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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한옥과 근. 현대사의 흔적을 품고 있는 건물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일상의 모습이 남아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동네 서촌, 최근 서촌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한옥마을로 유명한 인근의 북촌에 이어 또 다른 명소로 자리를 잡았다. 주말이면 많은 이들이 서촌을 찾는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이곳의 원형이 사라지고 각종 카페나 식당 등 상업시설이 늘어나는데 따른 우려가 커지고 있기도 하다. 젠틀리피케이션 현상은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 많은 곳에서 과거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자본의 힘은 이곳에 자리하고 있던 이들을 밀어내고 있다. 하지만 한 편에서는 서촌의 역사 흔적을 지키려는 노력도 함께 하고 있다. 



서촌 곳곳에는 근. 현대사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장소가 곳곳에 숨어있다. 특히, 서촌은 문화, 예술계 인사들의 자택이나 거주지 등이 있다. 그 장소들을 따라가다 보면 역사의 흐름까지 살필 수 있다. 그중에서 일제 강점기, 그 엄혹했던 시대를 달리 살았던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통인시장에서 본 서촌 지도 

 

 

인왕산 수성동 계곡 

 

조선 3대 화가인 겸재 정선의 산수화에도 등장하는 수성동 계곡, 과거 인왕산에서 발원한 물이 힘차게 흘렀을 계곡은 이제 그 모습을 잃었다. 과거 이곳을 지나 청계천으로 흐르던 물길은 일제 강점기 개발의 시대를 지나면서 사라졌다. 이후 이 계곡은 땅속에 묻혀있다. 아파트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흔적일 발견되고 발굴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언젠가 이 계곡의 물이 청계천까지 그 여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찾아오길 기대해 본다. 

 

 

친일파 윤덕영의 저택 기둥 흔적

 

 

윤덕영은 대한제국의 관료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의 황후 순정효황후의 숙부로 왕실의 종친이었다. 하지만 그는 대표적인 친일파 인사 이완용을 능가하는 매국노였다. 그는 1910년 8월 22일 조인되고 8월 29일 발효된 한일병합조약 당시 이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옥새를 지키며 저항한 순정효황후를 강제로 제압하고 조약에 옥새를 조약문에 날인했다. 

 

이후 그는 일제에 적응 협력한 공을 인정받아 귀족의 작위를 받았고 이후 일제 치하 총독부의 비호 속에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의 부는 이완용을 크게 능가할 정도였다. 그의 2만여 평에 이르는 저택과 땅은 지금 서촌의 한 편을 다 차지할 정도였다. 사람들은 그 저택을 조선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집이라 했고 벽수산장이라 불렀다. 이후 그 저택은 화재 등으로 소실되고 지금은 이 기둥만 남아있다.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이지만, 윤덕영이라는 매국노, 친일파를 잊지 않기 위해서도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족 시인 윤동주가 하숙했던 집 

 

지금은 일반 가정집으로 변했지만, 과거 집터와 동네의 원형은 그대로 남아있다. 윤동주는 1917년 중국 북간도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했다. 생전에 일제에 고통받는 조국과 민족의 현실을 자각하고 이를 지켜만 보고 저항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괴로워했다. 그에 시는 서정적이면서 유려한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지식인으로서의 고뇌와 자아성찰, 현실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윤동주는 그의 시로서 시대를 노래했다.

 

하지만 그는 유학생활을 하던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타국에서 20대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이와 관련해서 그가 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어 사망했다는 설이 강력히 일어나기도 했다. 그의 생을 다룬 영화에서도 그 장면이 등장한다. 그는 그렇게 원통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시는 남아 지금에도 전해지고 있다. 그의 시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숨겨졌고 해방 후 대중에 알려지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윤동주는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그의 시는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시가 됐다. 서촌의 하숙집은 그가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 기거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 기간을 길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윤동주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윤동주의 삶에서 결코 뻬 놓을 수 없는 소중한 장소라 할 수 있다. 

 

 

천재 시인 이상의 집

 

 

그 시대 한옥 건축 양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내부 

 

1930년 일제강점기 포스트 모더니즘, 초현실주의 시와 소설의 대표작가로 활동했던 이상이 유년기를 보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을 전시관으로 꾸몄다. 이상은 천재 작가라는 평을 들었고 그의 작품은 매우 현대적이고 지금의 시선으로 봐도 회기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당대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항상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지병으로 고생했다. 

 

하지만 그는 창작을 멈추지 않았고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1910년 태어난 이상은 1937년 20대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의 작품은 훗날 인정받았고 새로운 문화 사조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를 기념하는 이상 문학상이 제정되어 계속 시상되고 있다. 문학사적으로 이상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삶은 어쩌면 일제 강점기 모순된 시대 속에서 방황하는 지식인의 모습이었다. 그는 그 시기를 치열한 창작으로 버텨냈지만, 그의 몸을 혹사하고 말았다. 그의 삶은 시대의 고통을 고스란히 상징하고 있었다. 

 

 

한국화의 토대를 마련한 한국 화단의 거목 이상범 가옥 

 

 

집안 내부

 

 

작은 정원

 

청전 이상범은 조선 3대 화가 중 한 명인 장승업의 화풍을 이어받은 한국화의 맥을 이어온 화가 안중식의 제자였다. 이상범은 안중식을 을 계승하는 것에도 벗어나 한국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이상범은 매우 불우한 유년기를 극복하고 각종 미술전람회 등에서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상범은 화가로서도 이름을 떨쳤지만, 1927년부터 1937년까지 동아일보의 미술기자로도 일했다. 이 과정에서 유명한 손기정의 일장기 말소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상범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우자는 이길용의 제안을 받고 이를 실행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후 이상범은 대표적인 친일 예술가 단체인 조선미술가협회에 가입하면서 친일인사가 됐다. 그는 일제 말기 일제의 징병제 징병제 실시를 축하하는 삽화 '나팔수' 등 일제는 찬양하는 작품을 남겼다. 이는 그의 생애 큰 오점이 됐다. 그는 해방 후 미술계의 거목으로 큰 영향을 발휘했지만, 미술계의 대표적 친일 인사라는 역사의 평가를 피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윤동주나 또 다른 민족 시인 이육사 등 많은 예술계 인사들이 일제에 저항했던 것과 비교하면 민족을 배반하고 변절한 행위를 정당화 할 수 없다. 이상범 외에도 다수의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변절을 했고 일제에 협력하며 부역했다. 해방 후 그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높은 지위에 오르고 사회 지도층으로 활약했지만, 친일 행각에 대해 진심 어린 사죄나 반성을 표명한 이는 거의 없었다. 이상범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세월이 많이 흘렀고 이제와서 친일 행각을 밝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민족과 나라를 배신한 행위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다. 그 역사를 외면한다면 나라의 정의는 흔들리고 위기가 닦쳐 왔을 때 국민들에게 함께 맞서 주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제 강점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고 희생했던 이들보다 일제의 부역하고 부와 명예를 얻은 이들이 단죄되지 못한 현실, 그 후손들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현실은 결코 정의와 거리가 멀다. 

 

서촌의 골목을 걸으며 일제 강점기 다른 선택과 다른 삶을 살았던 이들의 삶을 모두 살필 수 있었다. 그 안에는 시대에 맞선 이도 있었고 순응한 이도 있었다. 어떤 이는 민족을 배반하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당시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던 일이지만, 후대의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어떻게 사는 것이 역사에 당당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사진,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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