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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스타전 휴식기, 프로야구 각 팀들은 전력보강을 위한 막바지 작업을 물밑에서 벌이고 있습니다. 깜짝 트레이드가 나올수도 있고 외국인 투수의 교체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이런 저런 사유로 팀을 떠나는 선수도 나오게 됩니다. 웨이버공시라는 이름으로 팀에서 사실상의 방출 수순을 밟게 되는 선수들이 그들입니다.

이번 주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노장 투수가 웨이버 공시되었습니다. KIA의 이대진 선수와 롯데 최향남 선수가 팀을 떠나가 된 것입니다. 같은 웨이버 공시지만 그 성격은 틀린점이 있습니다. 이대진 선수의 경우 구단의 은퇴 권유를 뿌리친 선수의 의지가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부상도 없고 타 팀의 선택을 받아 선수 생활을 연장할 가능성이 높은 편입니다.

반면 롯데의 최향남 선수는 사실상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할 운명입니다. 이제 40살을 넘긴 노장 투수, 거기에 팔꿈치 부상으로 재활을 거듭하고 있는 투수에게 눈길을 줄 구단은 사실상 없습니다. 롯데 구단 역시 그의 몸상태에 대한 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롯데 불펜을 강화시켜줄 카드로 올 시즌 다시 국내로 복귀한 최향남 선수지만 그와 롯데의 인연이 이제 더 이이질 것 같지 않습니다.




최향남 선수는 롯데팬들에게는 아쉬움이 이름입니다. 그가 롯데에서 풀 타임을 뛰었던 시즌은 2008년 한 해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활약은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불펜투수로서 보여주었던 빠른 템포의 투구는 자신감이 넘쳤고 인상적이었습니다. 팬들은 그에게 퇴근본능, 또는 향운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특히 삼국지에서 관우가 적장과의 대결을 앞두고 차를 주문하고 그 차의 온기가 식기전에 적장의 목을 베어왔다는 일화에서 나온 "향운장"이라는 별명은 그를 대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투구는 시원시원 했고 거침이 없었습니다. 이 노장 투수의 투구는 롯데 불펜의 거듭된 부진과 맞물리면서 매 시즌 팬들의 기억속에서 되살아나곤 했습니다.

최향남 선수는 그라운드의 풍운아였습니다. 신인시절, 불펜 선동열로 불릴만틈 구위를 인정받았던 투수였습니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자신공의 공을 던지지 못하는 소심한 투수였습니다. 새가슴 투수라는 악평이 뒤따랐습니다. 입단했던 KIA의 전신 해태를 떠나 LG로 이적한 이후 최향남 선수는 다른 투수가 되었습니다. 힘을 빼고 던진는 것에 눈을 뜨면서 팀의 에이스로 환골탈퇴 한 것입니다.

이후 평탄한 프로선수 생활을 하던 그에게 부상의 그림자가 찾아왔고 최향남 선수는 긴 재활을 기간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는 30을 넘긴 나이에 다시 재활에 성공했고 마운드에 복위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이미 전성기를 넘긴 투수가 그것도 신인의 신분으로 더 무대를 꿈꾼다는 것은 무모한 시도로 여겨졌습니다.

최향남 선수의 무대는 마이너리그였고 그 보다 한참 어린 이방인들과의 힘겨운 경쟁을 해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지는 조금씩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트리플에이 무대에서 그는 기량을 인정받았고 그에 상응하는 성적도 거뒀습니다. 이런 성과에서 메이저리그의 문은 노장 투수에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마이너리그 활약을 지켜보던 국내 각 구단은 최향남 선수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최향남 선수의 선택은 처름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KIA나 전성기를 보냈던 LG가 아닌 롯데였습니다. 의외의 선택이었습니다. 마이너스 옵션이 걸린 계약조건이었습니다. 편안함을 포기한 또 하나의 도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2008년 시즌 최향남 선수는 롯데에서 2승 4패 9세이브 3홀드, 방어율 3.58의 성적을 남겼습니다. 분명 특급 투수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최향남 선수는 무너지던 롯데 불펜의 수호신으로 그 이상의 가치를 발휘했습니다. 롯데의 오랜 숙원이었던 가을야구 진출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롯데에서의 또 다른 성공시대가 열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그의 나이는 이제 국내 무대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었습니다. 팀의 신뢰와 팬들의 사랑도 컸습니다. 최향남 선수는 편안함을 뒤로하고 다시 메이저리드를 향한 도전을 택했습니다. 그의 풍운아 기질은 그를 국내 무대에 안착시키지 못했습니다. 그의 기대와 달리 세월의 흐름은 더 이상의 도전을 힘들게 하는 장애물이었습니다.

최향남 선수는 2년간 마이너리그와 독립 리그를 전전해야 했습니다. 더 큰 무대로의 진출은 요원했습니다. 불펜불안으로 고심하던 롯데는 계속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최향남 선수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1 시즌 최향남 선수는 다시 2년간의 타국 생활을 정리하고 롯데로 복귀했습니다. 분명 그의 구위는 떨어졌고 나이는 40을 넘은 노장투수였지만 롯데구단은 그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가 불펜의 힘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롯데 팬들 역시 과거 "향운장" 최향남 선수의 활역을 기억하면서 그의 복귀를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는 팀과 팬들의 기대를 실현하기는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최향남 선수는 동계 훈련기간 부터 주전자리에서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구위는 생각보다 크게 떨어져 있었고 무엇보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정상적인 훈련을 소화하지 못한 최향남 선수는 1군이 아닌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점점 잊혀져 갔습니다.

여기에 팔꿈치 부상은 그의 재기를 와전히 가록막고 말았습니다. 수술을 고려해야 할 정도의 부상이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던지고 또 던졌던 그의 몸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게 된 것입니다. 최향남 선수는 재활을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가 없었습니다. 결국 팀은 그에 대한 기대를 접었습니다. 젊은 투수들에게 엔트리 진입을 기회를 주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결국 최향남 선수는 올스타전을 앞두고 웨이버 공시, 사실상의 방출을 통보 받았습니다. 부상 재활중인 40살을 넘긴 노장투수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쓸쓸히 현역 생활을 접어야 하지도 모릅니다. 메이저리거이 꿈을 이루가 위해 편안한 길을 포기하면서 도전했던 그의 마지막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분명 최향남 선수의 통산 기록은 평균을 조금 웃도는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팬들이 그를 기억하는 것은 끝없는 도전에 대한 응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의 도전이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정신 하나만은 박수와 성원을 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제 최향남 선수는 선수생활의 중요한 기로에 섰습니다. 지금까지 보여준 그의 도전정신을 고려하면 또 한번의 재기의 노력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열정이 담긴 찾잔은 아직 식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향남 선수가 또 다른 현역선수의 모습으로 팬들에게 다가올지, 이대로 그의 잔이 식어버릴지 노장 투수이 다음 행보가 주목됩니다.


김포총각/심종열 (http://gimpoman.tistory.com/, @youlsim)
사진 : 롯데자이언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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