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시즌 올스타전 멤버가 확정됐다. 선수단 투표와 팬 투표가 더해진 결과는 드림 올스타팀 삼성과 나눔 올스타팀 KIA의 절대 강세가 두드러졌다. 여기에 올 시즌 내내 선두를 달리고 있는 SSG와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는 GLG 정도가 이들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에 선정된 올스타 베스트 멤버 중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삼성의 포수 김태군이다. 김태군은 드림 올스타 포수 부분에서 경쟁자들을 비교적 여유 있는 제치고 베스트 12에 선정됐다. 김태군은 올스타 선정 투표 초기 스타 선수들을 제치고 팬 투표 전체 1위를 달리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결국, 팬 투표 전체 1위는 KIA 에이스 양현종이 차지했지만, 김태군의 득표수도 상당했다. 김태군의 올스타 투표와 관련해 이번 올스타 투표에서 두드러..
여전히 냉랭한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 일 관계에 있어 가장 큰 이슈는 과거사 문제다. 최근 한국 대법원의 일제 징용 배상 판결과 위안부 합의 파기 등의 이슈가 생기면서 대립의 양상이 더 극한으로 치달았다. 일본은 과거 한. 일 수교 협정과 위안부 합의 등으로 과거사 문제가 정리되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그 협정과 합의가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의 입장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결과물이고 인류 보편적인 인권의 문제로서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직접 피해자들은 배제되었던 게 사실이었다. 이에 강제징용과 일본군 위안부 등의 피해를 입은 이들이 제대로 된 배상과 사과를 받지 못했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 차원에서 공론의 장도 없었다. 일본은 이를 외면하거나 심지어 역사를 ..
LG 트윈스에서만 19시즌, LG 원클럽맨이자 레전드 박용택이 조금 늦은 은퇴식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박용택은 2020 시즌 은퇴를 했지만, 은퇴식을 미뤘다. 그가 은퇴하는 시점은 코로나 팬데믹이 심각했고 프로야구 관중 입장에 제한이 있었다. 박용택은 가능한 많은 팬들이 함께 하는 은퇴식을 원했다. 그리고 그의 소망이 7월 3일 롯데와의 홈경기에서 이뤄졌다. 박용택은 특별 엔트리 규정에 따라 1회 말 수비 시 좌익수로 출전했고 시구도 했다. 그의 현역 선수 기록은 2020 시즌 끝났지만, 7월 3일 경기 출전으로 그의 현역 마지막 출전 기록은 2022시즌으로 마무리됐다. 박용택은 경기 중 중계방송 해설의원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고 경기 후 만원 관중들이 함께 하는 은퇴식을 했다. 은퇴식..
일상에서 지진과 화산 폭발의 위험을 안고 사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그런 위험과는 거리가 있는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최근 포항과 경주에서 큰 지진이 발생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말 그대로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라는 말을 듣곤 하지만, 아직은 실감을 하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최근 여전히 활화산 상태인 백두산의 분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그와 관련한 뉴스 보도가 나오면서 관심을 얻긴 했지만, 사회적인 이슈로는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반도는 먼 옛날 활발한 화산활동이 있었고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북한과 접하고 있는 철원, 포천, 연천 지역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한탄강 일원은 화산활동에 의한 지형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지질 관련 연구에 있는 그 가치가 크..
프로스포츠에서 신조어로 사용되는 말로 FA 로이드라는 말이 있다. 자유계약을 지칭하는 FA와 스포츠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의 합성어인 이 말은 FA 계약을 앞둔 시점에 선수가 크게 각성하고 뛰어난 기량을 과시하는 모습을 지칭한다. 말의 조합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제는 프로스포츠에서 자주 사용되는 하나의 단어로 자리했다 그만큼 프로 스포츠 선수에게 FA 계약의 기회는 큰 동기부여가 된다. 프로에 데뷔 후 일정 기간, 일정 출전 경기 수가 있어야 자격을 얻을 수 있고 FA 시장에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성적이 필요하다. FA 계약 대상이 되는 것부터가 어렵다. 그 자격을 얻는다 해도 성적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원하는 계약을 할 수 없고 자칫 현역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일..
우리 근. 현대사에서 인천은 서양의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이고 교류를 한 개항장으로 그 의미가 있다. 비록 개항이 1876년 일본과의 불평등 조약이었던 강화도 조약의 산물이었지만, 인천은 그때 합의한 부산, 원산에 이어 3번째 대외에 문을 연 항구였다. 인천은 그 위치가 수도 서울과 인접해 있어 서구 문물의 전파 속도가 빨랐고 파급력도 컸다. 가장 먼저 철도가 들어왔고 전기, 전화가 들어왔다. 다수의 외국 상인들이 인천을 기반으로 무역활동을 했다. 이미 조선 후기부터 인천은 국제 무역항의 면모를 보였다. 그 속에서 인천은 시대 변화와 함께했다. 하지만 인천은 그 발전과 함께 일제 강점기 일제 수탈의 최 일선에 있었던 아픈 역사도 있다. 조선 후기에는 경제 침탈의 전진기지였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조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