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시와 화성시가 접하는 곳, 거대한 시화방조제와 시화호가 접하는 곳에 자리한 섬 대부도는 멋진 바다 풍경을 항시 즐길 수 있는 수도권 근교 여행지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이제는 시화방조제와 다리가 연결되고 간척 공사로 섬이라는 말이 무색한 곳이 됐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는 대부도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 이 대부도에 정확히 말해 간척 사업으로 대부도와 연결된 섬인 선감도에서 국가 권력이 자행한 추악한 폭력과 인권 유린의 현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선감학원, 선감원이라 불렸던 이곳은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에 의해 1941년 설립됐다. 이곳에는 부랑아로 지목된 소년 수백 명이 강제로 수용된 일종의 수용소였다. 거리의 고아나, 불량배, 범죄자는 물론이도 독립운동을 했거나 정치..
조선의 역사에서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은 조선을 그 전후로 조선을 구분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은 세종대왕과 성종의 집권기 전성기 이후 누적된 사회 구조적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났고 변화의 필요성이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집권층은 사회 변화보다는 그들의 기득권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했고 한층 더 보수화되고 경직된 사회 구조를 만들었다. 임진왜란 전 어렵긴 했지만, 계층 간 이동이 가능했고 유학 외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루는 등 역동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임진왜란 이후 유학은 더 깊은 관념론 속으로 빠져들었고 형식이 강조되는 예학이 더 발전하는 등 실생활과 더 멀어졌다. 또한, 대외 교류의 폭 또한 더 축소되고 고립됐다..
최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독립군 장군이었던 홍범도와 관련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불과 얼마 전 그는 머나먼 나라 카자흐스탄에서 그 유해가 나라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의전 속에 국내로 봉환됐고 그가 그토록 원했던 독립된 나라의 국립묘지에 안정됐다. 이와 관련해 홍범도의 삶과 업적과 관련한 다양한 다큐멘터리가 방영됐고 그가 주도했던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승전인 봉오동 전투는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의 유해 봉환은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쟁취한 민주화, 그리고 대통령 직선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노태우 정부가 1990년 지금은 사라진 구 소련과 수교를 하면서 추진됐고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문재인 정부 때 결실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 역시 그의 연고지가 북한임을 들어 북한으로..
지금 우리나라의 국호인 대한민국, 줄여서 한국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건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다. 그전까지 우리나라는 조선이었다. 그 조선은 그 역사의 끝자락에서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변경하고 자주국임을 알렸지만, 얼마 안 가 일제의 침탈에 제국의 역사를 더는 이어갈 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 지금의 한국인들은 조선인이었다. 그 조선이라는 말에는 왕이 지배하는 나라라는 말이 함께 하고 있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왕의 역사였고 그 왕을 중심으로 역사의 기록이 남겨졌다. 각 시대별로 뛰어난 영웅이 등장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긴 했지만, 조선은 왕의 나라였다. 산업혁명 이후 시민들의 권리가 점점 강화되고 민주주의 발전했지만, 조선은 그렇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강압적 ..
조선의 역사에서 권력 구조에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시기는 초기 태종 이방원의 집권기와 수양대군 세조의 집권기다. 이들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지만, 치열한 권력 투쟁 속에서 이복형제와 친 조카를 죽이고 반대파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왕위에 올랐다. 태종과 세조는 집권 과정에서 정통성을 가지지 못했지만, 왕권을 강화하고 조선의 통치 시스템을 확립하는 한 편 그들 뒤를 이은 세종과 성종 때에 나라의 전성기를 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태종에서 시작해 세조를 거쳐 성종대까지 조선은 최전성기였다. 철저한 신분제를 표방한 조선이었지만, 이 시기 조선에는 능력이 있으면 출세할 길이 열려있었고 남녀 간의 관계도 차별이 아닌 역할이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전성기는 성종 사후 최악의 폭군으로 ..
조선의 역사에서 영조와 정조 임금 통치기는 조선의 마지막 부흥기로 기억되고 가르쳐지고 있다. 실제 영. 정조 시대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큰 전쟁을 치른 이후 회복되지 못했던 국력을 회복했고 흐트러진 국가 시스템을 복원하며 재 도약을 시도했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극심한 붕당의 대립을 극복하려는 탕평책이 왕권을 회복한 왕의 주도로 시행되면서 극단적인 대립이 조금은 완화되기도 했다. 이 시기 조선은 농업 중심의 경제체제에서 상공업이 발전하고 화폐 경제가 활성화되는 등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발전 가능성도 보였고 견고한 신분제 역시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그 한편에서는 서양의 문물이 중국을 통해 유입되며서 기존의 관념론적인 성리학을 극복하려는 실학 등의 새로운 사상적 흐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런 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