에 전파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큰 시장을 가지는 구기 종목이 됐다. FIFA는 설립 초기 영국 축구협회의 권위에 미치지 못했다. 축구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FIFA 가입이 협회 정착에 중요해다. 이에 FIFA는 영국에 한해 예외를 인정했다.

 

북아일랜드 국기

 


이 시점에서 영국 국민들의 일상과 함께 하는 가장 중요한 구기 스포츠인 축구에서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영국의 나라 구성과 연관이 있다. 영국은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연합하여 구성되어 있다.

각 지역은 자치권이 있고 저마다의 전통과 역사가 있다. 이를 통합에 영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졌지만, 각 지역별 갈등이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스코틀랜드에서는 아직도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크다. 뿌리 깊은 지역 간의 갈등은 축구를 통해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축구 경기에서 영국 대 영국의 대결은 어느 국가대항전보다 뜨거울 수밖에 없다. 

이런 각 지역 간의 문제 속 북아일랜드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품고 있는 곳이다. 아일랜드섬 북부의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가 수백 년에 걸친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 독립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영국 잔류를 택했다. 북아일랜드는 과거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한 개신교 신자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와는 다른 종교적 성향이다. 이런 개신교 신자들인 다수를 점하고 있는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의 독립에 함께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아일랜드는 국론이 분열되고 내전을 겪기도 했다. 

결국, 아일랜드가 내전을 극복하고 영 연방을 탈퇴해 아일랜드 공화국으로의 완전한 독립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영토로 남았다. 이는 북아일랜드의 비극이 시작되는 원인이 됐다. 

북아일랜드에 남아있는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들은 심각한 차별에 직면해야 했다. 북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은 주거, 교육, 참정권 등 국민으로서 기본권을 제한당했다. 취업에도 제한을 받았다. 북아일랜드의 정치권력을 장악한 개신교도들은 가톨릭교도들의 사회활동을 제한하고 사실상 분리 정책을 지속했다. 심지어 특별법을 통해 영장 없이 가톨릭교도들을 수색, 체포, 구금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차별 속에 북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은 경제적 궁핍과 빈곤에 시달렸다. 이러 차별과 빈곤의 악순환은 대를 이어가며 유지됐다. 이는 근대에서 현대로 시기가 변했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북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의 분노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영국 지도 - 구글 지도

 


1972년 1월 북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이 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계속된 차별에 항의하며 시민운동을 강력히 전개했다. 이에 영국은 질서 유지를 이유로 군대를 파견해 이들을 진압했다. 그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영국은 최고의 공격부대인 공수부대를 시위가 활발하던 북아일랜드의 도시 데리로 파견했다. 공수부대는 비무장 상태의 시위대에 발포하는 유혈 진압을 했다. 시위대 중 14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이들이 부상을 당했다. 희생자 중에는 어린이도 있었다. 

이 사건이 1972년 1월 30일 발생한 피의 일요일 (Bloody Sunday) 사건이다. 이는 선진국이자 최고 문명국임을 자부하던 영국의 가장 부끄러운 역사 중 하나가 됐다. 국제적인 비난이 뒤따랐다. 이는 문화계에도 영향을 줬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록그룹   U2는 그날의 사건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었다. U2의 'Sunday Bloody Sunday'는 데리의 '피의 일요일 사건'을 노래했다. 이 노래는 U2를 대표하는 곡으로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북아일랜드 분쟁은 더 폭력적인 방향으로 상황이 변했다. 북아일랜드 내 무장단체의 IRA의 재무장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IRA는 과거 아일랜드 독립 투쟁 과정에서 무장 독립운동을 주도하는 단체였지만, 독립 후 아일랜드 공화국군으로 변모했다. 하지만 IRA 내 강경파는 여전히 그 단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조직이 와해됐지만,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상황이 변했다. 

IRA는 북아일랜드 가톨릭교도들의 지지를 받았다. 심지어 다수의 가톨릭교도들이 IRA에 참여하기도 했다. IRA는 과거 아일랜드 독립운동 당시 IRA에서 했던 것처럼 게릴라전과 테러전을 펼쳤다. 초기에는 북아일랜드 내 내 친 영국계 자경단 공격에 치중했지만, 그 존재감을 더하기 위해 영국 본토와 중요 인사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1979년에는 영국 왕족이 테러로 사망하기도 했다. IRA의 활동은 영국의 큰 현안이 됐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있는 벽화

 


영국은 이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했다. 1979년 집권권 '철의 여인' 대처 수상은 강경정책을 더 강화했다. 대처는 강력한 반발에도 영국의 사회보장제도와 노동시장 개혁, 강력한 민영화 정책 추진 등으로 영국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의 레이건과 함께 신자유주의 사상에 근거해 작은 정부와 강력한 대. 내외 강력한 보수주의 정책으로 강한 영국을 만들었다. 아르헨티나와 벌인 포클랜드 전쟁이 중요한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정책은 훗날 민영화 남발에 따른 폐해가 큰 문제가 됐고 영국 제조업의 붕괴를 초래했다. 극심한 빈. 부 격차의 문제도 있다. 또한, 그의 아들 마크 대처는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무기 밀매와 함께 내전 관여와 쿠데타 조장 활동을 하는 범죄행위를 하며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대처에 대한 평가를 크게 엇갈리고 있다. 영국을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였지만, 그의 정책에 대한 문제 또한 적지 않았던 탓에 부정적 평가를 하는 영국인들도 많다. 

이런 대처의 북아일랜드 분쟁에 대한 강경책은 부정적 평가에 일조했다. 대처는 IRA 인사들에 대해 매우 단호했다. 이에 수감 중인 IRA 인사들과 요원들은 그들이 정치범임을 주장했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요청했다. 이들은 이후 죄수복을 거부하고 담요로 몸을 두르는 담요 투쟁, 감옥 내 화장실 사용을 거부하고 감옥에서 용변을 해결하는 불결 투쟁들을 통해 그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영국은 이에 무시로 일관했다. 

급기야 일부 수감자들은 장기간의 단식투쟁을 전개했다. 바비 샌즈가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는 장기간 음식을 거부하는 단식투쟁을 했고 수감 중 옥중 출마를 하며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며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단식 투쟁에도 영국 정부는 전혀 협상에 응하지 않았고 이들을 방치했다. 1981년 바비 샌즈는 단식투쟁 도중 아사했고 그 외에도 다수의 수감자들이 단식투쟁 중 사망했다. 이런 영국의 비인권적 형태에 대한 비판도 컸지만, 대처의 영국 정부는 북아일랜드 분쟁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IRA는 이에 맞서 대처를 겨냥한 테러를 감행하기도 했다. 1984년 10월 12일 대처가 보수당의 전당대회 준비를 위해 머물던 브라이턴 호텔에 폭탄 테러가 있었다. 단식 투쟁 중인 수감자들을 사실상 굶겨 죽인 대처의 영국에 대한 보복이었다. 그의 숙소도 피해가 있었다. 마침 대처는 당시 연설문 작성을 위해 강당에 머물고 있어 화를 면했다. 대신 다수의 보수당 인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IRA는 이 테러가 자신의 소행임을 밝혔다. 그들은 자신들의 한 번 운이 없었지만, 앞으로 대처는 계속 운이 좋아야 할 것이라는 섬뜩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벽화

 


이런 상황에도 대처의 북아일랜드 정책은 변화가 없었다. 그가 테러의 대상이 되고 그럼에도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오히려 정치적 입지가 강화됐다. 

하지만 계속되는 북아일랜드 유혈 분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영국 내에서도 평화적 해결을 원하는 여론이 일어났다. 마침 1991년 대처가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북아일랜드 분쟁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이 열렸다. 미국에 아일랜드계 빌 클린턴이 집권하고 영국에 진보 성향의 노동당 토니 블레어 총리가 등장하면서 평화 분위기가 더 강하게 조성됐다. 

아일랜드 분쟁의 해결을 위한 평화 협상이 시작됐다. 무장투쟁을 전개하던 IRA 역시 신 페인 당을 조직하고 이에 참여했다. 기 협상은 1998년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영국은 이 과정에서 과거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영국의 악행, 1972년 피의 일요일 사건에서의 잘못을 명확히 하고 사과하는 조치를 했다. 총리가 나서서 한 영국의 진정한 사과는 아일랜드인들의 공감을 얻었고 평화 협상 진전에 큰 도움이 됐다. 

이를 통해 북아일랜드는 더 많은 자치권을 가지게 됐고 자치 의회 설립과 함께 자치 정부 수립을 위한 과정에 들어갔다. 피의 역사를 종식하는 첫걸음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와 함께 IRA는 기존의 무장 투쟁 방식을 버리고 정치세력으로 변모했다. 최근에는 북아일랜드 의회의 다수당이 된 상태다. 

이렇게 평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아직 북아일랜드 자치 정부 구성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원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또한,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블렉시트와 관련해 또 다른 분쟁이 생겨나고 있다. 블렉시트를 통해 영국은 EU에서 탈퇴했지만, 같은 영국 연방인 북아일랜드는 잔류토록 했다.

아일랜드와 동일 경제권에 있는 북아일랜드의 특수성을 인정한 일이었지만, 이는 북아일랜드 내 영국계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 영국계 주민들이 아일랜드계 주민들을 공격하는 폭력 사태로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북아일랜드의 분쟁은 아직 꺼지지 않는 갈등의 불씨를 남기도 했다. 자칫 또 다른 유혈사태로 번질 우려가 있다. 이는 어렵게 만든 평화 공존의 분위기를 깨뜨릴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아일랜드의 상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우리도 일제 강점기 역사를 뒤로하고 해방을 맞이했지만, 분단의 아픔을 겪었고 민족까지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치르기도 했다. 이후에도 남과 북이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 남한 내에서도 이념과 가치에 따른 대립이 여전하다. 아직은 모두 평화로운 세상을 가기 위한 길이 멀기만 하다. 

하지만 평화의 길로 가기 위한 중요한 방법 하나를 알 수 있었다. 아픈 과거사에서 가해자들의 사실 인정과 진정한 사과가 갈등 해결의 중요한 해법인 된다는 점이다. 북아일랜드 분쟁 해결의 중요한 계기는 영국의 사과였다. 여전히 과거사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가해자들이 다수를 이루는 우리 현실과 크게 대비된다. 가해자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 없이 봉합된 과거사 해결은 또 다른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긴 피식민지배의 역사, 독립 후 내부 갈등, 사실상 분단 상황 속 북아일랜드의 분쟁까지 아일랜드의 현대사는 우리와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해결을 위한 진정한 노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아일랜드의 현대사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사진 : 프로그램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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