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김영철의동네한바퀴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40회] 치악산이 지켜주는 동네 원주에서 만난 사람들

jihuni74 2021. 10. 2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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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남서부에 위치한 원주시는 치악산이라는 거대한 산으로 대표되는 도시로 서쪽으로는 경기도, 남으로는 충북과 맞닿아 있는 교통의 요지다. 원주는 영동, 중앙, 광주 원주 고속도로 등 3개의 고속도로가 지나고 최근 개통된 서울과 강릉을 연결하는 KTX 경강선이 지나고 있다.

또한, 원주는 역사적으로도 통일 신라시대 지방 행정 조직은 9주 5소경 중 소경이 설치될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이자 지역의 중심 도시였고 고려 시대는 물론이고 조선시대에 강원도 감영이 설치될 정도로 중요한 도시였다. 현재는 강원도의 혁신도시로 건강보험공단, 관광공사, 석탄공사, 국립공원공단, 건강보험공단 등 13개의 공공기관이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기업도시로서 다수의 공단도 입지하고 있어 많은 상주인구와 유동 인구가 혼재하는 도시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40회에서는 유서 깊은 역사의 도시이자 역동적인 도시 원주에서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지켜가는 이들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을 가을이 깊어가는 풍경과 함께 만났다. 

원주는 대표하는 명승지는 단연 치악산이다. 프로그램의 시작도 치악산을 기점으로 했다. 치악산 자락에 만들어진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그 길을 따라 가을 느낌을 마음 가득 담을 수 있었다. 치악산 둘레길을 지나 한 농촌 마을에 이르렀다. 우리 전통 엿을 만드는 집들이 곳곳에 있는 마을이었다. 그 역사가 100년을 넘었을 만큼 긴 역사의 전통 엿이었다. 

 



이곳의 엿은 엿기름에 더해 강원도의 특산물인 옥수수가 더해지는 게 특징이었다. 그 엿을 만드는 과정을 살필 수 있었다. 90살이 넘은 어머니와 노년에 접어든 딸이 함께 함께 만드는 엿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 엿에는 어머니의 세월의 담겨있었고 딸은 그 어머니를 도와 전통의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70년 내공이 담긴 전통 엿이 또 하나의 역사가 되고 있었다. 

원주의 역사를 상징하는 조선시대 강원 감영 유적지와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과거 원주 기차역 유적지를 지나 여정을 계속했다. 사람들의 북적임이 있는 시장 내 지하상가로 향했다. 그곳에서 손 만두를 만들어내는 가게들이 모여있는 만두 골목을 찾았다. 몇몇 상인들이 분주히 만두를 빚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즉석에서 빗어내는 만두로 만둣국이나 칼국수 등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몇몇 식당에서는 만두 골목을 만두를 바로 사서 조리해 손님에서 내주기도 했다. 원주의 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시스템이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해바라기 꽃이 피어있는 원주천변의 한마을을 찾았다. 이곳은 6.25 한국전쟁 후 전쟁 중 전사한 군인이나 경찰관의 유가족들이 모여 마을을 이뤘다고 했다. 그 때문에 모자원이라고 불리는 이 마을에는 저마다 마음 가득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왔고 살아가는 중이었다. 지금은 당시 마을을 이뤘던 이들이 고령으로 사망하고 타지로 떠나면서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드물다. 한 할머니로부터 이 마을의 내력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함께 하는 마을의 역사와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는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그때의 기억의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었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모자원 마을을 벗어나 다시 길을 나섰다. 어느 동네 한 편에 전통 한지를 만드는 공장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4대째 이어온 전통 한지 기술에 따라 수작업으로 한지를 제조하고 있었다. 한지를 만드는 과정은 그 원 재료가 되는 닥나무를 베어 오는 곳에서 시작해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고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만큼 힘든 작업이다. 이제는 편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양지, 종이들이 보편화되면서 사용층도 크게 줄었고 그에 비례해 전통 한지를 만드는 이들도 줄었다. 

하지만 원주는 예로부터 질 좋은 한지를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했고 한지는 원주의 역사와 함께 하는 소중한 유산이었다. 이에 원주에는 한지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한지 테마파크가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원주의 전통 한지를 전승하고 지키는 일은 그만큼 소중하다 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지 공장은 아버지에게서 배운 한지 기술을 가진 장인이 그의 사위에서 기술을 전수하며 가업의 역사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되며 힘차게 일하고 있었다. 그렇게 원주 한지의 역사는 지켜지고 있었다. 

다시 치악산 자락의 한 마을을 찾았다. 인적이 드문 곳에 한 식당이 보였다. 귀농 20년 차 부부가 운영하는 이 식당은 옛 감성 가득한 외관과 인테리어가 특징이었다. 부부는 이 식당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들의 고집은 이곳을 독특한 감성을 가진 식당을 만들었다. 이 식당에서는 인근 텃밭에서 나는 계절 채소와 산에서 나는 산나물을 재료로 하는 나물 밥상으로 주메뉴로 하고 있었다. 가능하면 자극적이지 않게 인공 첨가물의 사용을 줄이면서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이 부부는 초기 이곳에 정착하고 나서는 낯선 환경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익숙하고 편안해졌다고 했다. 이 편안함 속에서 부부는 매일매일 행복한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더 깊은 산촌 마을로 들어섰다. 그 마을에서 몇몇 주민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이 마을의 독특한 내력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이 마을은 외지인은 물론이고 마을 주민들도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숲이 있었다. 치악산의 산신이 산다고 전해지는 이 숲은 성황림이라 불렸다. 이 신성한 곳에 있는 산신에 제사를 지내는 성황당이 있었고 마을 주민들은 봄과 가을 마을의 안녕과 평안함을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실제 성황림에 들어가 보니 울창하면서도 때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한 숲의 풍경 속에 보통의 숲과 다른 신령한 느낌이 전해졌다.

숲은 정기를 전해 받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길을 걷다가 거대한 삽자루 모양의 조형물이 입구에 자리한 공장이 보였다. 그 공장에서는 공사현장과 일상에서 사용하는 도구는 삽과 삽자루를 만들고 있었다. 공장의 사장님은 15세부터 일을 시작해 50년 넘게 이 일을 해오고 있었다. 초창기 기술을 배운 그는 이제 꽤 큰 규모의 공장을 운영하는 중이었다. 이 공장은 그의 인생의 여정과 함께 하는 곳이었다. 

지금 이 공장은 사장님과 그 일을 이어받을 아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 아들은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중 직장을 버리고 이 공장에서 일했다. 그는 아버지의 건강 악화 소식을 듣고 귀향을 결심했다. 아버지의 인생이 녹아들어 있는 이 공장의 소중함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고되고 힘든 인생 여정의 큰 결실인 이 공장이 지속되기를 원했고 자신이 그 일을 이어받기로 했다.

 

올해 봄 원주 한지 테마파트 야경 



이 공장은 값싼 외국산 제품들에 밀려 점점 사라져가는 국산 삽자루, 삽 공장들이 늘어나는 현실 속에 우리 삽을 지키는 소중한 공간이기도 했다. 이 부자는 튼튼하고 품질 좋은 우리 삽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이 공장을 지켜가고 있었다. 우리 대표적 농기구인 호미가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는 현실을 고려하면 국산 삽을 만들고 지켜가는 이 공장 역시 그 가치는 크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했다. 이 부자의 노력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여정의 막바지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벼가 익어가는 농촌 마을을 찾았다. 마을의 한 집에서 수확한 깨를 할머니와 그 딸이 보였다. 언뜻 봐도 고령의 연세가 예상되는 할머니는 올해 103살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 딸 역시 70살이 넘는 고령의 나이였다. 할머니는 자신으로 인해 딸이 노령에도 제대로 대우받지 받지 못하고 자신의 수발을 들어주는 게 미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딸은 지금의 삶이 행복하기만 하다. 어머니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하는 게 더 소중할 뿐이었다. 

할머니는 이런 딸의 지극 정성과 함께 늘 웃음을 잃지 않고 일상을 살아간다고 했다. 100살이 넘은 나이지만, 할머니의 말은 또렷했고 웃음기 가득한 얼굴은 평온함이 가득했다. 할머니는 우리 근현대사의 격변기를 몸소 겪었고 어렵고 힘든 시절도 견뎌내며 살아왔다. 할머니는 그 과정에서도 지금의 평온한 웃음으로 상황을 넘겨왔을 것이다. 그런 삶들이 쌓이고 싸여  할머니는 건강한 100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할머니의 이런 모습은 많은 돈과 명예를 얻는 게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이 된 현대 사회에서 진정한 행복인 무엇인지는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원주는 큰 변화를 겪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지만,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생활 곳곳에서 오랜 전통이 함께 하고 있었다. 그 전통은 사라지지 않고 우리 이웃들에 의해 지켜지고 이어지고 있었다. 마지막에 만난 100세 할머니는 온화한 미소로 원주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원주의 치악산은 조용히 그리고 흔들림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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